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돛대 유람선 넬리호의 돛은 펄럭이지 않았고 배는 닻을 내린 채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멎었다. 조수는 이미 밀려들고 있었는데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다. 그래서 강 하류로 내려갈 예정이었던 배는 정박한 채 조수가 썰물로 바뀔때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템즈 강 하구쪽으로 뻗은 바다는 끝없는 수로의 시작처럼 우리들 앞에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 바다와 하늘은 이음새도 없이 접합되어 있었다. 그 환한 공간속에서 밀물을 타고 상류로 올라가던 거룻배들의 그을린 돛은 꼭지가 뾰족한 돛베의 빨간 군집체들을 이루며 가만히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였고 돛의 끝부분을 비스듬히 잡아당기고 있던 막대에서는 와니스 칠이 번쩍이고 있었다. 아득이 사라지는 평지처럼 바다로 뻗어있던 나직한 강기슭에 엷은 안개가 깔려있었다.
이상옥 "암흑의 핵심"
유람용 쌍돛대 범선인 넬리호는 돛을 펄럭이지도 않고 닻 쪽으로 움직이더니, 결국 멈추었다. 조수가 이미 밀려든 데다가 바람도 거의 없었고 배는 강 하류로 내려갈 예정이었으므로, 정박하고 나서 조수가 바뀌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끝없는 뱃길이 시작되는 것처럼 템스 강 하구의 해역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었다. 먼 앞바다에서는 바다와 하늘이 이음매 없이 맞붙어 있었고 서녘 햇빛을 받아 빛나는 공간에는 밀물과 함께 올라온 거룻배들의 타닌액을 먹인 돛이 니스 칠한 스프릿을 꼭대기에서 번쩍이며 여기저기서 붉은 캔버스의 떼를 이루며 정지해 있는 듯했는데, 평평하게 뻗어 나가다 바다속으로 아스라이 사라지는 저지대의 강기슭에는 옅은 안개가 깔려있었다.
이석구 "어둠의 심연"
The Nellie, a cruising yawl, swung to her anchor without a flutter of the sails, and was at rest. The flood had made, the wind was nearly calm, and being bound down the river, the only thing for it was to come to and wait for the turn of the tide. The sea-reach of the Thames stretched before us like the beginning of an interminable waterway. In the offing the sea and the sky were welded together without a joint, and in the luminous space the tanned sails of the barges drifting up with the tide seemed to stand still in red clusters of canvas sharply peaked, with gleams of varnished sprits. A haze rested on the low shores that ran out to sea in vanishing flatness.
원문
말로는 이야기를 마치고 명상에 잠긴 부처의 자세로 말없이 희미한 모습을 보이며 저만큼 떨어져 앉아있었다. 한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만 썰물이 시작되는 것도 모르고 있었군." 갑자기 중역이 말했다. 내가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앞바다는 강둑 같은 시커먼 구름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세상이 끝나는 곳까지 나 있는 그 고요한 물길은 찌뿌린 하늘 아래서 음침하게 흐르면서 어떤 엄청난 암흑의 핵심 속으로 통하고 있는 듯했다.
이상옥 "암흑의 핵심"
말로는 이야기를 멈추었고, 형체는 뚜렷하지 않았지만 조용히, 명상에 잠긴 부처의 모습으로 따로 떨어져 앉아 있었다. 한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첫번째 썰물을 놓쳐 버렸네." 이사 직을 맡은 이가 갑자기 말했다. 나는 머리를 들었다. 검은 구름의 둑이 앞바다를 막고 있었고, 지구의 끝까지 뻗은 고요한 수로가 어두운 하늘 아래 음산하게 흐르다가 거대한 어둠의 깊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
이석구 "어둠의 심연"
Marlow ceased, and sat apart, indistinct and silent, in the pose of a meditating Buddha. Nobody moved for a time. "We have lost the first of the ebb," said the Director, suddenly. I raised my head. The offing was barred by a black bank of clouds, and the tranquil waterway leading to the uttermost ends of the earth flowed somber under an overcast sky—seemed to lead into the heart of an immense darkness.
원문
그때 그의 표정에 나타난 변화와 비슷한 것을 나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다시는 보지 않게 되길 바랄 뿐이야.오, 내가 그 변화에 감동했다고는 할 수 없고, 오직 매혹되었을 뿐이지. 마치 베일이 찢어지면서 어떤 새로운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았어. 그 상앗빛 얼굴에서 나는 음침한 오만, 무자비한 권세, 겁먹은 공포, 그리고 치열하고 기약없는 절망의 표정이 감도는 것을 보았거든. 완벽한 앎이 이루어지는 그 지고한 순간에 그는 욕망, 유혹 및 굴종으로 점철된 그의 일생을 세세하게 되살아보고 있는 것이었을까? 그는 어떤 이미지, 어떤 비전을 향해 속삭이듯 외치고 있었어. 겨우 숨결에 불과했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두번 외치고 있었어.
"무서워라! 무서워라!"
나는 촛불을 끄고 선실에서 나왔어.
이상옥 "암흑의 핵심"
그의 표정에 나타난 변화를 닮은 그 어떠한 것도 나는 이전에 본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는 볼 일이 없기를 바라네. 아. 나는 감동받지는 않았지. 매료되었다고나 할까. 눈앞을 가리던 베일이 찢어진 것 같았지. 나는 그의 상앗빛 얼굴에 음울한 자부심과 냉혹한 권력, 심약한 두려움을, 극심하고 절망적인 좌절을 보았네.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지고의 순간에 그는 자신의 삶을. 욕망과 유혹과 굴복의 모든 사건들을 다시 경험하고 있었던가. 어떤 환영을 향해, 어떤 환상을 향해 그가 속삭이듯 외쳤네 - 두번 외쳤는데 그것은 숨결같이 약하디약한 외침이었지.
"끔찍하다! 끔찍해!"
나는 촛불을 불어 끄고 선실을 떠났네.
이석구 "어둠의 심연"
"Anything approaching the change that came over his features I have never seen before, and ope never to see again. Oh, I wasn't touched. I was fascinated. It was as though a veil had been rent. I saw on that ivory face the expression of somber pride, of ruthless power, of craven terror—of an intense and opeless despair. Did he live his life again in every detail of desire, temptation, and surrender during that supreme moment of complete knowledge? He cried in a whisper at some image, at some vision,—he cried out twice, a cry that was no more than a breath—
"'The horror! The horror!'
"I blew the candle out and left the ca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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