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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오래된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지를 고민하는 일에 대한 소설로 빌러비드를 읽고 싶다. 소설의 인물들은 노예제 미국의 흑인이 피해갈 수 없었던 고통에 시달려 망가진다. 구역질하듯 폴 디가 '대체 왜'냐고 물을 때 이런 트라우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공유하는 민족적인 것인 동시에 그들 구성원 하나하나에게 아주 개인적이고 특수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기억은 좀처럼 말해지지 않는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에 남아 있고, 그렇게 들러붙어 있는 일들은 조심스럽게 고백되거나 편집되어 서술되고 예고되고, 어지러운 순서로 각자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불시에 현재에 상기되고 벼랑에 내몰리기를 반복한다. 그런 과정은 실제의 트라우마가 한 사람을 몰아세우는 과정을 닮았다. 영속적이고 대물림될 것만 같고, 거기서 탈출하는 데에 성공한 강한 이들의 현관 앞이나 뒤뜰에 끝내 나타나 그들을 외딴 집이나 교회의 지하실에 칩거하도록 만드는 위력적인 것이다. 소설에서 이런 결말들은 잔인할 정도로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노인이 아이를 위해 홀린 듯이 산딸기를 따러 가면 곧 잔치가 벌어지고, 모든 것이 정해진 수순처럼 인물들을 찾아오고 파국으로 데려간다. 그 일들 하나하나의 무게보다도 소설이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보여주면서 계속해서 이런 불가항력 같은 사실을 확인시키는 과정이 고통스럽고 읽기에 힘이 들었다.


이런 순환을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을까. 덴버가 '언젠가 돌변해 망설이지 않고 나를 죽일지 모르는' 사람으로 세드를 묘사하는 대목이 섬뜩하다. 이 순환은 이상한 방식으로 피해자를 순환에 동참시킨다. 세드와 덴버가 백인 아이의 도움을 받아 탈출에 성공했듯이 이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트라우마를 겪는 각각의 개인으로서 사람들이 이어질 때 해결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선한 일부가 있다 해도 소설이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말하듯 그런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가너가 당시 남부의 농장주치고는 합리적인 인물이긴 하나 여전히 이 순환에서 한 역할을 맡는 인물일 뿐이다. 가너 부인은 농장의 흑인들의 원치 않는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었음에도 무력하다. 어떤 인물은 전쟁에서 아들을 잃고부터 흑인 직원들에 대한 태도가 차가워진다. 마을 사람들은 같은 흑인이면서도 학교 선생이 찾아왔음을 먼저 나서서 알려주지 않았다. 세드와 폴 디는 같은 처지의 생존자로 재회해 미래를 구상해보나 이런 계획은 다시 좌절된다. 소설은 얼핏 과거의 상흔들이 같은 사람에 의해 치유되고 바로잡힐 수 있는 것처럼 보여주지만 그러한 연대의 가능성을 은근한 시점에서 부정하고 확실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 가치에 대해 묘사하면서도 그것을 결정적인 해결책으로 생각하는 데에는 회의적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소설은 3부에서야 이루어지는 해결을 그들의 다음 세대에게 맡기는 것 같다. 고립된 집에서 막내아이가 걸어나올 결심을 하고서야 마을 사이에 다리가 놓여진다. 이런 결정은 작가가 오래된 트라우마가 완전하게 망각될 수도 치유될 수도 없겠다는 점을 알고 이후 세대의 구성원으로서 그것을 위로하고자 하는 어떤 노력으로 느껴진다. 마을 여성들이 124번지 앞에 모여 기도하는 3부의 장면은 일종의 제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집 앞을 찾아온 백인의 이미지로 트라우마가 또 한번 반복되고, 세드는 예전에 죽이고 만 딸에게가 아니라 백인을 향해 달려드는데, 그렇게 세드가 방향을 바꾸고 덴버와 마을 여성들이 이를 막는 것은 '왜'를 고민하고 자책한 끝에 트라우마의 정당한 책임을 고발하고, 그런 동시에 순환이 반복되지 않고 끝이 나기를 바라는 결론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빌러비드는 지나가듯 언급되는 것처럼 감금되어 있었던 아이가 맞을 것이다. 과거가 극복되었음을 말해주듯이 빌러비드는 유령처럼 사라지는데, 그것이 온전히 긍정적인 신호인지를 잘 모르겠다. 3부의 어떤 부분들은 기가 질릴 정도로 난해하고, 작가는 그저 전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말을 맺는다. 이런 것들은 잊고 싶으나 바람대로 잊혀서만은 안 되는 일들의 복잡한 정의로 느껴진다. 순간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옛날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