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리처드 3세>는... '프로파간다' 스럽다. 이에 대해 셰익스피어를 비난할 생각은 없고, 또 비난해서도 안된다. 리처드 3세에 맞서 싸워 그의 왕위를 뺏은 리치먼드 백작, 즉 헨리 7세가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잉글랜드의 군주였던 엘리자베스 1세의 친할아버지였다. 그러니 리처드 3세를 조금이라도 좋게 묘사할 수가 있었겠는가. 사실 그 이전에도 정통성 문제로 시비가 걸릴까 염려했던 헨리 7세의 선전 때문에 리처드 3세의 평가는 바닥을 기는 수준이었다.
주인공인 리처드 글로스터(훗날 리처드 3세)는 호전적인 악인이다. 작품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보이는 그의 첫 대사에서 "난 결심한거야 악당이 되고 (I am determined to prove a villain)" 라는 구절이 나오니 말 다 했다. 악인답게 그는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전작 <헨리 6세>에서 헨리 6세와 그의 아들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기 위해 귀족들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한편 적법한 왕세자들을 왕의 사생아들로 몰아 은밀히 죽이며 수많은 이들을 사형장으로 보낸다. 이와 더불어 외모도 등이 굽은 추한 몰골로 묘사된다. 이 정도면 그냥 작가가 '미워하라고' 만든 존재에 가깝다.
그런데 후반부에는 리처드의 대척점에 서 있는, 정의롭고 올바른 귀족 리치먼드 백작이 등장한다. 이 양반은 신실하고, 용감하며, 선대 왕 헨리 6세에게 '장차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까지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왕위를 찬탈한 리처드의 목을 베고 '정당한' 계승자로서 잉글랜드 국왕의 자리에 오른다.
이러니 전에 소개한 <헨리 5세>에서와 같은 문제점이 발생한다. 도저히 이입할 인물이 없다는 게 그것이다. 주인공은 그냥 나쁜놈이고 그에 맞서는 인물은 그냥 좋은놈이며, 나쁜놈 편에 선 인물은 몰락하고 좋은놈 편에 선 인물은 성공한다. 이런 스토리가 빤히 보이니, 독자들은 '그래서 언제 리처드 목이 날아가나' 만을 기다리게 된다. 현대적인 스토리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셰익스피어의 다른 비극과 비교해봐도 <리처드 3세>의 이야기는 다소 진부한 감이 있다. <오셀로>의 이아고가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여전히 셰익스피어의 글은 빛난다. 필자가 이 스토리를 매우 진부하게 느꼈음에도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작품 자체가 짧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문장이 아름다우며 곱씹어볼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전에 독갤에 업로드하기도 했던 리처드와 앤의 설전 부분을 읽을 때는 '말싸움을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요약하자면 ,특출나게 재미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읽을 가치는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맥베스>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맥베스>와 이 작품을 번갈아 읽으면서 셰익스피어가 비슷한 플롯을 2개의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를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맥베스>를 집필한 것은 <리처드 3세>를 집필하고 12-13년이 지난 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담으로, 이 작품에서는 3명의 에드워드와 2명의 리처드가 언급된다. 읽어볼 생각이 있다면, 읽으면서 인물 관계도를 그려보는 것을 강력히 권한다.
마지박에 패배하는 주인공도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함. 감정 이입은 좀 그렇겠지만...
매력적일 수 있지. 근데 리처드 3세에서는 그 주인공을 시작부터 너무 깔아뭉개고 시작함. 그러니까 마지막에 패배할 때 어떤 복잡한 감정이 아니라 죽을 놈이 죽었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
지금 리처드 3세 원서가 배송되고 있네.
읽을거면 그 시대 영국 역사 간략하게 훑어보는거 추천드림.
문장이 아름답다라... 셰익스피어의 능력이 대단하긴 한듯 대사 하나하나가 생기발랄하니 - dc App
적절한 단어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조합해서 되게 멋진 문장을 만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