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의 빨간책방 들으며 메모한거 정리했습니다. 짤은 1q84의 한 문구입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이하 쓰쿠루)는 일본에서 출간된지 1주일만에 백만 부가 팔렸고
국내에서는 번역 1주일만에 30만 부가 팔렸다.
국내 판권의 높은 선인세와 초판 발행부수 등 많은 떡밥이 있었고 평가도 다양했다.
한국사람들은 하루키 에세이도 많이 읽는다. 작가 하루키 뿐 아니라 생활인 하루키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거다.
그러면 자연히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독법도 다른 나라와는 다를법 하다.
하루키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읽히는 모든 외국 작가를 통틀어 가장 인기있을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미여사가 인기가 있긴 하지만 하루키 정도는 아니다. 알랭드 보통 같은 작가도 상대가 안된다.
하루키는 많이 팔리는 것만이 아니라 팬들이 어떤 존경심 같은걸 가지고 있다.
상실의 시대로 하루키가 한국에 처음 알려졌을때 충격이 워낙 컸다.
상실의 시대에서 이야기하는 전공투 세대 썰이 한국의 386세대, 즉 격렬한 청춘의 시기를 보낸 독자들의 마음 깊숙히 파고들었던 것이다.
도피처를 원하던 사람들에게 하루키가 도피처를 만들어줬다.
이렇게 삼엄하고 엄중한 시기에 나는 개인적이어도 되는가 고민하던 사람들에게 하루키는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80년대 문학에서 개인적인 것을 추구하면 백안시될수 있는 풍토가 있었는데 그게 90년대 사소설 비슷한 분위기로 넘어올때 하루키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근데 정작 하루키는 개인주의자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가 최근으로 올수록 자기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사회적 책임도 느끼고 있다.
그러면서도 젊은 스타일을 놓치지 않고 동시대성을 유지한다. 그렇게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했다.
하루키가 소설 쓰는 기간과 분량을 보면 기본적으로 엄청 성실한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이 혈기와 에너지가 넘치다보면 다른 분야에 광적인 애호도 보내고 그러다가 삑싸리나고 말실수 하고 물의를 빚게 되는데 하루키는 그런게 없다. 예루살렘상 관련해서 조금 그랬긴 하지만.
어떤 우리나라 소설가가 하루키 팬임을 고백하면서 '이렇게 말하면 주변에서 우습게 볼까봐 말을 못했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인 적이 있다.
이렇게 하루키를 폄하하는 분위기가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있었다.
<1q84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책에 수록된 일본 문학평론가들의 말을 보면 하루키를 이제 막 등단한 어린 작가 취급한다.
1q84를 쓴 하루키는 이미 카라마조프를 쓴 도끼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일본에서도 '어쨌든 이 정도 되었으니까 인정해줄 수밖에 없다'하는 순간에 이를 때까지 하루키를 저평가해온 것이다.
하루키는 일본에서 주는 신인상인 아쿠타가와상도 못받았다.
두 번 떨어졌는데 대여섯명의 심사위원 중 엔도 슈샤쿠와 오에 겐자부로가 있었다.
엔도 슈샤쿠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대해서 '의미를 배제해나가는 방식으로 소설을 쓰는데 이렇게 스타일만으로 쓰는 소설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했고 두 번째로 후보에 올라간 <1973년의 핀볼>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도 안했다.
오에 겐자부로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대해서 '커트 보네거트에 대항 짝퉁 소설'이라고 했고 <1973년의 핀볼>에 대해서는 '아무리 빌려온 것이지만 그걸 이렇게 구사한다는건 대단한 재능'이라고 칭찬?을 했다.
하루키는 그러한 일본 문단의 견고한 편견과 경멸을 하나씩 맞서나갔고 사실상 대중이 먼저 발견하고 인정한 거다.
한국도 예전과 달리 하루키를 낮춰 보는 시선이 많이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나 하루키 안 읽었어'하는게 오히려 허세일 수도 있다.
하루키 소설은 늘 잘 읽히는데 하루키가 이런 말을 했었다. 소설에서 중요한건 한 블록이다. 하루키의 소설들은 블록이 굉장히 균일하다. 문단을 보면 일정한 덩어리들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책을 읽을 때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정도의 덩어리를 씹어 삼키기 좋게 잘 잘라서 적당히 배치해 놓았다.
이것은 하루키가 가지고 있는 내재된 리듬이다.
마치 마라톤을 할 때 일정한 보폭으로 내딛듯이 정확한 문단의 덩어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초반 인물묘사가 상세하다.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초반에 등장인물이 어떤 사람일까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하루키는 그런 면에서 친절하게 초반 세팅을 완벽하게 해준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이하 쓰쿠루)는 일본에서 출간된지 1주일만에 백만 부가 팔렸고
국내에서는 번역 1주일만에 30만 부가 팔렸다.
국내 판권의 높은 선인세와 초판 발행부수 등 많은 떡밥이 있었고 평가도 다양했다.
한국사람들은 하루키 에세이도 많이 읽는다. 작가 하루키 뿐 아니라 생활인 하루키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거다.
그러면 자연히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독법도 다른 나라와는 다를법 하다.
하루키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읽히는 모든 외국 작가를 통틀어 가장 인기있을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미여사가 인기가 있긴 하지만 하루키 정도는 아니다. 알랭드 보통 같은 작가도 상대가 안된다.
하루키는 많이 팔리는 것만이 아니라 팬들이 어떤 존경심 같은걸 가지고 있다.
상실의 시대로 하루키가 한국에 처음 알려졌을때 충격이 워낙 컸다.
상실의 시대에서 이야기하는 전공투 세대 썰이 한국의 386세대, 즉 격렬한 청춘의 시기를 보낸 독자들의 마음 깊숙히 파고들었던 것이다.
도피처를 원하던 사람들에게 하루키가 도피처를 만들어줬다.
이렇게 삼엄하고 엄중한 시기에 나는 개인적이어도 되는가 고민하던 사람들에게 하루키는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80년대 문학에서 개인적인 것을 추구하면 백안시될수 있는 풍토가 있었는데 그게 90년대 사소설 비슷한 분위기로 넘어올때 하루키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근데 정작 하루키는 개인주의자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가 최근으로 올수록 자기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사회적 책임도 느끼고 있다.
그러면서도 젊은 스타일을 놓치지 않고 동시대성을 유지한다. 그렇게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했다.
하루키가 소설 쓰는 기간과 분량을 보면 기본적으로 엄청 성실한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이 혈기와 에너지가 넘치다보면 다른 분야에 광적인 애호도 보내고 그러다가 삑싸리나고 말실수 하고 물의를 빚게 되는데 하루키는 그런게 없다. 예루살렘상 관련해서 조금 그랬긴 하지만.
어떤 우리나라 소설가가 하루키 팬임을 고백하면서 '이렇게 말하면 주변에서 우습게 볼까봐 말을 못했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인 적이 있다.
이렇게 하루키를 폄하하는 분위기가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있었다.
<1q84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책에 수록된 일본 문학평론가들의 말을 보면 하루키를 이제 막 등단한 어린 작가 취급한다.
1q84를 쓴 하루키는 이미 카라마조프를 쓴 도끼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일본에서도 '어쨌든 이 정도 되었으니까 인정해줄 수밖에 없다'하는 순간에 이를 때까지 하루키를 저평가해온 것이다.
하루키는 일본에서 주는 신인상인 아쿠타가와상도 못받았다.
두 번 떨어졌는데 대여섯명의 심사위원 중 엔도 슈샤쿠와 오에 겐자부로가 있었다.
엔도 슈샤쿠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대해서 '의미를 배제해나가는 방식으로 소설을 쓰는데 이렇게 스타일만으로 쓰는 소설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했고 두 번째로 후보에 올라간 <1973년의 핀볼>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도 안했다.
오에 겐자부로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대해서 '커트 보네거트에 대항 짝퉁 소설'이라고 했고 <1973년의 핀볼>에 대해서는 '아무리 빌려온 것이지만 그걸 이렇게 구사한다는건 대단한 재능'이라고 칭찬?을 했다.
하루키는 그러한 일본 문단의 견고한 편견과 경멸을 하나씩 맞서나갔고 사실상 대중이 먼저 발견하고 인정한 거다.
한국도 예전과 달리 하루키를 낮춰 보는 시선이 많이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나 하루키 안 읽었어'하는게 오히려 허세일 수도 있다.
하루키 소설은 늘 잘 읽히는데 하루키가 이런 말을 했었다. 소설에서 중요한건 한 블록이다. 하루키의 소설들은 블록이 굉장히 균일하다. 문단을 보면 일정한 덩어리들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책을 읽을 때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정도의 덩어리를 씹어 삼키기 좋게 잘 잘라서 적당히 배치해 놓았다.
이것은 하루키가 가지고 있는 내재된 리듬이다.
마치 마라톤을 할 때 일정한 보폭으로 내딛듯이 정확한 문단의 덩어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초반 인물묘사가 상세하다.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초반에 등장인물이 어떤 사람일까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하루키는 그런 면에서 친절하게 초반 세팅을 완벽하게 해준다.
- dc official App
서구 철학 사조로 분석하는 것보다 훨씬 낫네
비하인드 스토리같아서 잼네 평론같은거 철학적 사조로 분석하는거 좋지만 그게 맞다는식으로 자기 의견없이 말하는거 진짜., 지식인인지 지성인인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