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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벌 공장 > - 이언 뱅크스 (열린책들) 김상훈 옮김



잔인한 소설이라고 해서 내 취향일 듯해 전에 중고로 샀다가 읽게 됐다.

시작부터 막장 가족이 등장한다. 뭔가 다들 나사가 한 개도 아니고 세 개는 빠져 있다. 추악함의 미학이다. 마음에 든다. 예전에 이런 느낌의 소설을 쓰다가 말았는데 다시 쓰고 싶어질 정도였다. 책에 뽀뽀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염성이 무서워 자제를 한다.

주인공이 어딘가 흑화된 채로 잔혹한 자기 세계에 갇혀 성장한 느낌이다. 나도 나만의 섬에서 주인공과 같은 삶을 살아보고 싶다.

특정 대상들을 자신만의 명칭으로 부르는 게 뭔가 중2병스럽다.

읽는 내내 시계태엽 오렌지가 떠올랐다. 허나 그보다 더 잔인한 명작이다.

주인공 프랭크의 삶이 어딘가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타고난 싸이코패스 범죄자 기질을 드러내지만 밉지가 않다. 혐오감이 하나의 미학으로 다가온다. 이게 바로 문학의 힘일까?

프랭크와 에릭의 전화 중 주고받는 대화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느낌이 난다. 그리고 개를 먹는다는 게 영국의 입장에선 꽤나 엽기적인 듯하다. 문화 차이를 느끼게 한다.

주인공이 개에게 성기를 물려 고자가 된 장면을 보니 프로이트가 떠올랐다. 왜 주인공이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됐는지 이해된다. 웹툰 전학생은 외계인에서, 모든 걸 잃었어도 불알 두 쪽이 있는 사람보다 비참한 존재는 모든 걸 얻었어도 불알 두 쪽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던 가르침이 떠올랐다. 역시 잃을 게 없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 어쩌면 주인공의 폭력성은 거세된 남성상을 찾으려는 욕구 때문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섬에서 죽음을 관장하는 신처럼 행동하는데, 문득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의 하루히가 떠올랐다. 주인공이 신과 같은 존재면서 일상물의 기질까지 갖추고 있다. 뭔가 묘하게 들어맞는 두 작품이다.

에릭의 광기는 주인공도 어쩌지 못하는 수준이다. 허나 정신병원을 탈출해 잘 도망 다니는 걸 보면 생존력은 굉장하다. 왠지 모르게 주인공이 에릭을 사랑한다는 느낌도 든다. 애착의 방식이 특이하다. 싯다르타와 고빈다의 관계처럼 두 사람의 관계도 BL물을 연상케 한다.

주인공은 성장이 멈춘 채 자기 세계에 갇힌 중2병의 느낌인데, 그와 대조적으로 성장해서 집을 떠났다가 방황하는 에릭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에릭은 현실의 바깥 세계로 나갔다가 여러 트라우마와 상처를 안고 광인이 된 듯하다. 어딘가 조커를 떠올리게 한다.

문득, 이 소설은 잔혹함으로 포장된 상처받은 십대의 성장물이 아닐까 싶다. 장 콕토의 무서운 아이들이 동반 자살로 자학적인 반항을 한다면 이 소설은 사람이나 동물을 죽이며 가학적인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현실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버지의 연구실에서 발견된 호르몬과 탐폰의 의미가 뭘까 싶었는데, 세상에나. 반전이 있었다. 주인공은 남성 호르몬을 맞던 여자였다. 고자가 아니었다. 이 모든 게 주인공의 아버지의 의도였다. 누구보다 남근 선망을 하던 주인공이 여자였단 사실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반전이었으나 내가 놓쳤던 부분이다.

결말에 다가서며 갑자기 흥분된다. 너무 여성스러운 것보다 어중간하게나마 남성적인 성향을 가진 여성상이 내 취향이다. 숨이 막혀 올 정도다. 내 잠재된 성적 판타지가 자극된다. 섬에서, 성과 폭력이, 폐쇄적인 자기 세계가, 모두 내 취향의 자극적인 요소들이다. 남들은 이 소설을 어떻게 읽을지 모르겠으나 내 눈에는 완독을 마치고나니 에로티시즘의 걸작으로 보인다.

그리고, 뒤틀린 성적 판타지로 얽혀 있던 내 덕질 인생을 돌아봤다. 내 눈과 감성을 거쳐 간 수많은 아이돌들. 이 책 앞에서 아이돌이란 존재는 저차원적인 성적 판타지에 불과했다. ‘말벌 공장은 하나의 성적 결합체이다. 프리큐어니 로젠 메이든이니 따위 것들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 페이트가 문학이라고? 이게 바로 문학이다. 마력 공급 따위로 성행위를 포장해봤자 이 작품의 발끝도 못 따라온다. 내가 텍스트로 느낀 최상의 에로티시즘이다.

문득, 고 마광수 교수님이 떠올랐다. 그분의 사이트에서 그분만이 내 글을 이해해 주셨던 시절들이 떠올랐다. 그분께서도 나처럼 말벌 공장을 에로티시즘의 결정체로 보실까. 문득 궁금해진다.

아무튼 너무도 강렬한 소설인지라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주인공 프랭크, 아니, 프랜시스를 떠올리며 내 망상 속에서 재탄생시키겠다. 이렇게 고급스러운 에로티시즘 문학 작품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추가로, 작중 많은 음식들이 등장하는데 이조차 원초적 욕구와 성욕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영국 요리는 맛이 없다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요리들은 한 번쯤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빵을 찍어 먹는 묽은 고기 수프는 묘사만 보면 그저 그런 것 같지만 어딘지 스코틀랜드의 기운을 느끼며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책과 함께 요리들도 다른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냠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