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남들은 묵은 이불과 빨래를 널고 새로 얻은 씨앗을 심는다든지 생산적인 일에 부산을 떱니다만 저는 매년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최백호나 주현미가 부르는 '봄날은 간다'를 수도 없이 듣고,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늦봄'을 DVD로 다시 보며 한숨 짓고 미야모토 테루의 '밤 벚꽃'을 읽습니다.
계절마다 읽어야 할 책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여름이 시작될 때면 저는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을 상큼한 사이드 카 한잔을 마시며 읽습니다.
그러다 8월이 되면 포크너의 '8월의 빛'이나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매년 읽지요.
어떤 해는 헤밍웨이의 책들을 읽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차가운 얼음에 화이트 럼, 애플민트와 라임을 넣은 모히토를 마시는게 어울립니다.
가을이 되고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펼치지만 끝까지 읽지 못하고 포기합니다.
그 책보다는 아이리쉬 위스키인 제임슨이나 부쉬밀을 넣은 아이리쉬 커피의 기억이 더 납니다.
'율리시즈'는 아이리쉬 커피를 마시기 위한 구실이랄까요?
겨울이 시작되고 겨울비가 내릴 때 가장 어울리는 책은 도스토예프키의 '백야'입니다.
읽다보면 문장 하나 하나가 뼈마디를 비틀어 놓는 것처럼 고통스럽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글을 읽다보면 잊고 지냈던 관절염이 재발하는 느낌마저 듭니다.
최근에 뱅쇼 만들기를 제대로 배웠는데 올 겨울에는 '백야'를 읽으며 따뜻한 뱅쇼를 마실 생각입니다.
그러고보니 긴 겨울에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나 안톤 체홉의 희곡 전집을 읽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겨울은 아무래도 추운 러시아 작가들이 어울리니까요.
글이 이상하게 흘렀는데 다시 봄으로 돌아와서 벚꽃 만개한 봄에 미야모토 테루의 '밤 벚꽃'을 읽어보십시오.
아쿠다카와 상의 수상자이며 일본 순수 소설을 대표하는 이 작가의 책은 국내에 여러 편이 소개되었습니다.
제가 추천하는 '밤 벚꽃'은 '환상의 빛'에 실린 단편입니다.
표제작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장편 데뷔작으로 잘 알려져있지만 '밤 벚꽃'은 그렇게 유명한 소설이 아닙니다.
벚꽃 나무가 정원에 있는 집에 혼자 사는 중년의 여자가 있습니다.
벚꽃이 활짝 핀 밤에 젊은 부부가 찾아와서 그 중년 여인에게 신혼밤을 보내고 싶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그리고 그 밤을 미야모토 테루는 숨죽일 수밖에 없는 문체로 써내려갑니다.
벚꽃이 흔들리며 떨어지는 듯한 아름다운 문장과 봄 밤의 묘사가 압권입니다
벚꽃 다 떨어지기 전에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p.s. 독서 레시피를 추가한다면, 이 작품은 벚꽃이 만개한 봄 날, 벚나무 아래에서 벚꽃 사케를 마시며 읽는 것이 제 기억으로 가장 궁합에 잘 맞았습니다.


러시아 작가는 ㅇ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