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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호와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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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검색해서 읽어보니,
유종호 비평가는 대학생들이 "인생의 책"으로 하루키의 책을 꼽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여
그동안 생각한 바를 논평한 것이다.
나는 기사에서 현기영 소설가가 언급한 내용을 유심히 보았는데,
현기영 소설가는 "'하루키이즘'과 시장"이라는 발표를 통해 우리 문학이 "하루키이즘"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의 가치가 모든 가치의 척도처럼 되어있다.
선과 악의 구별마저도 시장논리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고 시장논리를 비판하고
"언급할 가치 없는 경소설(light novel), 장르소설은 제외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그것의 한국적 아류들에 대해 주목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루키는 자신의 문학을 국적을 초월한 글로벌 문학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그의 문학적 국적은 미국"이라며
"하루키의 세계적 성공은 그의 초국적 미학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국 출판업체의 사업 성공 덕분"이고
"더 뉴요커의 투자자본이 정교한 계략으로 제작한 미국작가를 대신한 미국상품 브랜드"라고 지적했다.
-뉴스페이퍼
거대자본으로 출판계를 휘젓는 일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는 들어왔는데, 여기서도 언급되고 있다.
일단 그말의 진위를 파악후 그들을 비평해도 늦진 않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짧다. 읽는 시간도 한정되기에 좋은 양서를 선택해야 하는 우리로써는 그들의 말에도 귀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열린연단에서 유종호비평가의 강의도 들었는데, 나에게는 유익했다.
책을 읽는 시간이 오래되면, 이책을 책장에 놓아둘지 말지 결정하는 순간이 오게된다. 내책장에서 하루키책들은 어느순간 사라져있었다.
하루키의 소설은 세계 도처에서 다양한 고유의 지역문화를 전체주의적으로, 혹은 제국주의적으로 잠식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문학은 소비향락이 아닌 이의제기에 가치가 있다"며 "달콤한 것만을 다룬 문학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진지한 문학이 복권되어야 할 때라고 전했다.
이부분은 동의가 힘듬
ㄴ"더 뉴요커의 투자자본이 정교한 계략으로 제작한 미국작가를 대신한 미국상품 브랜드"라고 지적했다. 라는 부분이 사실이라면 문화제국주의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