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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점심 때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머리 자르고 뭐 자꾸 일 있어서 어영부영하다가 이제 다 읽음...ㅎㅎ



순서는(링크첨부예정)


음복(飮福)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이미 했음)

그런 생활

다른 세계에서도

인지 공간

연수

우리[畜舍]의 환대


-


한줄 요약


낙태(임신중절)에 관하여



일단 전체적인 감상부터 말하자면, 괜찮다. 나쁘지 않다. 다소 붕뜨는 서사인 것 같지만(갈등이 심화되거나 그런 게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썩 나쁜 건 아니다. 거기에 나름 다루는 담론도 편향적으로 서술되지 않았다. 물론 이것도 결국 하나의 주장이라 생각하기에 나로선 온전히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건 나름 온건하고 소설로서 메세지 전달에는 살짜콤 성공했다는 느낌이다.



소설 전체 구성은 '나'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동생의 자식인 '당신'에게 전하는 얘기이다. 전체적인 흐름 자체는 낙태죄의 헌법재판소 판결까지, 판결이 있기까지에 있었던 관련자 '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소설 내내 주구장창 다뤄지는 것이 임신과 낙태에 관한 이야기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이나 남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언급도 거의 없다. 페미니즘 특유의 핸냄 묘사가 없단 점에서 이 소설이 괜찮게 읽힌 걸지도 모르겠다.(물론 이 소설의 담론 밑바탕에는 결국 페미니즘적 전제나 담론들이 깔려 있는 건 사실이다.)



일단은 소설에서 기본적으로 취하는 태도는 낙태죄는 위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전개하는 세부 논리는 여러 가지가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기존 제도나 구조 따위를 전제하거나, 거기에 승복한 채 안정적으로 취하는 논리에 대해 불편해한다. 해설을 보니 "모성을 전제"하는 것부터가 미래의 모성에 속박되는 것이며, 임신중절이 "쉬운 선택이 아니라"고 전제하는 순간, 그 선택을 취하는 여성들은 절박한 심정에서 택하는 절박한 선택, 곧 나약한 선택으로 만들어서 죄책감과 죄악감에 휩싸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은 당연하게도 여성의 주체성을 지우는 것이고, 여성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나'가 느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일단 이 감상문에서 굳이 이런 의견들에 대한 사견을 덧붙이고 싶지 않으니 소개만 하지만, 소설 전개 자체는 '나'의 견지만이 무족권 옳다! 라고 강경하게 주장하기보다는 느슨하게 가는 편이다. '나'는 저렇게 주장을 대놓고 한 게 아니라, 참고 참다가 한 번 꺼내고 만다. 직접 읽어보면 알겠지만 딱히 '선민'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그냥 알고보니 레즈비언이었을 뿐(...) 그러니까 '모성'을 전제하며 논리를 펼치는 순간 레즈비언인 자신이 낄 자리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담론도 은연 중에 껴있는 것이다.



이런 담론이 메인으로 전개되는 와중에 '나'의 동생인 해수는 과속으로 임신을 하고, 자기 뜻대로 결혼과 출산을 결정했다. 해수의 임신과 결혼의 소식,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결국 앞서 다뤄지는 낙태에 관한 담론들 중에 '나'가 그렇게 생각했던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해보려는 예시나 사례격의 사건이 아닌가 생각해봤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이 소설 역시 '그런 생활(김봉곤)'과 마찬가지로 수필인지 소설인지 헷갈린다는 것이다. 갈등이랄 것이 존재하지 않고-그런 생활은 명확하게 존재했고, 그걸 너무 손쉽게 해결했지만-딱히 흐름이랄 것도 없다. 여기서 다뤄지는 담론의 내용과 '나'의 논지만 이해하면 이 소설은 안 봐도 된다. 볼 필요가 없다. 이게 전부인걸.



그러니까 "앞서 나온 작품들 치고" 완성도 높고, 깔끔한 문장과 나름 깊게 고찰되고 반영된 담론들이 나온 것은 분명 호평할 만한 부분이지만, 반대로 이게 "주장하는 글쓰기"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해수는 근거로 든 실제 사례, 그 사이 내용은 자신의 논리와 여타 다른 논리들에 대한 반박(목적은 같지만 논리 방식에서 차이가 있는 것들에 대해). 심지어 해설에서조차 이 이야기의 줄거리를 말 안 한다. 말할 게 없거든. 젊은작가상은 어째 나사가 한두 개 큼지막하게 빠진 것들만 모아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제목인 '다른 세계에서도'는 '나'가 해수의 선택에 대하여, 자신의 선택에 대하여, 어떤 선택을 내리건 간에 사랑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해설이 설명한다. 근데 처음에 결말부 읽을 땐 당신(조카)이 없는 세계에서도 사랑할 거라는 얘기에 좀 많이 섬뜩했다. "이모는 널 낙태한 세계에서도 널 사랑했을 거란다(했단다)"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일지 잠깐 상상해봤는데 진짜 소름끼칠 듯...... 물론 선택 자체를 존중하는, 곧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긍정과 사랑임을 나타내는 뜻에서 결말과 제목이 그리 지어진 것이지만, 막상 그 말을 받는 당사자인 조카는 이걸 평생 모르는 편이 낫지 않을까(제 2의 음복 남편 탄생) 싶은 그런 소설이었다.



담론 다루는 건 문제소설들이나 앞선 작품들에 비해 훨~씬 낫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훨~씬 나은 실력과 여전한 서사의 부재 때문에 논설문과 뭐가 다른지 헷갈리는 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