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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최고의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 말벌에게 납치당하는 마야. 불한당 그 자체다.
보초 말벌은 신사적인데 잠자리 쉬누크를 알고 있기까지 하다. 기회다, 마야! 내가 괜히 꼬맹이 시절에 이 작품을 읽고 김신욱인지 쉬누크인지 하는 이름을 기억한 게 아니다! 게다가 쉬누크가 여자란 것도 이제야 알았다. 쉬누크라는 잠자리도 냉혹하면서 매력적인 캐릭터였는데, 말벌 주제에 여자를 볼 줄 안다. 허허.
그나저나 종족이 다른 곤충끼리 사랑을 나누면 수간이 되는 게 아닐까? 잠깐 불건전한 의문이 들었다. 어찌 보면 곤충들의 세계는 인간들의 세계보다 대인관계나 이성 관계에 개방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쓰이던 당시엔 유색인종과의 연애를 부정적으로 보던 시절이었는데 말이다. 인간보다 곤충이 더 진보적으로 보인다. (이 작품이 출간될 당시 활동하던 인종차별주의자 러브크래프트와 나의 투쟁을 집필하던 히틀러는 나가서 엎드려 있어!)
아무튼 이마저도 인간의 패배다. 인간들은 곤충들보다 더 많은 희생을 치렀음에도 아직도 서로간의 갈등으로 인해 피를 흘리고 있다.
약속대로 쉬누크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고 풀려난 마야. 정말 신사적인 말벌이다.
꿀벌과 말벌 간의 전쟁에서도 말벌 전사로서 자긍심을 잃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런 죽어가는 말벌을 동정하며 도와주려는 마야 또한 눈길을 끈다. 인간들보다 더 인간미가 넘치고 죽는 그 순간까지 용기를 잃지 않는 모습에 감탄한다. 인간이 과연 말벌이나 꿀벌보다 나은 존재인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결말은 동화답게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났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해준 작품이다. 아이들이 보는 동화에서, 곤충들에게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교훈적인 문학 작품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버렸다. 이건 단지 작가의 역량 덕분일지도 모른다. 단지 못 써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연스레 책을 통해 사람을 바꾸는 것이 바로 문학이 가진 힘이 아닐까 싶다. 억지주장을 문학으로 포장해 프로파간다를 전파시키려는 많은 문인들이 보고 배워야 할 듯싶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동화라고 얕봤다가 큰 코 다쳤다. 풍자나 문학성, 그리고 재미나 교훈까지 상당한 수준이었다. 요즘 젊은작가상 수상작들 때문에 논란이 되는데 그딴 책을 볼 바에야 고전 동화를 읽는 것이 더 나을 듯싶다. 문학인지 프로파간다인지 모를 글을 쓰는 요즘의 한국 작가들은 모조리 반성해야 한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곤충으로 표현한 걸 보니 애들보다 어른이 더 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꿀벌 마야의 삶 앞에서 인간들이 얼마나 한심한 존재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인간들은 고작 해봐야 ‘야, 꿀벌’ 하는 되도 않는 개드립이나 치는데. (이 꿀벌 드립을 처음 알았을 때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마야가 인터넷 공간에서 유행하는 꿀벌 드립을 알게 된다면 한심해 하고 경멸하며 혐오하면서 인간에 대한 환상이 작살날 것 같다. 인간을 오히려 하등한 벌레 취급할 듯하다. 마야가 인터넷이니 디씨니 하는 것들을 몰라서 참으로 다행이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꿀벌 마야의 모험 같은 명작 동화를 보며 성장했는데 성인이 되고 사회를 접했다는 이들이 이 작품보다 훨씬 못한 수준 낮은 작품들을 창작하거나 소비하고 있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 문학이 점점 퇴보한다는 느낌도 든다.
또한, 나처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창작품을 은근슬쩍 얕본다는 것에 영화감독 심형래가 떠올랐다. 그의 영화를 보아하니 그는 아동용이라는 것 자체를 수준이 낮다고 무시하는 게 아닐까 싶다. 게다가 창작도 못한다. 허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창작물일지라도 잘만 창작한다면 남녀노소 누구나 명작으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심형래 감독은 물론이고 모두가 배워야 할 듯싶다.
그리고, 이 동화는 무조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 같은 건 논하지 않는다. 마야는 화를 낼 땐 화를 내고 친절을 베풀 땐 친절을 베푼다. 그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일지 모른다. 교조주의적이지 않으면서도 정말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교훈을 가르친다.
마지막으로 일본 아이돌 오타쿠가 쓰는 감상문답게, 덕내를 살짝 풍기면서 마무리를 짓고 싶다. 프로듀스48 촬영이 시작되고 일본 아이돌 연습생 멤버들이 한국에 와서 처음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어느 한 일뽕 맞은 오타쿠가 “이게 일본이다! 이것이 일본이다!”라고 큰 소리로 외쳐 내부에서도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 앞에서는 마음껏 “이게 문학이다! 이것이 문학이다!”라고 소리쳐도 될 것 같다. 프로듀스48에서 자신의 덕심을 주체하지 못한 일본 문화에 심취한 오타쿠처럼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꿀벌 마야의 모험’이 진정한 문학인 것은 “사실”이니까.
왜 갑자기 결말이 일본 아이돌?
읽으면서 "이것이 문학이다!" 라고 외치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이것이 일본이다!" 라고 외친 일뽕 오타쿠가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