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을 하루에 하나씩 읽기로 했는데,
재미는 있지만 분량이 짧다보니까 아쉬워서 얼마 전에 산 톨스토이 단편선 2를 꺼내서 하나 봤다.
처음에는 두 형제가 황금을 주워 나눴다가 아우가 형에게 있는 금이 탐난다고 강에 빠뜨려서 형도 빠뜨리는 동화를 생각했지만, 내용은 달랐다.
아우는 황금을 보고 도망쳤지만, 형은 황금을 보고 쓸어담았다.
아우는 어려운 자를 위해 노동을 했지만, 형은 어려운 자를 위해 황금을 썼다.
아우는 보수를 받지 않았고, 형은 황금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신의 뜻은 아우의 손을 들어주었다.
황금이 아무리 선한 뜻으로 쓰였다고 할 지라도, 그리고 그 선한 뜻이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할 지라도, 악마의 유혹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선을 향한 함정으로 가는 악마의 유혹을 피하는 것, 그것이 천금의 가치와 같은 선행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이었다.
황금을 손에 넣었던 자는 손에 넣지 않은 자와 어울릴 수 없다.
이쪽은 황금에 의해 일을 하고, 저쪽은 노동에 의해 일을 하기 때문이다.
신과 사람을 위한 일은 황금이 아니라 노동에서 오는 것임을 깨달아야 서로 화합할 수 있다.
작가는 위의 내용대로 말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
과연 어떤 상황이라도 풍요롭게 해줄 황금이 눈 앞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올바른 것일까.
더군다나 그것이 악마의 유혹이라는 것을 안다면, 어떻게 해야 올바른 것일까.
자신을 결코 더럽히지 않기 위해 더 큰 기회를 버릴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꾈 지도 모르는 유혹을 총대처럼 맬 것인가.
어떤 것이 차악인지 정량적으로 잴 수라도 있긴 한가, 아니면 그것의 한계를 깨닫고 기분이나 신념을 따를 것인가.
어쩌면 최영이나 '유토피아'의 유토피아처럼 모두가 황금을 천하게 바라보면 해결될 문제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사람 이상은 어떤 의도를 가졌든 황금을 가져가기에, 그런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톨스토이가 종교적인 사람이라 이 리뷰도 종교적이네.
대충 급하게 쓰느라 별로 잘 쓴 것도 아니고.
나름 기독교인인데도 황금을 가져간 행동이 왜 옳지 않은 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독갤러들은 어떤 걸 선택할 거임?
노동과 물질의 차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어떻게 자본의 축적을 정당화하는지 알 수 있다. 자본주의는 꽃이 폈지만, 모두가 행복한건 아니다.
흠 고르기 어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