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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길러본적 있는가?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덩굴이 자라는걸 돕기 위해 지지대를 박아주기도 하고, 상한 잎을 잘라버리거나, 벌레가 갉아먹지 못하게 쫒아버리거나 하는 일들 말이다. 이처럼 식물을 기르는 일을 ‘원예’ 라고 하는데, 원예의 뜻에 ‘식물을 심거나 씨를 뿌리는 일’ 이 포함되어있는 것처럼 식물을 기른다는 행위에 파종이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원예에서 파종을 떼어버리고, 짠 치약을 다시 넣어버릴 수 있으며, 먼지의 개수를 셀 수 있는 존재를 안다. 그 존재는 우리의 파종자(播種者)이며, 추구해야할 최고 가치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신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신은 우리를 파종했을 뿐, 우리가 어떻게 자라날지는 전적으로 스스로의 정원사인 자신에게 달렸다. 인간은 스스로를 어떻게 가지쳐야 할 것이며, 접붙여야 할 것인가?
다시 묻겠다. 식물을 길러본적 있는가? 식물은 온갖 방법으로 기른다고 자라나지 않는다. 그 식물이 어떤 식물이든 그 식물에 걸맞는 환경을 맞춰줘야 비로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난 인간이란 종(種)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장미의 이름≫과 ≪멋진 신세계≫에서 화두를 던졌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장미의 이름의 등장인물은 모두 성직자나 수도사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신의 말을 자기 생각대로, 입맛대로 바꿔가며 자기화(自己化)한다. 이는 우리 존재 이외의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것을 각자의 틀에 맞춰 깎아내야 하는 인류라는 종의 한계 때문에 필연적으로 정원사가 가지를 치듯이 잘라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 기독교 신자(信者)들이 신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필연적으로 신과 진리를, 도덕과 가치를 깎아내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정원을 ≪장미의 이름≫처럼 꾸미겠다면, 사람들은 신과 진리에는 침을, 타인과 도덕에는 피를 뱉을 것이다. 우리는 여지껏 그래왔던 것처럼 신을 폄훼하고 진리를 훼손할 것이다. 언젠가 발견될 진리를 기다리며, 인간은 죽이고 죽어갈 것이다. 이 진리라는 것은, 신이라는 것은 삼라만상이 모두 스러지는 순간이 올 때까지 찾아오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억겁의 시간동안 오지 않을것임을 알더라도,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가치를 둘 수도 있는 법이다.
두 번째로, 멋진 신세계의 인간들은 모두 행복하다. 그들은 만인은 만인의 것이라며 모두와 관계를 맺고, 죽음을 슬퍼하지 않기 위해 어릴 때부터 죽음은 슬픈 것이 아니라며 세뇌한다. 아기는 배양해서 출산의 고통을 없애고, 사랑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서로를 모두가 소유한다. 그럼에도 필연적이게 생기게 되는 불행은 ‘소마’라는 약물을 통해 해결함으로써 ‘불행을 거세한 사회’ 속에 산다. 이 불신자(不信者)들은 절대적 가치를 씹어삼켜 더럽히지도 않고, 타인의 피를 잉크삼은 검으로 도덕을 써내려가지도 않는다.
어떤가? 당신이 이 ‘멋진 신세계’에 산다면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즐겁지 않겠는가? 진보가 없으면 어떠한가? 소마가 있는데? 변화 없는 세상에서 과학도, 문명도 정체되든 말든 상관없지 않나? 지금도 행복한데? 신이나 진리같은 뜬구름들이 다 무어냐? 질식할 것 같은, 쾌락과 행복들에 둘러쌓여 평생을 지낼 수 있다는데 헛된 망상이나 하며 불행할 필요가 있느냔 말이다.
두 책이 던져준 화두는 신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묻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의 껍질을 깎고, 쪼개서 연약하고 부드러운 살과 함께 떠오를 것인지, 단단한 외피를 두르고 딱딱하게 굳은 채로 심해의 밑바닥에 가라앉을지 선택해야 한다. 자, 또 다시 묻겠다. 당신은 식물을 길러본적 있는가? 당신의 식물은 어떻게 키울 것인가?
*두줄요약
1. 불편하게 섹스할래
2. 편하게 섹스할래
멋진 신세계에선 찐붕이도 섹스할 수 있음?
씹가능 - dc App
소마 먹으러 감
두 작품을 한데 엮을 줄은 상상도 못했네. 정말 흥미롭게 잘 읽었다bb
와 글빨 쩌네ㄷㄷ
좋은 감상문
재밌게 잘 읽음. 난 장미의 이름같은 삶을 택하마. 그러나 그 인생관에 매몰되지 않으려 함. 의식을 깨우고 살아야지. 내가 남의 희생위에 서서 발전을 누릴때 기꺼이 이 행복을 자축할것이고 동시에 희생량에대한 죄책감도 갖고살련다. 그렇게 분열된 마음으로 살다가 스스로에게 혐오감을 갖게되고 자살각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