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내용을 확인하시려면 스크롤 해주세요.

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만두이미지

https://www.youtube.com/watch?v=K8QbMS2FRio



< 꿀벌 마야의 모험 > - 발데마르 본젤스 (비룡소) 프란치스카 셍켈 그림, 박민수 옮김



어릴 때 부모님께서 아동용 문고로 축소되어 출간된 세계문학 전집을 사주신 적이 있다. 그 수십여 권의 책들 중 처음으로 읽었던 작품이 바로 이 꿀벌 마야의 모험이었다. 어찌 보면 내 첫사랑과도 같은 작품이었고 나를 문학의 세계로 인도해 준 작품이었다. 내게는 각별했던 이 작품의 완역본을 성인이 되어서야 뒤늦게 재독할 수 있었다.

마야는 당돌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귀여움이 돋보인다. 저자가 동화이지만 의인화를 할 때 캐릭터의 성향을 개성적으로 잘 표현했다.

초반부터 꿀벌 왕국에 반란과 혼란의 조짐이 보인다. 뭔가 심오하다.

마야는 어릴 때부터 끼가 있어 보이며 반항아 기질과 걸크러시를 선보인다. , 왜 이렇게 귀엽냐.

문득, 마야는 활발하고 외향적인 타고난 인싸 성격으로 보인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지만 마야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해 살아가기를 택한다. 게다가 다른 생명체들을 대하는 친화력도 좋다. 방구석에만 갇혀 사는 아싸들은 마야의 적극성과 친화력을 보고 배워야 한다.

잠자리가 쇠파리 한스를 잡아먹는 장면은 마야에겐 충격적이겠지만 그녀를 더욱 성장시켜줄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잠자리가 뒤늦게 쉬누크라는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 얘 이름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름도 특이하지만 자꾸만 축구선수 김신욱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참고로 김신욱 선수가 울산 현대에서 뛰던 시절 소속팀에서는 김신욱의 이름을 따 시누크 버거라는 햄버거를 구단 매점에서 팔았다고 한다. 의외로 맛이 괜찮았다고 한다. (축덕후의 뜬금없는 헛소리다)

쇠파리의 이름 또한 한스 크리스토프라니. 곤충들의 이름들이 너무 고급스러워서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저자의 작명 센스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쉬누크의 인간에 대한 얘기는 역지사지를 느끼도록 해준다. 어린 소년들의 잔혹함에 대해 설명하는데, 어딘가 저자는 다른 생물들을 함부로 괴롭히는 짓궂은 소년들을 비판하는 것과 동시에 대조적으로 정의감 넘치는 자신의 취향의 소녀 이미지를 마야에게 투영한 것 같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떠오른다. 부디 이 작품의 저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처럼 소아성애자는 아니기를 바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보다 직설적이고 풍자적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수준의 멘탈이 나간 듯한 말장난들은 없다. 어딘가 지독한 현실 세계에서 여러 경험들과 감정들을 접하는 마야의 성장기가 아닐까 싶다.

이피와 쿠르트의 관계도 눈길을 끈다. 하는 일(직업)만으로 누군가를 평가하고 차별하는 현실 사회를 비판한 듯하다. 우정은 종족을 초월하나 직업이 가로막는 것이 인간 세상을 풍자한 듯하다.

집파리 푸크를 협박해 인간에 대한 정보를 얻는 마야. 물리치료사 막심도 울고 갈 폭력을 동반한 설득이다. 마야처럼 귀여운 캐릭터에게 협박당하는 건 업계 포상이 아닐까 싶다. (?)

집파리의 입장에선 그들이 인간보다 위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뭔가 다양한 관점에서의 역지사지가 돋보인다.

쿠르트 덕분에 거미줄에서 벗어난 마야. 곤충 세계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들을 체험할 수 있다.

혼자 있고 싶어 하면서도 관심은 받고 싶어 하는 노린재를 보니 인터넷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심종자 찌질이들이 떠오른다.

한편 마야를 보니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려는 방구석 히키코모리를 비판하는 느낌도 든다. 직접 세상과 부딪치며 성장하라는 의미로 전해진다.

또한 단순히 선악의 구도로 쓰이지 않았다. 선악이라는 개념을 초월했다. 캐릭터들도 성격과 개성을 잘 표현했다. 군더더기가 없으며 아쉬운 문장이나 장면이 없다.

통거미가 인간들이 곤충들의 정신세계를 모른다며 역지사지의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뭔가 다른 생명체의 관점에서 인간을 관찰하는 것이 흥미롭다.

곤충들마다 다른 문화와 화법, 성격들을 가진 것이 인간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문화 차이로 인해 오해와 갈등을 겪는 사회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주인공이 꿀벌인 이유는 인간과 공생하며 인간과 함께 사는 법을 아는 곤충이기 때문이 아닐까. 곤충 세상과 인간 세상을 잇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면서 읽으니 갑자기 꿀벌이 굉장한 존재로 느껴진다.

그리고 인간을 침으로 찌르면 죽는다는 꿀벌의 특성이, 인간과 꿀벌을 잇는 무언의 조약을 깨뜨리지 말라는 금기의 문학적 장치로 연상된다. 이 동화는 읽을수록 여러 문학적 의미와 장치들에 의해 감탄스럽기 그지없다.

인간의 외형을 한 요정의 등장은 이 동화를 더욱 신비롭게 해준다. 전혀 뜬금없는 존재가 아니다.

꽃의 요정은 어딘가 삶과 죽음은 하나이며, 불교의 윤회를 떠올리게 한다. 덧붙여, 마야의 소원대로 인간을 이어주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무당벌레 시인 알로이스는 만나자마자 까칠하게 구는 게 진짜 예민한 문인 그 자체로 보인다. 게다가 자기 시에 대한 자랑이나 자부심이 비정상적으로 심하며 타인을 자기만의 생각과 잣대로 평가를 해서 은근 소름이 돋았다. 실제로 많은 수의 문인들이나 문청들이 알로이스와 같은 모습을 보여서 소름이 돋았다.

뭔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할 법한, 두들겨 패고 싶을 만큼 나사 하나 빠진 캐릭터들도 종종 눈에 띈다.




분량 문제로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