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들도 자기 분야 아닌거에선 일반인과 그닥 차이가 없음. 의심나면 인문학 분야 교수님께, 리눅스 커널과 윈도 커널의 구조적 차이를 설명해달라 해봐. 혹은 수학과 교수님께서 쓰신 인도 철학 저서의 신뢰성이 얼마나 될지도 생각해봐.
종교 쪽에 대한 도킨스 저술 신뢰성이 딱 이정도라 생각함.
댓글 24
그러니까 도킨스는 생물학 서적만 읽으면 됨.
3.14159265358979323(joohong2018)2020-04-30 13:27
도킨스 본인은 아니라고 하는 것 같지만...
sep(seppppp)2020-04-30 13:28
Fact
연희동의폐인(jasd1234567)2020-04-30 13:29
그래서 나같은 학술적 아마추어들이 너무 슬픈 거지
연희동의폐인(jasd1234567)2020-04-30 13:29
진화생물학적인 시각으로 창조론 비판하는 정도는 가능할 듯
익명(116.121)2020-04-30 13:31
책은도끼다(sungyue)2020-04-30 13:32
전공자가 쓴 책도 믿을 게 못된다는 게 진정한 문제지...
익명(219.248)2020-04-30 13:40
우리 교수님은 사자가 고양이관지 개관지도 모르시더라 전공분야가 아니면 일반인 심지어는 그 이하라도 이상할거 없음
익명(223.62)2020-04-30 13:43
근데 그게 당연한거 아닌가? 한 분야만 평생 파도 끝을 보기가 힘든데 다른 분야 생각할 시간이 어딨어
익명(175.192)2020-04-30 13:49
이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물론 전공했다고 하면 아무 예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비전문가보다야 신뢰감이 들 수는 있겠지만 오히려 전공자가 불성실한 연구와 분과 학문적 선입견으로 비전문가보다 훨씬 질이 떨어지는 책을 쓰는 경우가 허다함 더구나 종교 같이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분야는 오히려 비전문가들의 저서가 더 주목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경우도 많음 아니 도킨스가 종교 전공자가 아니라서 도킨스 책을 신뢰할 수 없다는 논리는 도대체 어떻게 성립됨? 책에 제시된 논리를 반박하는 것도 아니고.. 어이가 없네
익명(84.17)2020-04-30 13:59
답글
예외 사례 말고 대체로 전공자가 비전공자보다 더 신뢰할만하다는건 부정하기 힘듬. 그리고 신학이든 진화생물학이든 기초적인 지식은 전제하고 전개되는 학문임. "A가 하는 말이 맞냐"는 논쟁을 하려면 "A가 무슨 말을 하느냐"를 먼저 알고 있어야 하는데(혹은 적어도 통설이라도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데) 도킨스가 그정도 레벨인가? 난 그건 아니라 봄.
틀니우스키케로(marcus12)2020-04-30 14:06
답글
설민석이 왜 까이는지 모름? - dc App
익명(211.36)2020-04-30 16:11
만들어진 신을 읽어는 본 거임? '대체로'라는 말은 도대체 어느 정도라는 말임? 한 학문이라도 자신이 학위논문을 쓴 분야만 잘 알고 있지 다른 분야는 무지한 경우가 허다함 오히려 그 분야를 파고든 비전문가가 더 잘 알고 있는 경우도 많음 기초적인 지식? 도킨스 옥스퍼드대 출신임 학문적 논쟁이란 주장과 근거만 파악하면 되는 것임 학문을 했다는 사람이 이런 전공 우월주의에 매몰되어서 비논리적 주장을 하는 건 그냥 편견으로밖에 안 보임
익명(84.17)2020-04-30 14:33
답글
서울대에서 철학 전공한 사람에게 진화생물학 물어보면 제대로 답변 가능하다고 생각함? 비전공자는 무조건 조용히하라는 말이 아님. 당연히 비전공자가 책을 써도 되고. 근데 신뢰성은 별개의 영역 아님? 오해 막자면 난 거기 전공자 아니고 공학 전공이다.
틀니우스키케로(marcus12)2020-04-30 15:14
답글
예시 인용: 예수는 자신의 성장 배경이었던 《성서》에서 윤리학을 도출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과 뚜렷이 갈라섰다. 한 예로 그는 안식일을 어기는 것에 관한 무시무시한 경고를 무시했다.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은 의미가 확장되어 슬기로운 격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장의 주된 주제는 우리가 성서에서 도덕을 이끌어내지 않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므로, 예수는 바로 그 주제에 알맞은 모델로서 존중을 받아야 한다. /// 예수의 율법관에 대한 현대 성서학의 연구 성과와 충돌.
틀니우스키케로(marcus12)2020-04-30 15:16
답글
토라의 본질 왜곡을 예수는 책망한다. 법률주의 사고는 필경 존재보다 외양을 존중하는 위험에 빠진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는 토라를 그 해석자들에 비해 오히려 유효하게 만든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을 예수는 "네 이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공하라"는 십계의 관점에서 행한다. 훌륭한 유다인 견해에 따르면 부모 공양에는 봉양 의무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대 해석 규정은 이 의무를 회피할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놀았는데, 부모께 드릴 몫을 성전에 바칠 예물로 선언하고 이것을 "코르반"(=그것은 봉헌물이옵니자)이라는 맹세 앙식으로 보증받는 것이었다. 이 관행을 예수는 통박한다(참조: 마르 7,9-13//). 물론 당대 유다교에서도 이 코르반 관행을 두고 논란이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 요아힘 그닐카, "나자렛 예수" 한국어판 292-293쪽
틀니우스키케로(marcus12)2020-04-30 15:29
답글
이 점에서 예수는 바리사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예수에게도 깨끗함과 불결함은 거룩함과 속됨에 비할 만한 것이었다. (중략) 예수는 근본적인 면에서 바리사이들과 다르다. 다리 말해 불결함의 원인이 어디서 발단하는지 던진 물음에서 구별된다. 예수는 오직 이 문제에서만 바리사이들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다. 그러나 깨끗함과 불결함의 근본적인 차이는 엄연히 나아 있다. 차이는 바로 이러한 점에 있다. 예수는 깨끗함을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으로 여겼다. 예수에게 관건은 깨끗함을 지키고 부정을 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깨끗함을 적극적으로 획득하는 것이었다. (중략) 예수는 '깨끗함'과 '불결함'에 대한 생각을 통해 토라의 의도를 심화시켰다. 토라를 폐지하려던 것이 아니다. //// 클라우스 베르가, "예수" 한국어판 하권 130-133쪽
틀니우스키케로(marcus12)2020-04-30 15:40
답글
제일 위에 인용은 도킨스 책 인용임.
틀니우스키케로(marcus12)2020-04-30 15:41
이거 마따 - dc App
아자차카타파하(dazaiosa12)2020-04-30 15:14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2026-07-18 13:55
답글
어디까지나 학술 분야에 한해서, 그것도 일반적인 경우를 말한거임. 비전공자 책을 다 거르라는 것도 아니고, 학술 분야에서 비전공자가 대작 쓰는 케이스를 부정하는 것도 아님. 건강 챙기고 싶으면 유튜브나 블로그보다는 의사를 신뢰하라고 하는 것과 별 차이 없음.
그러니까 도킨스는 생물학 서적만 읽으면 됨.
도킨스 본인은 아니라고 하는 것 같지만...
Fact
그래서 나같은 학술적 아마추어들이 너무 슬픈 거지
진화생물학적인 시각으로 창조론 비판하는 정도는 가능할 듯
전공자가 쓴 책도 믿을 게 못된다는 게 진정한 문제지...
우리 교수님은 사자가 고양이관지 개관지도 모르시더라 전공분야가 아니면 일반인 심지어는 그 이하라도 이상할거 없음
근데 그게 당연한거 아닌가? 한 분야만 평생 파도 끝을 보기가 힘든데 다른 분야 생각할 시간이 어딨어
이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물론 전공했다고 하면 아무 예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비전문가보다야 신뢰감이 들 수는 있겠지만 오히려 전공자가 불성실한 연구와 분과 학문적 선입견으로 비전문가보다 훨씬 질이 떨어지는 책을 쓰는 경우가 허다함 더구나 종교 같이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분야는 오히려 비전문가들의 저서가 더 주목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경우도 많음 아니 도킨스가 종교 전공자가 아니라서 도킨스 책을 신뢰할 수 없다는 논리는 도대체 어떻게 성립됨? 책에 제시된 논리를 반박하는 것도 아니고.. 어이가 없네
예외 사례 말고 대체로 전공자가 비전공자보다 더 신뢰할만하다는건 부정하기 힘듬. 그리고 신학이든 진화생물학이든 기초적인 지식은 전제하고 전개되는 학문임. "A가 하는 말이 맞냐"는 논쟁을 하려면 "A가 무슨 말을 하느냐"를 먼저 알고 있어야 하는데(혹은 적어도 통설이라도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데) 도킨스가 그정도 레벨인가? 난 그건 아니라 봄.
설민석이 왜 까이는지 모름? - dc App
만들어진 신을 읽어는 본 거임? '대체로'라는 말은 도대체 어느 정도라는 말임? 한 학문이라도 자신이 학위논문을 쓴 분야만 잘 알고 있지 다른 분야는 무지한 경우가 허다함 오히려 그 분야를 파고든 비전문가가 더 잘 알고 있는 경우도 많음 기초적인 지식? 도킨스 옥스퍼드대 출신임 학문적 논쟁이란 주장과 근거만 파악하면 되는 것임 학문을 했다는 사람이 이런 전공 우월주의에 매몰되어서 비논리적 주장을 하는 건 그냥 편견으로밖에 안 보임
서울대에서 철학 전공한 사람에게 진화생물학 물어보면 제대로 답변 가능하다고 생각함? 비전공자는 무조건 조용히하라는 말이 아님. 당연히 비전공자가 책을 써도 되고. 근데 신뢰성은 별개의 영역 아님? 오해 막자면 난 거기 전공자 아니고 공학 전공이다.
예시 인용: 예수는 자신의 성장 배경이었던 《성서》에서 윤리학을 도출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과 뚜렷이 갈라섰다. 한 예로 그는 안식일을 어기는 것에 관한 무시무시한 경고를 무시했다.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은 의미가 확장되어 슬기로운 격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장의 주된 주제는 우리가 성서에서 도덕을 이끌어내지 않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므로, 예수는 바로 그 주제에 알맞은 모델로서 존중을 받아야 한다. /// 예수의 율법관에 대한 현대 성서학의 연구 성과와 충돌.
토라의 본질 왜곡을 예수는 책망한다. 법률주의 사고는 필경 존재보다 외양을 존중하는 위험에 빠진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는 토라를 그 해석자들에 비해 오히려 유효하게 만든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을 예수는 "네 이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공하라"는 십계의 관점에서 행한다. 훌륭한 유다인 견해에 따르면 부모 공양에는 봉양 의무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대 해석 규정은 이 의무를 회피할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놀았는데, 부모께 드릴 몫을 성전에 바칠 예물로 선언하고 이것을 "코르반"(=그것은 봉헌물이옵니자)이라는 맹세 앙식으로 보증받는 것이었다. 이 관행을 예수는 통박한다(참조: 마르 7,9-13//). 물론 당대 유다교에서도 이 코르반 관행을 두고 논란이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 요아힘 그닐카, "나자렛 예수" 한국어판 292-293쪽
이 점에서 예수는 바리사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예수에게도 깨끗함과 불결함은 거룩함과 속됨에 비할 만한 것이었다. (중략) 예수는 근본적인 면에서 바리사이들과 다르다. 다리 말해 불결함의 원인이 어디서 발단하는지 던진 물음에서 구별된다. 예수는 오직 이 문제에서만 바리사이들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다. 그러나 깨끗함과 불결함의 근본적인 차이는 엄연히 나아 있다. 차이는 바로 이러한 점에 있다. 예수는 깨끗함을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으로 여겼다. 예수에게 관건은 깨끗함을 지키고 부정을 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깨끗함을 적극적으로 획득하는 것이었다. (중략) 예수는 '깨끗함'과 '불결함'에 대한 생각을 통해 토라의 의도를 심화시켰다. 토라를 폐지하려던 것이 아니다. //// 클라우스 베르가, "예수" 한국어판 하권 130-133쪽
제일 위에 인용은 도킨스 책 인용임.
이거 마따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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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학술 분야에 한해서, 그것도 일반적인 경우를 말한거임. 비전공자 책을 다 거르라는 것도 아니고, 학술 분야에서 비전공자가 대작 쓰는 케이스를 부정하는 것도 아님. 건강 챙기고 싶으면 유튜브나 블로그보다는 의사를 신뢰하라고 하는 것과 별 차이 없음.
나무위키 같은 곳에서 도킨스 비판 항목 보고 나대는 쿨찐
도킨스는 까여야 하는게 맞는데 ㅋㅋㅋㅋㅋ 지 전공에서도 털리드만 - dc App
물답알 저자도 교수임 ㅋㅋㅋㅋㅋ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