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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 주체가 마주한 곤경에 대해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자신의 시 '가보지 못한 길(The Road Not Taken)'에서 선택의 문제를 다뤘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선택이 낳을 변화. 인간은 누구나 어떤 길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남아 있는 나날』의 인물들도 그랬다. 소설의 주인공 스티븐슨은 영국 달링턴 홀의 집사다. 그는 세계대전 사이 격동의 시기를 이곳에서 보냈다. 집의 주인이었던 달링턴 경은 유력한 인사였다. 수많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스티븐슨은 이곳에서 손님들을 모시고 집을 관리하는 역할울 맡았다. 그는 이 역할에 충실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면서까지 ‘일’에 집중할 정도였다. 그에겐 이런 삶이 큰 자부심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저택의 주인은 이제 영국의 귀족 달링턴 경이 아니라 미국의 사업가다. 그의 새로운 주인은 스티븐슨에게 여행을 권한다. 그는 여행도 할 겸, 그리고 과거 자신과 함께 일했던 켄턴 양을 만나 다시 일자리를 제안할 겸 여행을 떠난다. 변해버린 영국을 느끼며 목적지에 도착한 스티븐슨은 켄턴 양을 만난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그녀 앞에서 결국 자신도 그녀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돌이킬 수 없는 그 사실을 드디어 인정하게 된다. 온갖 이유들로 묻어왔던 자신의 진심을. ‘어쩌면 내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더 나은 삶’에 대해 말하는 켄턴 양 앞에서 그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신념에 가득 찬 삶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 달링턴 경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친나치주의자로 몰린다. 스티븐슨과 켄턴은 함께 살 수도 있었던 기회를 잃는다. 스티븐슨은 그렇게 선택했던 것들을 사실상 모두 잃은 것처럼 보인다. 달링턴 홀의 위대함은 사라졌다. 그는 이제 영국과 유럽의 운명이 결정되던 장소의 집사가 아니라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켄턴 양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는 일종의 질투심 때문에 결혼을 선택한다. 그리고 후회 속에서도 자신의 남편을 사랑하게 된다. 이제 그에게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다. 
 
하지만 가즈오 이시구로가 이들의 삶에 대해 쉽게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그는 어쩌면 인간 삶의 그러한 불가피성에 대해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했든, 어떤 삶을 살았든, 우리는 지나간 나날들을 살아왔다. 또 누구나 선택하지 않은 잔여(remains)로서의 나날들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남아있는(remains) 나날’들도 살아갈 것이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자신의 작품에서 결국 ‘주체’라는 문제를 다루는 듯 하다. 그의 작품 『나를 보내지마』도 마찬가지다. 환상에 사로잡힌 채 살더라도, 그 안에서 나름의 행복과 만족을 느끼며 사는게 나은가. 아니면 진실을 깨닫는 것이 나은가. 혹 진실을 알게 됐다 하더라도, 만약 그 현실에 순응해버린다면 과연 진실을 깨달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환상에 사로잡힌 걸까? 그런 환상 속에서 문학을 읽고 토론을 한다 해도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미술 작품을 만들고 교육을 받는다 해도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부유하는 화가』도 비슷한 주제를 다룬다. 파시즘에 봉사했던 화가. 그는 자신의 선택을 그다지 후회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위대한 문학들은 여전히 이 질문에 천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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