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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비극(+템페스트) 이후 정말 오랜만에 읽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었고,
또 처음 읽는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있었지만, 앞서 읽은 다섯 작품보다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헨리 5세>의 배경은 백년 전쟁의 일부인 아쟁쿠르 전투이다.
백년 전쟁 휴전기, 헨리 5세가 프랑스 왕위 계승권 양도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전쟁의 재개를 선언하고 프랑스에 상륙한 이후 치른 전투가 이 아쟁쿠르 전투인데,
2배 가량의 수적 열세에 있던 잉글랜드군이 프랑스군에게 승리한 전투로 유명하다.
비유하자면 명량해전의 육지-잉글랜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로 이 소재가 이야기의 구성을 다소 단조롭게 만든다.
한국인이 명량해전을 다루는 이야기를 만들 때, 독자의 예상을 뒤엎는 이야기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영국인인 셰익스피어도 아쟁쿠르 전투를 다루는 이야기를 만들면서
아주 큰 참신함을 주는 이야기를 만들 순 없었던 것이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헨리 5세는 꽤 전형적인 '성군'으로 묘사된다. 젊은 시절에는 방탕했지만 왕이 된 이후에는 착실하게 살고
출정하기 전에 귀신같이 반란의 냄새를 알아채 주동자들을 처형하며, 전우의 용감한 죽음에 눈물짓는다.
물론 군주가 아닌 개인으로서 번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 번민의 내용도 아주 전제군주스럽다.
"노예는, 조국 평화의 일원으로,
그것을 즐기지만, 머리가 형편없어 별 생각이 없다.
그 평화를 지키려고 왕이 얼마나 노심초사하는지,
왕의 시간을 가장 잘 우려먹는 것은 농부들이고."
-<헨리 5세> 4막 1장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무식하고 천한 것들은 높으신 분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도 모르고
생각 없이 노동이나 하니 참 편하겠구나.' 하는 한탄이 주가 되니, 솔직히 공감도 안 되고 이입도 안 됐다.
그냥 중세 군주들이나 귀족들은 저런 생각을 했구나. 하는 관조만 하게 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잘 쓴 작품은 맞다.
전개는 흥미롭고, 중간중간에 들어간 유머는 번뜩이고, 표현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원래는 한 닷새 정도로 계획을 잡았는데, 다음 장면이 기대되어 계속 읽다 보니 이틀만에 읽었을 정도이다.
<햄릿>이나 <리어왕>에서 나오는 군주들의 모습을 기대하지 말고,
그냥 재미있고 잘 읽히는 잉글랜드의 영웅담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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