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9bcc427b28a77a16fb3dab004c86b6fb0c4686306b515a7844db1c3520e15690a1ba39b49ab18b671e09932dff6942bdeec5dca2a82d1df

1.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원래 나는 책을 읽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읽지는 않았고, 표지의 디자인과 입소문을 듣고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었다. 하루는 직장 교육을 받았다.  인생 목표 설계 뭐 그런 교육이었다. 앞으로 3년, 5년, 10년, 20년, 30년 후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무엇이 하고 싶은 지를  찾아내는 게 교육의 목표였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면 되는 거였다.  교육은 하루 종일 이었다. 무슨 놈의 버킷리스트 몇줄 적는게 하루종일 씩이나 하나 했다. 교육을 받다보니 살면서 한번도 진지하게 앞으로 30년 이후는 고사하고  3년 후를, 5년 후를 고민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목표란 걸 쓴건 그저 며칠 이내로 뭘 해야 된다는 업무 체크리스트 뿐이었다.


2. 하루종일 교육을 받으면서 30년 후에 진정 이루고 싶은 목표를 써냈다. 좀 뻔하긴 했다. 세계여행 몇개국 하기, 전 세계 맛집투어 이런 것들 이었다. 유독 좀 특이한 목표가 하나가 써졌다. 책 3,000권 읽기. 무슨 게임 레벨업 하는 것도 아니고, 경험치 쌓는 것도 아닌데, 목표를 써놓고도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3. 그런데 희한하게도 3,000권 읽기라는 목표가 며칠동안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3,000권 읽기는 어느새 내 머리 속에 자리를 잡았고, 그럼 읽어나보자라는 생각으로 발전했다.책을 한권씩 읽을 때마다  숫자를 지워나갔다. 몇권 읽고난뒤 책 내용을 회상했는데 생각나는게 딱히 없었다.

'남는 것도 없는데 굳이 숙제 해치우듯이 할 필요가 있나'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뭔가 써야 머리에 남겠다는 생각을 했다. 독후감이나 메모, 책에 밑줄 긋기 등이었다.


4. 뭐 30여년 인생에 글이란 걸 제대로 써본 적이 없으니, 독후감 내지 메모라고 하기에도 낯 부끄러울 정도의 수준의 글들이었다. 그래서 글쓰기 책을 찾아봤다가, 다시 독후감을 썼다가를 수차례 반복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독후감을 쓰는지 궁금했다. 인터넷을 뒤졌다. 파워블로그 위주로 검색을 했다. 추천 블로거들을 살펴본 중에 까칠한 비토씨라는 블로그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편하게 책에 대해 이야기 해줬다. 책의 소개가 아닌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책의 인상을 유머스럽게 푸는 것이었다. 여타 리뷰들은 조금은 심각한 내용이었는데, 비토씨의 글은 재밌고 접근하기 쉬웠다.  아는 동네형이 '이 책 재밌어 임마'하면서 책을 던져주는 듯 했다. 나는 도대체가 이 정도의 내공을 보여주려면 얼마만큼 읽고 써야하는지 궁금했다. 부럽기도, 막막하기도 했다.


5. 그게 작년(2016년) 9월쯤 이었다. 새 글이 나올 때마다 그의 블로그를 들락날락 거리던 중 2,000권을 끝으로 블로그를 접는다는 그의 글을 보았다. 아쉬웠다. 결국 2,000번째 리뷰가 올라왔다. 작년 12월 말쯤 이었을 거다. 평소와 달리 상당히 긴 글이었다. 서론이 길었다. 뭐 블로그질 10년 동안 있었던 일과, 여태 자기 블로그를 사랑해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얘기들이었다. 이 글을 읽고 계신분들 중 아시는 분도 계실거다. 까칠한 비토씨가 도선우였고, 2,000번째 글은 그해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은 본인의 작품 <스파링>에 대한 글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일에 굉장히 놀라우면서도 뭔가 기뻤다. 이건 마치 동네에서  진짜 스타크래프트 잘하는 형이 어느 날 갑자기 스타리그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들은 기분이었다.


6. 그런 그가 연타석으로 세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저스티스맨>이었다. 순전한 빠심이기도 하고, 스파링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들이 떠올라 예약구매를 했다. 금요일에 책이 도착했고, 일이 끝나자마자 읽기 시작해서 앉은 자리에서 완독했다.


7.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중고딩 일진들이 어리숙한 아이를 타겟으로 잡고 괴롭힌다고 생각해보자. 그 아이는 내 아들이다. 일진은 선생에게는 좀 까불거리긴 해도 활발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고, 주위 친구들에게는 짖궂지만 유쾌한 아이로 소문이 나있다. 

' 걔가 좀 이상한 거예요.'

주위에서는 아들이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얘기한다. 괴롭힘은 계속되고, 아들은 끝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아내는 우울증에 걸렸고, 자살을 시도한지는 수차례다.

'우린 죄가 없다고. 당신 아들이 병신이라서 죽은거야' 

그랬다. 그들에게는 죄가 없었다. 현행법 상 죄 없는 악마들이었다. 과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8. <저스티스맨>은 현행법상 죄 없는 악마들을 단죄하는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다. 죽일 놈들이 죽는게 시원할수도 있겠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죽여 마땅하다.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법에 따라 처벌을 해야 한다. 갑론을박이 이어질 것이다. <저스티스맨>은 그런 토론이 벌어지는 인터넷의 현장을 내보인다.이 책의 특징은 인물의 대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거다. 사건에 대한 설명과, 인터넷에서 설전을 벌이는 댓글들로만 가득 차있다.

익명성의 가면을 쓰게 되면 인간들은 자신의 내면 밑바닥에 자리한 찌꺼기들을 인터넷에 배설하기 마련이다. 이 배설의 현장은 보는 사람의 얼굴을 찌푸리게 한다. 작가는 사람과의 대화는 없고, 인터넷의 댓글들만 보여줌으로써, 인간 내면의 추악함을 드러낸다. 이게 꽤 효과적이다.


9. 전작 <스파링>과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사회 정의에 관한 이야기란 거다. 작가 데뷔전 블로그의 글들도 그랬다.부자는 점점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가난하게 되는 것을 자주 언급했다. 빈부격차, 무전유죄 무전유죄, 갑질. 사람들을 열받게 하는 것에 대해 자주 썼다.  '정의'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찌보면 뻔한 소재라고 할수 있다. 하지만, 도선우란 작가는 뻔할 수도 있는 걸, 작품으로 빚어내는 방법을 안다.  더러운 건 아주 더 리얼하게 더럽게, 냄새나는 놈들은 아주 고약하게 잘 그려 낼줄안다. 나쁜 놈들을 죽여 마땅한 지에 대한 고민을 더 깊게 하게 만든다. 흡입력 있는 작품이다. 아마 책을 펼치면 앉은 자리에서 완독하게 될거다. 피를 끓게 만든다. 정의에 대한 고민들로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빠심을 제외하더라도, <저스티스맨>은 아주 좋다.



그래서 인지 그가 오물충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아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연유에는 그가 비열하고 야비하고 은밀하게 잘 괴롭힌 까닭도 있었지만, 이 병신은 애초부터 누구에게 반항한다거나 하소연 따위 할 줄 모르는 진짜 병신이었기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라고 그는 생각한 적이 있었다.단 한번이라도 대든다거나 선생님께 이르겠다는 식의 반항을 했더라면 그는 더는 오물충을 괴롭히지 않을 의향도 있었다. 그러나 이 병신은 그러지 못했다. 뼛속까지 병신이었고 그런 인간이었으므로 그는 더욱, 때론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치밀었다.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마음의 증오가 더욱더 증폭되었다. (p.49)



ps)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