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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읽었거나 읽고 있는 책 중에 대중 강의 혹은 지면 연재를 모아서 낸 책들이 많다. 진화론강의도 그 중 하나. 영국왕립연구소의 대표적인 대중 과학 프로그램인 크리스마스 강연에서 시작한다. 마이클 패러데이가 1825년부터 시작해 근 200년째 계속되고 있다. 도킨스의 강연은 1991년에 있었고 책은 1996년에 나왔다. 그리고 20년 뒤 한국어판이 나왔다. 작년 연말에 나온 리차드 도킨스 자서전 발간 때문에 20년 전 발간된 책을 번역 출간했는지,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나는 굉장히 재밌게 잘 읽었고 출판사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 책은 총 10강으로 이루어졌고 군데군데 삽화가 굉장히 많다. 대부분의 그림은 저자의 부인인 랄라 워드 도킨스가 그려줬다고 하는데 이 점이 굉장히 뜻 깊어 보였다. 또 몇몇 그림은 도킨스의 모친이 직접 그렸다고 한다. 책은 나온지 20년 만에 번역 출간되었지만 크게 이상하거나 어색한 내용은 찾지 못했다. 다만 컴퓨터 프로그램을 설명 중 꽤나 중요하게 사용하는데 20년 동안 말도 못하게 발전했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못했다는 점이 작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 우연과 설계, 유사설계물을 설명하면서 시작하는 1강부터 그 내용이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특히 도킨스는 진화의 결과를 깎아질듯 높이 서 있는 절벽에 비유하는데, 그가 처음으로 사용하진 않았지만 처음 듣고 무릎을 치게 되는 비유였다. 아래에서 절벽 면을 바라보면 결코 올라갈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너무나 복잡해서 결코 진화로 만들어질 수 없어 보이는 눈이나, 그 중간 단계에서는 아무런 쓸모도 없기 때문에 또한 결코 진화의 결과라고 볼 수 없는 날개가 좋은 예다. 하지만 이런 불가능 산도 반대편의 굉장히 완만하고 우리 생각보다 훨씬 길게 펼쳐진 경사로를 통해서라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 도킨스는 바로 이 등산의 길잡이 역할을 자처한다. 4강과 5강에서 날개와 눈에 대해 굉장히 자세하게 설명한다. 단일한 과정을 거쳐 진화하지 않고 지금의 결과에 이르는데 여러가지 경로를 통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여러 동식물을 시의적절하게 끌어 오는 능력 또한 감탄을 자아낸다. 생명의 목적을 이야기하는 8강에서는 그의 책 어디를 펼쳐봐도 찾을 수 있는 DNA의 "나를 복제해" 명령이 또 다시 등장한다. DNA수준의 진화가 아닌 염색체 수준의 진화는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떻게 다른지 다른 책에서 살펴볼 거리가 생겼다.

-도킨스의 책은 학창시절부터 여러 권 읽었지만 진화론에 대해서만 설명하는 책은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그동안 도킨스는 반진화론자들과의 전투 최전방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더욱 익숙했다. 이 책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에게 연민이 들 정도로 철저하게 반박하고 또 조롱한다. 굉장히 통쾌했다. 또 학문적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스티븐 제이 굴드를 반反진화론자들의 반半고의적 오독에서 구하기 위해 두둔하는 모습도 굉장히 낯설지만 훈훈한 광경이었다. 꽤 두껍고 어느 정도의 집중력을 항상 요하는 책이지만 진화론 자체가 너무나 흥미로운 주제이니만큼 읽는 내내 지치지 않고 신을 낼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강연 자체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했던만큼 크게 어려운 내용은 없으니 진화론에 관심있는 독갤러라면 누구라도 첫 장을 펼치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 내용에서 후술할 내용은 어려우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는 하지만, 고등학교 생물 수업을 어느 정도만 기억한다면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부분이다.

ps 읽는 내내 또 특히나 마지막 장에서 계속해서 '짝짓기'를 한다. 나도 섹스하고 싶다. 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