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성 탱킹하러 철갤에서 원정왔다.
도갤에서 이지성을 어떤 식으로들 깠었는지 그 역사는 모르지만
움츠러드는 모습들을 보니 그 트위터의 그 막연한 고소미 드립 보고 쫄만큼의 무엇,
즉 일부 도갤러들 스스로도 떳떳하지 못한 부분이 있긴 있었던건가 하고 미루어 짐작할 뿐인데...
여튼 이지성 책은 <리딩으로 리드하라> 하나만 읽어봤는데 읽고 크게 실망했고 굉장히 비판적으로 봤었고
이지성이 직접 와서 볼지 어쩔지는 모르겠는데 까야될건 까야겠어서 고소미 어글 탱킹하러 왔다. (원래 철학 갤러리/철갤 챗방에서 서식함)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책을 요약하면 "인문고전 읽어라"라는 것인데
그 주장 자체에 동의하지 않아서 까는 사람은 적어도 도갤에선 없었으리라 본다.
저 하나의 주장으로 책이 요약된다는건 책의 나머지를 저 문장에 대한 논증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논증을 폭로시키는게 비판의 요지임.
저자는 인문고전을 읽으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물론 이유도 제시한다. 그 주장과 이유가 함께 논증을 구성한다.
그럼 저자가 책에서 제시하는, 인문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들이 뭔가?
물론 여러가지가 있고, 그 중에는 뻔하고 흔하며 닳고 닳은 것들 (옛 성현의 지혜, 축적된 인류의 지적 유산 등등) 도 있는데
그보다 저자가 좀 더 힘주어 강조하는 점, 좀 더 초점을 맞춘 지점, 좀 더 책의 셀링 포인트로 잡은 점은
다름 아닌 "성공"이지.
여기서의 이 성공이란 개념은 사회적 성공 (명예) 와 물질적 성공 (부) 로 간단하게 분석된다.
- 성공한 사람들 중에 인문고전 많이 읽은 사람들이 많고, 인문고전 많이 읽은 사람들이 더 많이 성공한다.
- 그러므로 성공과 인문고전 읽기는 상관관계가 높다.
- 따라서 인문고전을 읽어야 성공할 수 있다, 혹은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이 논증에서 빠져있는 것과 간과되는 것이 두가지 있다.
하나는 삶의 목적의식을 앞서 분석된 개념 대로의 성공에 맞춰놓는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성공의 가치가 인문고전의 가치 위에 놓인다는 점이다.
즉, 저자는 이미 독자를 그런 "성공"을 원하는 사람으로 한정시켜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문고전이라는 것의 가치를 "성공"이라는 목적가치를 성취하는데 필요한 수단가치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걸보고 저자를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위에 성공한 사람들 - 저자가 그토록 좋아하는 스티브 잡스나 조지 소로스 등을 비롯한 성공한 기업가들 - 과
인문고전 읽기의 상관관계가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과학적으로 실증가능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상관관계"라는 것은 굉장히 약한 개념이다.
간단하게 그 문제점을 드러내보자.
세계적으로 대단히 성공한 기업가들의 평균적 학력은 서구 명문대 출신의 비중이 월등히 높다.
또한 그들의 출신성분 역시 신흥 부르주아지를 넘어 귀족적인 배경을 가지는 이들이 많다.
이를 간단히 "상류층"이라고 편의상 칭해보자.
이 상류층은 다른 계층보다 인문고전을 더 많이 읽는 환경이라는 것 역시 쉽게 실증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미 그들은 "인문고전을 많이 읽는" 군에서 추출된 표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 인문고전, 상류층의 3개 변수가 모두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가진다.
여기서 만약 인과관계는 성공-상류층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고, 인문고전은 우연하게 양쪽에서 상관관계가 높게 나타나는 것이라면 어떨까?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인문고전"을 "백인 남성"으로 치환해보라. 부르디외 사회학의 아비투스가 명백히 드러난다.
또, 인문고전의 가치가 "성공"에 대해 수단적이라는 분석을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가치부여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성경에 대해 종교적, 계시적 부분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단지 잠언적인 부분만 취한다면 훌륭한 책이라고 말했다는 것은 유명한데, 이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그런데 아무도 벤자민 프랭클린을 보고 성경에 대한 권위자나 학자로 받아들이지 않듯이,
이지성 역시 적어도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 말하는 바만 가지고는
본인 스스로 인문고전을 충실하게 읽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평가지만, 나로서는 플라톤의 "국가"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동양에서는 노자의 "도덕경"까지 갈 것도 없이 공자의 "논어"만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도저히 쓰기가 부끄러울 천박한 책이라 느껴졌다.
진심으로, 인문고전의 참된 가치가 스티브 잡스처럼 되는데 있거나 조지 소로스, 빌 게이츠처럼 되는데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서, 스티브 잡스라는 그 한 명의 사람이 가지는 의미 혹은 가치라는 것이 대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절대다수의 우리는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애플에 납품하는 LCD 하나 만드는데 필요한 수만명의 엔지니어 중 하나로 살기도 버거워 아둥바둥한다.
플라톤의 철인치자는 결국 욕망을 따라 생산소비하며 사는 절대다수의 시민과의 관계에서 존재 의미를 가지고,
공자와 맹자가 말하는 군자와 성인도 두루 널리 백성을 이롭게 하는데에서 그 존재 의미를 가진다.
"리드"하는 "리더"가 되어 성공을 지향하는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이 인문고전을 통해 이지성이 다다른 종착역인지?
내가 딱히 낙관주의자도 아니고 지고지순한 도덕과 윤리를 고수하려는 입장도 아니지만,
적어도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그 깊이 없음과 천박한 정서에 쉽게 기대어 편승하려는 책 장사의 느낌이 짙어 너무 실망스러운 책이었다.
인터넷에 익명으로 이런 서평을 쓰는게 고소감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쓰면서 딱히 못할 말 했다고 생각되는 것도 없고,
면전에 대고 못할 말 역시 한 바가 없다고 생각이 되니, 명확하게 법에 저촉되는 바가 있다면 이지성 씨가 변호사를 선임해서 접촉을 취하시길.
http://blog.daum.net/h965k
내 블로그 주소니 연락은 이쪽으로 취하면 된다.
http://m.dcinside.com/view.php?id=book&no=267604
도갤에서 이지성을 어떤 식으로들 깠었는지 그 역사는 모르지만
움츠러드는 모습들을 보니 그 트위터의 그 막연한 고소미 드립 보고 쫄만큼의 무엇,
즉 일부 도갤러들 스스로도 떳떳하지 못한 부분이 있긴 있었던건가 하고 미루어 짐작할 뿐인데...
여튼 이지성 책은 <리딩으로 리드하라> 하나만 읽어봤는데 읽고 크게 실망했고 굉장히 비판적으로 봤었고
이지성이 직접 와서 볼지 어쩔지는 모르겠는데 까야될건 까야겠어서 고소미 어글 탱킹하러 왔다. (원래 철학 갤러리/철갤 챗방에서 서식함)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책을 요약하면 "인문고전 읽어라"라는 것인데
그 주장 자체에 동의하지 않아서 까는 사람은 적어도 도갤에선 없었으리라 본다.
저 하나의 주장으로 책이 요약된다는건 책의 나머지를 저 문장에 대한 논증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논증을 폭로시키는게 비판의 요지임.
저자는 인문고전을 읽으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물론 이유도 제시한다. 그 주장과 이유가 함께 논증을 구성한다.
그럼 저자가 책에서 제시하는, 인문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들이 뭔가?
물론 여러가지가 있고, 그 중에는 뻔하고 흔하며 닳고 닳은 것들 (옛 성현의 지혜, 축적된 인류의 지적 유산 등등) 도 있는데
그보다 저자가 좀 더 힘주어 강조하는 점, 좀 더 초점을 맞춘 지점, 좀 더 책의 셀링 포인트로 잡은 점은
다름 아닌 "성공"이지.
여기서의 이 성공이란 개념은 사회적 성공 (명예) 와 물질적 성공 (부) 로 간단하게 분석된다.
- 성공한 사람들 중에 인문고전 많이 읽은 사람들이 많고, 인문고전 많이 읽은 사람들이 더 많이 성공한다.
- 그러므로 성공과 인문고전 읽기는 상관관계가 높다.
- 따라서 인문고전을 읽어야 성공할 수 있다, 혹은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이 논증에서 빠져있는 것과 간과되는 것이 두가지 있다.
하나는 삶의 목적의식을 앞서 분석된 개념 대로의 성공에 맞춰놓는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성공의 가치가 인문고전의 가치 위에 놓인다는 점이다.
즉, 저자는 이미 독자를 그런 "성공"을 원하는 사람으로 한정시켜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문고전이라는 것의 가치를 "성공"이라는 목적가치를 성취하는데 필요한 수단가치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걸보고 저자를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위에 성공한 사람들 - 저자가 그토록 좋아하는 스티브 잡스나 조지 소로스 등을 비롯한 성공한 기업가들 - 과
인문고전 읽기의 상관관계가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과학적으로 실증가능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상관관계"라는 것은 굉장히 약한 개념이다.
간단하게 그 문제점을 드러내보자.
세계적으로 대단히 성공한 기업가들의 평균적 학력은 서구 명문대 출신의 비중이 월등히 높다.
또한 그들의 출신성분 역시 신흥 부르주아지를 넘어 귀족적인 배경을 가지는 이들이 많다.
이를 간단히 "상류층"이라고 편의상 칭해보자.
이 상류층은 다른 계층보다 인문고전을 더 많이 읽는 환경이라는 것 역시 쉽게 실증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미 그들은 "인문고전을 많이 읽는" 군에서 추출된 표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 인문고전, 상류층의 3개 변수가 모두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가진다.
여기서 만약 인과관계는 성공-상류층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고, 인문고전은 우연하게 양쪽에서 상관관계가 높게 나타나는 것이라면 어떨까?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인문고전"을 "백인 남성"으로 치환해보라. 부르디외 사회학의 아비투스가 명백히 드러난다.
또, 인문고전의 가치가 "성공"에 대해 수단적이라는 분석을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가치부여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성경에 대해 종교적, 계시적 부분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단지 잠언적인 부분만 취한다면 훌륭한 책이라고 말했다는 것은 유명한데, 이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그런데 아무도 벤자민 프랭클린을 보고 성경에 대한 권위자나 학자로 받아들이지 않듯이,
이지성 역시 적어도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 말하는 바만 가지고는
본인 스스로 인문고전을 충실하게 읽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평가지만, 나로서는 플라톤의 "국가"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동양에서는 노자의 "도덕경"까지 갈 것도 없이 공자의 "논어"만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도저히 쓰기가 부끄러울 천박한 책이라 느껴졌다.
진심으로, 인문고전의 참된 가치가 스티브 잡스처럼 되는데 있거나 조지 소로스, 빌 게이츠처럼 되는데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서, 스티브 잡스라는 그 한 명의 사람이 가지는 의미 혹은 가치라는 것이 대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절대다수의 우리는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애플에 납품하는 LCD 하나 만드는데 필요한 수만명의 엔지니어 중 하나로 살기도 버거워 아둥바둥한다.
플라톤의 철인치자는 결국 욕망을 따라 생산소비하며 사는 절대다수의 시민과의 관계에서 존재 의미를 가지고,
공자와 맹자가 말하는 군자와 성인도 두루 널리 백성을 이롭게 하는데에서 그 존재 의미를 가진다.
"리드"하는 "리더"가 되어 성공을 지향하는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이 인문고전을 통해 이지성이 다다른 종착역인지?
내가 딱히 낙관주의자도 아니고 지고지순한 도덕과 윤리를 고수하려는 입장도 아니지만,
적어도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그 깊이 없음과 천박한 정서에 쉽게 기대어 편승하려는 책 장사의 느낌이 짙어 너무 실망스러운 책이었다.
인터넷에 익명으로 이런 서평을 쓰는게 고소감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쓰면서 딱히 못할 말 했다고 생각되는 것도 없고,
면전에 대고 못할 말 역시 한 바가 없다고 생각이 되니, 명확하게 법에 저촉되는 바가 있다면 이지성 씨가 변호사를 선임해서 접촉을 취하시길.
http://blog.daum.net/h965k
내 블로그 주소니 연락은 이쪽으로 취하면 된다.
http://m.dcinside.com/view.php?id=book&no=267604
어딜 봐서 탱킹이지.
그 주장의 천박함과는 별개로 그 주장을 하기 위해 사기까지 친다는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는 게 진짜 문제임. 이지성의 주장이 맘에 안든다 해도 민주국가에서 그 내용 자체만으로는 까일 수는 없겠지만 그가 거론한 시카고대의 역사 운운에서 그 인간의 밑천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또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라는 건 사회과학에서 기본으로 배우는 것 상관관계가 아무리 높아도 인과성을 증명하려면 새로 실험설계를 해야 한다.
야이씨 볼드모트 얘기하면 볼드모트의 고소드립보다 더 무서운 도배귀신이 오셔서 영혼까지 빨아먹는다 시발.. 글이 논리적이든 아니든 비난이든 비판이든 그런 건 상관이 없는 것이야
개년글 추천하고 간다
ㅊㅊ
이렇게 써도 고소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