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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열여덟 살이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형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인간의 신비입니다. 그 신비를 풀기 위해 인생 전부를 바친다 해도, 시간을 낭비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내가 이 신비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나는 인간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위대한 심리분석가는 자신의 소명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모든 창작은 인간의 신비에 관한 것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속에는 풍경이나 자연에 대한 묘사가 없다. 그는 인간과 인간의 세계만을 그린다. 그리고 그의 주인공들은 자연적인 세계 질서에서 일탈하여 '살아있는 삶'으로부터 유리된 당시의 도시 문명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작가는 자신의 사실주의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가 작품 속에서 묘사한 것은 루소가 말한 추상적인 '보편적 인간'이 아니라 '병적인 의식'의 끝없는 모순을 간직한 19세기의 실제 유럽인이었다. 이 러시아 소설가는 '혼란스런 시대'의 주인공, 즉 '지하 생활자'의 진정한 얼굴을 발견해낸 최초의 작가였다. 이 새로운 햄릿은 끊임없이 회의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고, 병적으로 깊은 생각에 빠져 있으며, 의지가 약해서 활동력이 없다. 그는 비극적으로 외롭고 분열되어 있다. 그는 '학대받는 생쥐'의 의식을 지니고 있다.

19세기 말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이 인류가 경험하고 있던 세계적 비극의 의미를 이해한 유일한 유럽 사람이라고 느꼈다. 오직 그만이 "진정한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옛 사상'은 사라지고 인류는 신을 잃은 채 지상에 남게 되었다. 그가 쓴 '비극 소설'들은 '신에게 버림받은 인류'의 운명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예언적으로 인신사상과 가축 무리라는 두 가지 길을 지적했다.

《악령》의 키릴로프는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내가 신이다"라고 외친다. 신인 대신에 인신이 나타난다. 그는 도덕이나 '선과 악의 경계를 넘어서 있고' 그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되며' 모든 법을 '어길' 수 있는 (라스콜리니코프, 로고진, 키릴로프, 스타브로긴, 이반 카라마조프등과 같은) '강인한 성격의 인물'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위대한 발견을 했다. 인간의 본성은 신의 본성과 상관적이다. 신이 없으면 인간 또한 없다. 새로운 악마적 존재인 인신 속에서 인간적인 모든 것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 러시아 작가는 니체의 등장을 예고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저자가 창조한 초인 역시 자신의 존재를 통해 인간의 파괴를 보여준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은 수치와 불명예로 그 안에서 제거된다.

무신론적 인류의 또다른 길은 가축 무리가 된다.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정점을 이루는 것은 <대심문관에 관한 전설>이다. 인간이 자연적인 존재에 불과하고 또 영원불멸하지도 않다면, 그들은 행복의 가장 큰 가능성을 갖고 지상에 자리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원래가 '무능한 반역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노예화해서 순종하는 가축 무리로 변화시켜야 한다. 대심문관은 그들을 쇠막대기로 지킬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개미집이 세워지고, 바벨탑이 건설되어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인신사상과 가축무리, 이 두 가지 길은 똑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바로 인간의 억압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묵시론적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전대미문의 세계적 재난을 예고했다. "세상의 끝이 오고 있다. 그리고 한 세기의 끝에 전에 발생한 적이 없는 재난이 일어날 것이다." 《악령》의 저자가 지닌 비극적 세계관은 19세기의 실증주의자들에게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는 파국적인 우리 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신의 포기가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최종 메시지는 아니다. 그는 '어두운 밤'을 묘사했지만, 새벽에 대한 예감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역사의 비극이 세상의 변화로 끝나게 될 것이며, 인류의 수난 이후에는 그리스도의 두 번째 재림이 있을 것이고 "새로운 최후의 부활의 찬가가 울려 퍼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단테, 세르반테스, 밀턴, 파스칼 등과 함께 세계 문학사의 가장 위대한 기독교적 작가의 반열에 올라 있다. 그는 <신곡>의 중세 지옥보다 더 끔찍한 인간의 모든 지옥들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 지옥의 화염 속에서 불타 소멸되지는 않았다. 이 작가가 평생동안 온 마음을 다해 추종했던 것은 베르길리우스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빛나는 모습'이었다.

출처:주나나의 세상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