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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두 작품을 다 읽어야 되겠지만...... 난...... 난 젊작상 대상을 인지 공간이 탔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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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공간
연수
우리[畜舍]의 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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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 요약
하나는 모두, 모두는 하나. 그러나 하나는 오롯이 하나.
진짜 개꿀잼으로 읽었다. 원래 이런 추상적이면서도 SF적인 느낌을 엄청 좋아하던 터라 객관성 잃고 허겁지겁 읽은 것도 사실이지만...ㅎㅎ 재독 3회독 얼마든지 하고싶을 정도로 재밌게 읽었음. 리뷰를 몇 번 접해서 이것도 서사가 부족하나 싶었는데 결말부가 프롤로그이자 하나의 결말처럼 구성돼서 그렇게 느낀 게 아닐까 생각 중이야. 물론 장르적으로 이게 SF냐고 묻는다면 난 그건 좀 애매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어쨌건 그건 분류의 문제일 뿐, 작품에 흠이 될 만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건 오롯이 내 감상과 해석으로만 적고 싶어서 작가 노트랑 해설은 감상문 다 쓰고 볼 예정임ㅋㅋㅋ 그만큼 독자 스스로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그러면서도 작품 방향성이 존재하는, 나름 단편으로선 주제 전달과 전개의 충실성을 알뜰히 챙겼다고 봐. 독붕이들은 맨날 까던 내가 갑자기 이렇게 호평 일색하니까 엄청 주관적으로 보일 수 있는데, 내가 원래 이런 내용, 이런 전개에 좀 환장해서 어쩔 수 없다ㅎㅎ 미안!
단점이 없는 건 아냐. 일단 결말부가 난 개인적으로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깔끔한 완결이냐고 물으면 좀 애매한 것 같아. 서사가 다른 곳에 비해 부족하진 않지만 이 한 편으로는 너무 짧다고 해야 하나. 오히려 이런 건 장편으로 써서 적어도 100쪽 200쪽으로 써내야 주제를 좀 더 많이 다룰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 요컨데 단편으로서 썩 나쁜 건 아니지만 장편이었다면 더 좋았을 작품? 근데 작가가 장편을 못 쓴다면 여기에 만족해야 되겠지만 OTL
그리고 또 다른 단점이라 한다면 추상적이라는 느낌? 인지 공간이라는 격자 구조물이 나는 매트릭스처럼 가상 공간인줄 알았는데 실제 3차원 건축물이었고, 여기서 놀다가 떨어져서 다칠 수도 있단 점에서 머릿속에 그려내는데 애를 먹었어. 파울로 코넬료의 연금술사 읽는 느낌이랄까. 뭔가 대표성을 띄는 단어들과 내용을 내세워 주제 전달이나 의미 파악은 손쉽게 되는 대신, 머릿속에 그려내기가 쉽지 않은...... 만약 구체적인 상상을 하면서 읽는다면 인지 공간 읽을 때 답답함을 숨길 수 없을 거야. 여기 장소, 배경 묘사 하나도 없거든. 하물며 인물 묘사조차도. 오죽하면 여주 이름이 이브라서 월-E에서 나온 이브 생각났다니까.
물론 그런 배경, 인물 외형적인, 시각적인 묘사가 중점적인 게 아니라서 상상하는 부분만 좀 타협하면 내용을 즐기기엔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 내용과 서사 전개에 충실하거든. 진짜 엄청 충실해. 이브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이브의 죽음까지의 일을 회상하고, 이브의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깔끔하기 짝이 없는 현재-과거-현재의 동심원 구조를 따르고 있어. 시간 서술 자체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 난잡하게 흩트린 것도 없어서 이게 무슨 내용인지 얘기하기 너무 편해. 사실 따지자면 결말부만 읽고 내용 얘기해도 전부 얘기한 거긴 한데ㅋㅋㅋ 결말부를 위한 앞선 내용의 설명이었으니까.
그래서 무슨 내용이냐고? '나(제나)'가 '이브'의 죽음을 계기로 인지 공간을 벗어나는 이야기야. 작중 초반에 이브의 죽음을 통한 계기가 소개되고, 그것이 어떻게 계기가 되었는지 과거 회상을 통해 풀어낸 뒤, 다시 현재로 돌아와 그 계기를 통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담아냈어. 내용을 파악하는 건 정말 단순하리만치 쉽지만, 주제를, 메세지를 파악하기 위해선 '인지 공간'이란 존재에 대해 확실히 알아두는 게 필요하겠지.
인지 공간은 인류보다 앞서 존재한 것으로, 격자 공간이라고도 불리고, 여러 이름으로 불려. 중요한 건 이 3차원 구조물은 더 작은 3차원 구조물들로 이루어져 있고, '격자'의 교차점에 개념이 저장되는 형식이지. 대충 설명하는 거라 자세한 건 직접 읽어보기 바라고, 중요한 건 이 인지 공간은 '영원의 지식'이며, '모두의 공간'이고, '모두의 지식'이며, '지식의 끝'인 곳이야.
우리의 모든 지식은 인지 공간에 귀속돼 있고, 인지 공간에 속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적인 일이며, 우리 모두는 인지 공간에 속해야 된다는 것이지. 이곳에서 개개인은 그렇게 의미있는 존재가 아니며, 개인의 지식은 인지 공간의 지식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 모든 것은 기록되지만 공간의 한계(직접적으로 서술되진 않지만) 때문에 중요하고 필요한 정보를 '선별'해내 그것을 우선적으로 배치하고, 그렇지 않은 건 점차 잊히는 거지. 좀 더 쉬운 비유를 들자면 네이버 웹툰에 2017 멋진 신세계에서 1화로 나온 배진수/임진국 작가의 CIRCLE OF LIFE가 있어.(작품 자체는 어렵지만)
CIRCLE OF LIFE에서는 가상세계로 뇌를 전이하는 방법을 찾아냈고, 그곳에서는 모든 존재의 지식이 통합되면서 하나가 모두가 되고, 모두가 하나가 돼. 인지공간은 그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정보의 공유'와 '모두 앞에 무력한 하나'라는 점에선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 물론 두 작품은 이런 비슷한 상황에 대한 방향이 조금씩 달라. CIRCLE OF LIFE에선 그런 세계 속에서 '나'는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역설적으로 '나'가 '모두'가 됨을 의미하면서, 또 다른 '모두'의 순환이 나오며 결론을 맺지만, 인지 공간에서는 '하나는 모두, 모두는 하나'이면서 동시에 '하나는 오롯이 하나'일 방법을 찾아나서는 걸로 끝나.
이브와 결말부의 '나'를 제외하면 인지 공간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인지 공간 바깥으로 넘어가면 '나'를 잃을까 염려해. 아이러니하게도 인지 공간에 속한 그들은 인지 공간에 철저하게 의지하면서 인지 공간에서 사고하는 등, 인지 공간에 귀속된, 곧 '모두는 하나'된 모습만 보여. 각자의 개성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지 공간 아래서 존재하는 개성일 뿐, 인지 공간이라는 '모두'를 벗어난 순간 하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는 것이지. 독립성이 없는 개성은 무의미하다고 이브가 주장했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가 결국에 납득하고야 만 것이지.
이는 인지 공간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나와. 집단 기억의 쇠퇴, 이야기의 부재는 곧 기억의 소멸을 의미함을 알게 되면서 말이지. 분명 인지 공간 속에서 '개인'은 존재하지만, 그 개인이란 것도 결국 살아있을 때 얘기지, 죽는다면 '잊고 보내주는 게' 그들의 풍습이야. 왜냐면 인지 공간의 기억을 쓸 데 없이 차지하게 되는 일이니까. 앞서 말했듯, '모두가 하나'된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지. 집단지성은 인지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놀라운 업적과 성취를 달성해냈지만, 인지 공간 자체의 한계는 곧 집단의 쇠퇴와 몰락을 예고하고 있었던 거야. 더불어 개개인으로서의 소멸도.
'하나는 모두, 모두는 하나. 그러나 하나는 오롯이 하나'를 암시하는 장면은 우주의 별을 세는 것에서 처음 나와. 한 개인으로선 결코 우주의 모든 별을 셀 수 없지. 집단의 힘이 필요하고, 인지 공간이 필요해. 하지만 인지 공간'만' 우주의 별들을 담으려 한다면 담을 수가 없어. 한 개인도 못 담아내고, 모두의 인지 공간도 담아낼 수 없다면, 우주의 별들은 어떻게 담아내야 되는 걸까? 그것에 대한 답이 바로 이브가 개발하려 했던 개개인의 인지 공간(이는 6면체에서 벗어난 구의 형태를 갖춰), 곧 내가 한줄 요약에 설명한 "하나는 모두, 모두는 하나. 그러나 하나는 오롯이 하나."라는 거야. 개개인의 인지 공간, 통합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개인의 영혼이 깃들 수 있는 인지 공간.
그리고 '나'는 이것을 증명하기 위한 첫 증거로 나서는 걸로 끝이 나. 내가 왜 장편이었으면 더 좋았겠는지 공감이 갔을까? 집단과 개인 사이에서 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이 개인의 정체성을 함몰시킨다면, 그 집단은 결국 쇠퇴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고 봐. 그걸 말하는 것 같고. 하지만 개인의 정체성만으로는 집단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가 없지. 또 개개인의 정체성을 고유하게 유지시키면서도 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을 함양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처럼 보이고. 현대 민주주의만 해도 개개인의 정체성(의견)을 모두 유지시킬 수 없어서 뜻을 대표할 자를 뽑잖아. 물론 인지 공간이 정치적인 이상향을 그려낸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예시격으로 든 거야ㅎㅎ
인지 공간이 말하고 싶었던 건, 개인과 집단의 조화인 것 같아. 이브는 인지 공간의 한계를 지적했지만, 부정은 하지 않았어. 개인으로선 할 수 없는 것을 인지 공간은 가능했으니까. 그러나 개인과 인지 공간이 조화를 이룬다면, 하나가 모두가 되고, 모두가 하나가 되면서도 하나가 모두에게 잡아먹히지 않는다면, 분명 더 놀라운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인지 공간의 기억은 영원하니까.
특히 이브가 인지 공간에 들어가기 부적격한 신체라서 인지 공간에서 소외된 개인이었단 점에서, '하나는 오롯이 하나'여야만 한다는 게 강조된 것 같기도 해. '모두'에서 떨어져나간 하나는 하나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인지 공간의 사람들은, 이브를 동정하고 이브를 위해 힘쓰지만, 이브가 죽자마자 그녀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고 정한 것에서부터, 산 자를 위한 동정, 곧 이브 개인을 위한 동정이 아니었던 것이지. 친구라 여겼던 '나'를 제외하고.
맨 처음에 꺼냈던 장르 분류 얘기로 넘어가자면...... 이 인지 공간은 솔직히 말해서 판타지에 가깝다고 봐. SF적 판타지. SF라고 하기엔 좀...... 무리인 것 같아 OTL 내가 래니 니븐의 링월드로 SF를 처음 접해서 그런지(애초에 링월드는 하드 SF지만) 이건 SF라고 부르기엔 차라리 스페이스오페라... 근데 이건 우주 배경도 아니잖아. 그냥 판타지 하자. 굳이 따지자면 순문학 느낌 40% 판타지 느낌 60%
되게 재밌게 읽었네. 이게 대상 받았어야 했는데. 분량이 아쉽다. 더 길었어야 했는데.
초엽쟝 성공했구나....
김초엽! 김초엽! 김초엽!
하나는 모두 모두는 하나라니 강철의 연금술사 ㄷㄷ
강철의 연금술사는 순환을 통해 설명했다면, 여기선 지식의 통합을 통해 설명했다고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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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시네 화이팅
이제 2개 남았다!!!
흠터레스팅하네요... 다들 보는 눈이 많이 다른 듯 ㅎㅎㅎ 저는 인공지능이 컨셉은 있으나 글로는 별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수록 7개 중에 미숙한 쪽에 속한다고 봤는데.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지공간 아닌가?ㅋㅋ 깔끔한 구성에 말하고 싶은 바가 명확하고 어떤 내적갈등 끝에 어떻게 나아갈지 다 제시된 작품이라 다른 작품에 비해 호평할 수밖에 없어서 이리 됐네ㅎㅎ
22 소년만화 사유를 본뜬 이야기..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만약 SF라고 못을 박았다면 대차게 깠을 텐데...ㅋㅋㅋ 장르 분류는 되게 애매했다
님 말고도 독갤에 인지공간 호평한 사람 있던데 ㅋㅋ 솔직히 인지공간 읽고싶은데 다른 작품들 평 들어보면 별로같아서 젊작상 사기 아까움
맞아 나도 그래서 꽤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생각 이상이었어. 물론 이것만 보고 사기엔 애매한데, 5천원이니까 그냥 사고 봐도 될 것 같기도 하고...
좀 안타까운게 이게 SF 장르 타이틀을 달고 나왔음에도 다른것보다 상대적으로 나을 정도면...
장르 타이틀은 안 붙이는 게 평가 더 좋아. SF 장르라고 하면 이건 욕 좀 먹어야 함
어...감상에 정답은 없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개인과 집단의 갈등과 화해'로 「인지 공간」을 읽은 선생님의 독해가 굉장히 위험한 독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다른 감상에 첨언하는 편은 아니지만, 해설을 위해 소설을 50번 넘게 읽은 사람으로서 걸리는 부분이 있어 답글을 답니다.
소설에서 공동체는 이브의 신체적 장애를 전혀 배려하지 않습니다. 과연 그런 공동체가 어떠한 변화도 없이 유지되어도 괜찮은 것일까요... 공동체를 떠나는 제나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소설이 '개인과 집단의 갈등과 화해'를 추구하고 있다기보다는 '개인을 배려하지 않는 집단의 근본적 변혁'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과 저의 근본적 차이는 이브를 개인으로 두냐 소수자로 두냐에 있는 것 같은데, 우선 저의 독해를 먼저 설명드린 다음 선생님의 독해에서 제가 느낀 위험한 감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이 저의 부족한 해설을 읽으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브를 소수자(정확히는 장애인)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작가 노트'에 장애학이 명시적으로 표시되어 있어 놀라기도 했는데(나중에서야 시사in에 김원영 변호사와 함께 쓴 칼럼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이브를 소수자로 본다면, 대결적인 구도는 성립할 수 없어집니다.
'농인과 청인이 갈등을 겪고 있다 혹은 화해를 했다'는 식의 문장은 애시당초 성립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처음부터 세계가 청인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청인이 일상에서 누리는 것을 농인이 누리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은 절대 갈등일 수 없으며, 결국 농인이 그것을 쟁취한 결과는 절대 화해일 수 없습니다.
가령 수능 듣기 평가에서 농인이 특별한 조치를 요구할 때 청인이 역차별 운운하면서 반대한다면, 그리하여 논쟁이 붙는다면, 그것은 갈등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혹은 그러한 요구가 수용되었을 때 그것을 화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에서 이브는 지식에 관하여 어떠한 기본적인 도움도 받지 못합니다. 특별한 사다리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것은 고작 생존에 필요한 지식에만 접근 가능할 뿐이었죠. 이브는 투쟁의 방식으로 스피어를 고안합니다. 가장 배려받아야 할 존재를 배제하는 세계를 전복하기 위해서였죠.
즉, 이브는 공동체와 갈등을 겪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것을 요구했고 무시받았을 뿐이었죠. 물론 굉장히 느슨한 의미로 여기에 갈등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나 화해는 절대 아닙니다. 이브는 세계를 아예 바꾸려고 했으니까요.
해체주의 철학자인 자크 데리다를 여기서 잠시 인용하겠습니다. 그는 '외파(폭발, explosion)'에 대비하여 '내파(implos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어떤 체계를 정면으로 반박하려 한다면 그것은 외파이고, 어떤 체계의 원리를 극단적으로 추동시켜 무너뜨리려 한다면 그것은 내파입니다.
예컨대, '생명의 목적은 종족 번식이다'라는 명제에 대해서 '생명의 목적은 자기 실현이다'라고 제시하는 것이 외파이며 '생명의 목적이 종족 번식이라면, 종족은 유전자인가 개체인가 종인가 속인가 과인가 목인가...'라고 제시하는 것이 내파입니다.
소수자에 관한 수많은 논의는 대개 다수자의 체계를 외파(공략)하기보다는 내파(낙후)시키는 방향으로 다뤄집니다. 어째서냐고 물으신다면 이건 나중에 장문으로 올리도록 하겠고요, 하여튼, 이브는 전복을 위해 격자 구조를 내파합니다. 가장 다수자에 복무하는 개념을 가장 소수자에 적합한 개념으로 바꿔버리죠.
많은 논증을 건너뛰긴 했지만 저의 독해는 선생님의 독해와 크게 두 가지로 달라집니다. 1. 대결적인 구도를 성립시키지 않는다. 2. 이브가 인지 공간을 활용한 것을 두고 인지 공간에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지 않는다.
이제 선생님의 독해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선생님은 이브를 개인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이후 대결적인 구도를 도입하셨으며("인지 공간이 말하고 싶었던 건, 개인과 집단의 조화인 것 같아") 그것의 근거로 이브의 태도를 제시했습니다("이브는 인지 공간의 한계를 지적했지만, 부정은 하지 않았어.")
저는 이러한 생님의 문장이 다소 정확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우선 이브는 공동체와 어떠한 명시적인 갈등도 겪지 않습니다. 아예 소외되어 있을 뿐이지요. 제나와 어느 정도 불화를 겪는 것처럼 느껴지나 그것은 순전히 서술자가 제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브는 끝까지 제나를 설득하려 했지요. 제나를 벗으로 믿었으니까요. 이브의 간절한 목소리를 불화의 징조로 치부한 것은
제나였습니다. 이브는 공동체와 대결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사실상 인지 공간에서 차단된 이브를 두고 "부정은 하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것이 정당한지 의문입니다. 무언가를 누려보지도 못했는데 거기에 대해 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요. 또 인지 공간이 집단 기억과 공동 지식을 형성한다는 묘사를 보아서는, 스피어가 가능케한 개인적 기억과 지식은 인지 공간을 전복
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개인으로선 할 수 없는 것을 인지 공간은 가능"하게 했더라도 그것이 자신과 같은 존재를 고려하지 않는 이상 무의미할 뿐이라고 이브는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요. 저는 이브가 세계와 타협하려 했다기보다는 세계를 새로 구축하려 했다고 느낍니다.
어쩌다보니 글이 길어졌네요. 사실 해석은 굉장히 주관적인 영역에 속하기에 또 정답이 되는 기준도 없기에 답글을 달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선생님의 한국문학 읽기가 저로 인해 방해를 받을까 염려도 들었고요.
그러나 선민적(혹은 계몽적)으로 비쳐보일 각오를 하고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은, 본문의 결론이 타당하지 않으며(소설은 전혀 대결적인 구도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인지 공간을 옹호하지도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이번 소설에 많은 공감을 표한 분들한테 상처를 줄 수도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자신이 읽은 모든 소설에 대해 진솔하고 자세하게 감상을 남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글에 실제 작가가 등장했던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자신의 글을 좋게 읽었든 나쁘게 읽었든 선생님 같은 독자는 흔치 않으니까요.
함부로 남의 문장을 재단하며 그것을 시니컬하다고 여기는 이곳 독서갤에서 저는 선생님이 몇 안 되는 사려깊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선생님의 모든 글을 따라읽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더욱 이런 장문의 답글을 올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신실한 글쓰기를 계속해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새끼 ㅅㅂ 뭐야 왜 혼자 씨부렁대 무섭게...
'정답은 없지만' '위험하고 폭력적인 독해' '그래도 니 태도는 신실하고 사려 깊어' '아 그리고 나 계몽주의자임 ㅋ'
애들아 비꼬지 마ㅋㅋ 내가 어느 정도 오독한 거 인정했음ㅋㅋ
감상에 아무리 답이 없다지만 그것도 작품 내의 근거들이 타당할 때에만 그런 거지. 이건 살짝 글쓴이가 오독한 게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