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가 문단에서 -찐-이 된이유는 시초를 거슬러올라가 보자면 그 유명한 아쿠타가와 상 사건이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자기한테 상 안줬다는 이유로 잡지에 부들거리면서 대충 "종달새나 구경하는 틀딱 쉐끼가 말이많다 뒤질래?" 라는 글을 썼고. 한동안 사토 하루오, 이부세 마스지 등의 다자이의 문단 스승이라고 할만한 인물들로 부터 멀어지게 된다. 근데 이때는 ㄹㅇ 약하고 다니는 약쟁이 였기 때문에 다들 병신쉑 하면서 봐준거 같다. 아무튼 다자이가 본격적으로 기성 문단에서 -찐- 이 되기 시작한 것은 전쟁 이후였다. 유사 유럽 일본은 전쟁 이후 전쟁할 때 보다 물자가 모잘랐고 당연히 책 찍을 종이도 부족했다. 근데 이런 상황에서도 한 책만은 겁나 잘팔렸는데, 그게 다자이의 사양이였다. 문단 사람들은 안그래도 배아픈데 출판사에서 주는 돈을 그대로 술집에 꼬나박는 짓을 보고 슬슬 다자이가 아니꼽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양이 너모 잘팔리니까 출판사에서 다자이 전집을 기획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이게 선을 넘는짓이였다. 그때까지 일본에서는 생존작가의 전집을 내본 적도 없을 분더러 다자이의 스승인 이부세 마스지조차 전집이 없던 상황이였으니까! 근데 다자이는 출판사의 제안을 쿨하게 수락했고 문단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그때부터 슬슬 다자이 뒷담을 까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사건으로 여시아문 사건이 있었다. 당시 시가 나오야는 일본 문단에서 소설의 신이라 불리며 존중받던 작가였는데 그런 작가를 정면에서 까는 산문을 발표한 것이다. 현재 한국 문단으로 치자면 김영하가 황석영을 글로 후드려 깐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였고 당연히 다자이는 문단에서 더욱 고립된다. 그런데, 아니? 다자이가 갑자기 자살해버린 것이다. 거기에 인간실격이라는 유고를 남김으로써 다자이는 대중의 큰 관심과 동정을 받게 되었고 이후 다자이를 후드려 깟거나 다자이가 욕해서 정당 방위로 욕한 작가들은 "나는....몰랐어....흑흑" 하며 변명으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다자이 참피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