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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 박범신
육체는 다만, 풀과 같은가.
"여름은 샹들리에, 가을은 등롱."
소설 <은교>에서 나오는 문장이다. 다자이 오사무가 했던 말이라고 한다. <은교>에서는 다른 작가들의 문장이 많이 들어가 있다. 인용된 아름다운 문장들과 박범신의 문장이 한 데 잘 어우러져 '갈망'이 내보이는 아름다운 문장을 보여준다.
'갈망'
간절히 바라다. <은교>의 할아부지 시인 이적요는 은교를 만나고 나서부터 은교를 갈망한다. 은교 자체를 사랑해서 순수한 갈망인가, 젊음에 대한 갈망이 은교에게서 투사되어 갈망하는 것인가. '누구'는 그랬다. 은교를 사랑한게 아니라, 은교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처녀성'이 깃든 젊음을 갈망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적요시인은 소설 중간 중간 마다 '늙음'의 가로 막히고 '젊음'을 노래한다.
"…과거를 기록하는 역사의 문장과 오늘을 사는 생생한 삶의 문법 사이는 별과 별처럼 멀다. 편지에 담은 나의 이런저런, 역사성을 간직한 문장들은 너의 인생이 아닐 뿐더러 너로부터 아득하게 결절돼있다. 내 편지가 이 모양이 된 것도 그 때문이다. "
'젊음'앞에 막힌 노신사의 모습이다. 그는 그렇게 '젊음'을 갈망하는 것 처럼
보인다.
과연 그가 일차원적으로 바보같이 '젊음'을 갈망한 것일까? 이적요는 겉으로는 신비롭고 근엄한척 하지만, 속내는 약하다. 심지어 대중들을 무시하거나 단점을 이용하기도 한다.
"…오로지 시만 쓰는 게 자랑일 게 없다고 믿었지만, 이른바 고답적인 돚가들을 다루는 데는 그런 전략이 여전히 주효한 것이 우리의 지식인 사회였다."
그는 '욕망'과 '갈망'을 아주 조절을 잘 한다고 그 스스로 말하고 있다. 제자 서지우도 그러한 모습을 스승이라 하고 철썩같이 따랐다. 그러한 그거 '은교'처럼 평범하게 그지 없는 한 아이 '하나' 때문에 '젊음'을 갈망한다?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다.
'평범한' 은교를 이적요는 아주 순수하게 사랑한 것이다. 그게 은교를 특별하게, 서지우와 이적요 사이에 있음으로써 독자들은, 나와 너 그리고 당신들은 특별한 은교를 만나게 된 것이다.
질투와 사랑으로 포장된 '은교'를
은교를 사랑한 이적요를 보면서 서지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눈 감으면 송장 같은 노인이 고등학생을 욕정으로 본거 같아서 역겨웠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바라봐서 질투가 났을까? 바뀌어가는 스승을 보면서 서지우는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스승을
그리고 은교를.
내세울건 젊음 밖에 없던 서지우는 좌절했다. 스승의 진실한 사랑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에게 스승은 고귀하다. 어미새가 새끼새를 품듯이 먹이만 찾는 어미새처럼, 서지우에게 이적요는 시인이였다.
'젊음의 가로막힌 이적요는 '은교' 다음으로 '젊음'을 갈망하고 질투하기에 이르렀다. 외적으로는 늙었지만, 내적으로는 젊고 싶었다. 은교가 이 말을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이적요는 싱싱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그것은 고요한 욕망이었다. 한없이 빼앗아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내 것을 해체해 오로지 주고 싶은 욕망이었다. 아니 욕망이 아니라 사랑, 이라고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비로소, 욕망이 사랑을 언제나 이기는건 아니라는 확고한 생각이 나를 사로 잡았다. 그애를 오로지 소유하고 싶었던 욕망은 관능조차 이길 수 없었는데, 지금은 달랐다. 나의 사랑으로 관능과 욕망을 자유롭게…"
은교를 사랑하기 위해 '젊음'을 갈망했다. 은교를 가지기 위해 '갈망'한 서지우와 다르다. 소유하고 싶었던 서지우는 끝내 주고 싶었던 이적요를 이해하지 못했다.
'갈망'에게도 나이가 있을까?
새벽에 읽고, 위대한 개츠비가 생각났다. 개츠비는 아마 이적요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친구, 수영이나 하러 가자구."
리뷰좋다 ㅊ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