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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없이 찾아온 삶을 위협하는 위기, 실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적대 세력, 출구없이 헤매는 듯한 숨막히는 분위기, 혼자 남겨진 채 저항하는 우리의 주인공. 듣기만 해도 두근거리는 소재들로 가득 찬 소설, 상상만해도 훌륭한 스릴러 플롯을 선사할 것 같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프란츠 카프카의 미완성 장편소설 《소송》 은 소재들의 자극성애도 불구하고 장르적인 재미를 갖추지 않은 소설이다.
그렇다. 《소송》 은 장르적 재미가 없다. 읽는 재미는 넘쳐나는 소설이다. 그러나 이 책을 앞서 언급한 소재들이 상호작용하는 장르 소설로서 접근한다면, 확신컨데, 절반도 읽지 못하고 포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도 그럴 것이, 독자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소재들의 상호작용은 커녕 카타르시스를 느낄 전개마저 파괴하는 아이러니의 소설이 카프카의 《소송》 이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소송》 에서 거대 세력에 짓눌려 스스로의 삶을 상실하는 주인공이나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곧이곧대로 나올 것으로 상상한다면 크나큰 착각이다. 이 소설은 《1984》 가 아니다. 《소송》 은 그런 멋있고 세련되고 독자들이 읽고 감탄할 말초적인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는다.
예상이 빗나가 실망한 독자가 이 소설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애초에 카프카를 읽고자 하는 자라면 그런 태도를 버리는 것이 낫다. 장르적 재미, 말초적 재미는 포기하라. 그것이 카프카를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이다.
만일 당신이 카프카를 읽는다면 빠르게 읽고자 하는 마음은 집어치우자. 소설은 그렇게 읽는 것이 아니다. 문장을 훑어가며 대충 비슷한 이미지를 상상하고 플롯 전개만 따라가는 독서라면 차라리 영화 감상이 낫다. 문장 하나하나를 꼼꼼히 짚어가며 그 묘사나 디테일에 집중하라. 소송의 핵심은 부조리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보여주는 여러 가능성들의 집합이다. 소설이 보여주는 문장의 은유 하나하나에 카프카가 표현하고자 하는 새로움이 돋보일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 K가 첫 법정 공판에 참가하는 장면이 있다. 그냥 훑어간다면 K가 법원으로 가는 과정을 쓸데없이 길게 묘사했다고 불평할 것이다. 기억하자, 소설에 쓸모 없는 묘사란 없다. 그런 건 역사에서 잊혀지는 실력 없는 소설가들이나 하는 짓이다(위고는 좀 고려해보자). 장의 첫 부분부터 K는 소송 사실에 당당하게 대처하고 기죽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막상 공판 날짜가 되자 안절부절 하며 진정하질 못한다. 어쨌든 그는 최대한 빨리 법원에 가기로 마음먹는다. 아무도 몇 시까지 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나 K는 숨을 헐떡이면서까지 법원으로 달려간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의 성실함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고 K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달려가던 중 K는 잠시 멈춰서 숨을 돌린다. 그의 주위에선 일상을 보내는 타인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단조롭고 아름답게 플로베르 식으로 펼쳐진다. 소송으로 가득 찬 그의 삶에 잠시 외부의 여유가, 세계에 존재하는 하나의 가능성이 머물고 간다. 그러나, 이내 K는 다시 달려간다. 왜냐하면 당당하겠다는 그의 다짐은 젖혀 둔 채 소송에 얽매여 살아가기를 그가 선택했기 때문이다. K의 법정가는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그에게 일어난 모순적인 변화, 그리고 바깥의 새로운 가능성을 탁월하게 보여준다.
《소송》 은 한 인물의 낭만적인 비극을 보여주고자 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카프카가 K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우고 그의 행동과 그 주변을 관찰하며 고찰한 결과를 기록한 문학이다(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소설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렇기에 《소송》 을 읽을 때는 글로 된 영상을 상상하며 추상적인 대략적인 이미지의 연속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소송》은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집중하며 글을 읽듯이, ‘소설’을 읽듯이 봐야한다. 그것이 소설이기 때문이고, 소설이 기록 문학이기 때문에, 좀 더 이에 집중하며 감상하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은지, 그런 생각으로 카프카를 다시, 또는 새롭게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좋은 감상문 추, 사람들을 읽게 만드는 리뷰로 잘 썼네
흐름이 아닌 문장에 집중하는 소설이라니 새롭다
난 솔직히 비문학이나 문학이나 읽기 과정은 똑같다 생각함. 글의 지향성이 예술이나 논문이냐의 차이지 결국 시작은 무언가의 고찰이니까
둘 다 고찰로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비문학이든 문학이든 문장보다 흐름에 사고를 집중해야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런 의미에서 소송은 새롭네 꼭 볼게
소송 다음은 성을 읽는 방법에 대해 쓰면 되겠네.
성은 뭐 거의 비슷해서 ㅎ
성은 소송보다 읽는 재미를 찾기가 힘든 편이니까.
성이 좀 더 일반적인 파트를 다뤄서 읽는 방식 자체는 소송이랑 똑같이 하면 된다고 생각함. 근데 역시 성이 난도가 좀 더 있지
출판사 추천좀 - dc App
을유, 문동 두 개 읽었는데 을유가 좀 더 좋았던 거 같음
영화 보듯이 읽지 않은 작가가 바로 카프카. 그래서 애정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