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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선과 악', '좋음과 나쁨'의 개념은 오늘날 선으로 인정받는 '비이기적 행동'의 수혜자들로부터가 아닌, 그것을 스스로 선한 행동으로 지칭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권력자들에게서 나왔다. 곧 좋음은 귀족적이며 지배적인 가치를, 나쁨은 천민적이며 종속족인 가치를 내포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선과 악의 개념으로까지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것은 강자에 대한 약자의 원한을 유발하여 끝내는 켈트족에 대한 아리아인의 복수를, 프랑스왕정에 대한 프랑스시민의 복수를, 결정적으로 로마에 대한 유대의 복수를 낳아왔다. 그토록 강했던 로마는 멸망했지만 오늘날에도 인간들은 네 유대인(예수, 마리아, 바울, 베드로)에게 고개를 숙이며 합리주의와 결합한 기독교 도덕을 신봉하게 되었다.

2장

'양심의 가책'은 인간이 터득한 노예도덕-기독교도덕에서 유발된 질병이며 외면으로 표출되지 못하는 공격성과 원한을 내면화한 결과이다. 이러한 양심의 발명과정은 채무자와 채권자의 관계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태초에 형벌은 채무자를 심판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채무자에 대한 채권자의 쾌락과 지배욕을 충족시키는데 그 진정한 목적을 두었다. 이로 인해 채무자는 자신의 고통-육체와 영혼을 채권자에게 복속함으로써 스스로 속죄와 상환의 감정을 지니게 된다. 이는 원시종족이 그들의 조상에 대해 갖던 부채의식, 인간이 신과 맺는 주종관계와도 상통하는 맥락을 갖는다.

우리는 이러한 지배와 피지배관계의 지속이 종내에는 채권자에 대한 채무자의 반항으로 이어질것이라 쉽게 예상하지만, 기독교도덕의 천재성은 여기서 나타난다. 신-채권자가 인간-채무자를 위해 스스로를 자기 자신에게 지불했을 때, 오로지 채무자에 대한 사랑만으로 채권자가 자기희생을 택할 때, 채무자는 상환불가능성과 속죄불가능성이라는 눈앞의 장벽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은 여기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이렇듯 2000년을 이어온 가치체계를 전도하는 것이 가능할까? 니체는 그에 대해 침묵하기를 선택하지만 한편으로는 초인의 출현을 염원하며 장을 맺는다.

3장

'금욕적 이상'은 니체에게 영향을 미쳤던 음악가 바그너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혹평과 함께 시작된다. 우선 니체는 모든 예술가가 과거나 당대의 보호자-철학,정치,사상을 따르는 시종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젊은 시절의 니체와 적극적으로 교류했던 바그너는 쇼펜하우어 철학의 추종자로서 수많은 명곡을 작곡했는데, (니체의 설명에 의하면) 그의 예술인생 후기로 넘어가며 쇼펜하우어가 공감을 표했던 '금욕적 이상주의'에 빠져 자신이 써낸 위대한 음악들과는 정반대에 위치한 잉여적 가치의 곡을 쓰기에 이른다.

여기서 말해지는 금욕적이상주의란 예술가와 철학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가치이자 실천방식으로 이해 가능하다. 칸트는 예술가 개인의 욕망-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난 작품에 최고가치를 부여했고, 이어서 쇼펜하우어는 작품이 예술가의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날 때 관조의 효과가 일어나며 궁극적으로는 성적(sexual) 이해관계의 상태를 억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니체는 이에 맞서며 "미는 행복을 약속한다"는 스탕달의 입장을 소환한다. 예술가 개인의 욕망(행복추구)-이해관계는 결국 미를 추구하려는 의지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니체는 쇼펜하우어가 칸트의 입장을 오독했다고 주장하며,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이해관계'야 말로 예술의 내밀한 토대가 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쇼펜하우어가 억제가능하다고 말한 성적 이해관계는 금욕적 이상으로 인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변형될 뿐이라고 말한다.

니체의 주장은 다시금 기독교도덕 비판으로 이행한다. 이처럼 금욕적이상주의에 내재한 금욕-순결주의와 이상-유신론은 관능과 이해관계의 회피라는 한계에 다다른다. (이는 곧 예술에서의 탐미정신 부재, 유신론적 세계에 발묶인 작가-예술주체의 실종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아가야할 무신론적 세계에 이상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니체는 아니라고 말한다. 더불어 이상은 다름 아닌 인간의 의지 그 자체가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유신론은 우리가 겪는 고통이 '왜'인지에 대한 해답을 준다. 신의 섭리라는 명제와 그에 따른 해석으로 말이다. 그 과정에서 모든 고통을 죄의 전망 아래로 끌고 와 의미를 부여해낸다. 그러나 무신론은 그럴 수 없다. 즉 신을 버리는 동시에 우리는 다시 공허를 떠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 보다는 기꺼이 무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니체의 논박은 마무리 된다.



감상 - 책 읽얶는데 존나 어렵길래 걍 내가 다시 정리하면서 이해하려고 썼음 ㅈ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