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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읽게 되었다. 당시 나는 깨어있는 시간 빼고는 계속 공부만 했었고, 그러면서도 성적에 만족을 못해서 항상 불안했다. 당연한 소리지만 공부에 큰 뜻이 있다거나 공부가 너무 재미있다거나 그런건 절대 없었다. 근데 당시에는 나한테 워낙 쓸데없는 자존심이 있어서, 나한테 맡겨진 일은 최상의 결과가 나와야 했고 그렇게 안될 것 같으면 애초에 신경도 쓰지 않은 채로 두어야 했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은 나한테 참 무시무시한 기대들을 품고들 있으시고, 그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왔을 때는 나보다도 더 걱정하고 노심초사하시니 그게 더 피곤했다. 마치 내 성적이 전재산을 들이부은 주식의 주가라도 되는 듯이. 그런 상황들에 짜증이 난 나는 차라리 아무도 걱정하지 않을 성적을 내서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좀 덜어보려고, 스스로를 공부에 더욱 몰아세웠던 것 같다.


내 성적 떨어진다고 남들이 호들갑을 떠는 게 보기 싫어서 미친듯이 공부한다니, 잘 꾸며서 말해본다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만점짜리 성적표를 던져주고 온 가족들의 입을 막아버리는 시크한 천재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낱 평범한 인간이었던 나는 스스로에게 열불이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고작 남들의 호들갑이 보기 싫다는 이유때문에 셔틀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면서, 청소시간에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면서, 급식실에서 밥을 먹으면서, 또는 급식실로 밥을 먹으러 걸어가는 도중에까지도 공부를 하고 있다니! 나를 둘러싼 주변의 기대에 저항 한 번 못하는 나약한 스스로가 답답했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팽개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남들의 부담스러운 기대와 나약한 내 존재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하다가 나중에는 그 정도가 심해져서, 보통 사람들은 나의 문제를 이해할 수도 없고, 심지어는 도와주려고 다가올 자격도 없다는(...) 꽤나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하곤 했다. 그렇기에 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나를 구원해줄 존재는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정확히 알고 있기에 아무런 선입견과 편견이 없는, 그렇기에 나에게서 나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리고 이 조건에 정확히 들어맞는 존재는 입시가 모두 끝난 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미래의 나였다. 그래서 수험생이었던 나는 대학생, 직장인,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버지가 된 성숙한 내가 수험생인 나를 떠올리며 어떤 말을 건네고 싶어할지 자주 상상하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 읽게 된 소설이 바로 이 무진기행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위로를 얻었다. 다만 이는 꽤나 모순적인데, 무진기행은 당시 내가 상상하던 구원의 가능성을 철저히 부정했기 때문이다.


무진기행의 주인공 윤희철은 머리아픈 일들에서 잠시 벗어나 쉬기 위해 자신의 고향인 무진으로 향한다. 일종의 일탈인 셈이다. 하지만 무진은 주인공을 상쾌하고 포근하게 맞이하지 않는다. 무진은 주인공 자신의 혐오스러운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은 무진에서 미친 여자를 만나고, 개들의 교미를 보고, 자살한 술집 작부의 시체를 보고, ‘박’, ‘조’, ‘허인숙’ 세 명 사이의 치정 관계를 알게 된다. 무진은 일탈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아니다. 또 하나의 고통스러운 세계일 뿐이다.


그런데 ‘허인숙’은 그 고통스러운 세계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일탈’을 꿈꾸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허인숙’은 서울을 동경하여 무진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한다. 주인공은 과거의 자신과 같다고 느끼는 그녀를 서울로 데려와 고통스러운 무진에서의 삶에서 구원해주고자 한다. 허인숙은 서울을 원하고 있고, 주인공에게 서울은 익숙한 일상의 공간이다. 주인공에게는 허인숙을 구원할 충분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서울에서 날아온 전보를 받고 주인공은 급히 무진을 떠나게 된다. 떠나기 전 주인공은 허인숙에게 편지를 남기며 그녀를 서울로 데려오겠다고 약속하지만, 이내 편지를 찢어버리고선 귀경한다. 결국 주인공은 허인숙을 구원하지 못했고, 자신 또한 일상의 속박으로부터 탈출하지 못했다.


무진기행은 수험생이던 내가 기대하던 현실로부터의 극적인 탈출을 부정했다. 침울한 무진의 모습은 스스로 억눌러온 감정들을 폭발시키고 나를 제약하던 모든 조건들로부터 한순간에 해방되는 통쾌한 상상을 부정했다. 심지어 허인숙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보던 윤희철이 허인숙을 버리고 가는 모습은 미래의 성숙한 내가 수험생인 나를 보듬는 상상마저도 부정했다.


하지만 그 부정의 과정은 나의 상황과 생각 하나하나를 정확히 조준했고 그것은 나에게 같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을 찾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가 상상하던 구원자의 모습에서, 적어도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에 대해서만큼은 정확히 알고 있는 대상을 찾은 것이다. 게다가 문장과 표현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아름답고 감성적이었기에 마치 나의 감정에 대한 훌륭한 대변인을 얻은 듯한 느낌이었다. 또한 나의 희망을 철저히 부정한 것은 내 고통의 밑바닥을 보여준 듯한 느낌이었고, 모호한 희망을 향하여 의미없이 허우적대기보다는 고통의 밑바닥에 발을 딛고 올라갈 방법을 차근차근 고민해보게 된 것이 결국엔 나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다.


무진기행을 읽은 뒤, 나는 고3이 되었고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는 심해지면 심해졌지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진기행에서 얻은 공감을 바탕으로 내 자아의 숨통을 트이게 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고, 그 노력의 결과로 나 나름대로의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 결론 자체는 다른 책과 여러 철학들을 찾아다닌 결과이기에 무진기행에 대한 감상만으로는 그 결론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어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 과정의 처음에는 무진기행이 있었고, 이것이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문학 작품으로 망설임 없이 무진기행을 꼽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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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는 많이 안했고 더 다듬어서 개인 블로그나 SNS같은데 올리려고 한다


초고 만들어지자마자 일단 누구 보여주고싶은 마음에 올려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