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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수년 전까진 난 sf를 즐겨 읽지 않았다. 뭐 지금도 많이 읽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그 때에는 쳐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책에 대한 거부감, 장르에 대한 편견 등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나는 어릴때부터 그리고 지금도 과학을 좋아하며, 과학적인 소재를 다룬 비문학들과 영상물 역시 거부감이 없었고 (이런 글에 이름이 나오면 비웃음을 살)베르베르의 소설들 역시 잘 봤다. 그냥 전통적인 sf문학을 안봤을 뿐이다.
그리고 난 디씨에서 한 만화를 보았고, '영원의 끝'이란 소설이 나왔다. 마침 도서관을 검색하니 그 책이 있었고, 호기심에 대출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이 책은, 이 작가는 내 인생에서 가장 인상깊은 경험이 되었고, 나는 sf를 읽기 시작했다.
330여 페이지의 '영원의 끝'은 기본적으로는 시간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시간 여행을 다루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과거는 바꿀 수 없으며 인과율은 이미 완성되어 시간여행으로도 바꿀 수 없다는 방식이다. 다른 방식으로는 과거는 시간여행으로 바꿀 수 있으며 따라서 시간여행은 인과율을 바꿀 수 있는 (대부분의 경우 유일한)수단이다.
어떤 경우든 간에 쉬운 일은 아닌데, 전자의 경우 바꿀 수 없음을 명확히 함과 동시에 시간여행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보여줘야하는 상충되는 일을 해야한다. 후자의 경우는 과거를 바꾼다는 행위에 대한 카타르시스는 쉽게 쟁취할 수 있으나, 인과율이 어긋나는 것을 매끄럽게 넘어가야한다. 숨기던, 속이던, 설득하던간에. 그리고 '영원의 끝'의 경우에는 후자임이 명백하다.(이건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아니다. 적어도 첫 장부터 얘기되는 내용이고.)
그리고 상당히 설득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인터스텔라'처럼 사랑같은 감정을 수단의 영역으로 끌고오거나 사용가능해 보이는 최선의 길을 시도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백투더퓨처'처럼 사진속의 자신이 흐려지는 일따윈 없으니. 아시모프의 다른 소설들이 그러하듯, '영원의 끝'은 이 인과율의 극복에 최선을 다하여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세계를 구성하려한다. 과거 개변이라는 인과율의 극복에 이보다도 구체적이고 성실하게 임한 작품은 결코 흔하지 않을 것이다. '화재감시원' 시리즈가 궁금하긴한데 시리즈가 많아서 아직 읽어보진 못했고...
하지만 이 소설이 정말로 놀라웠던 이유는 이런 시간여행의 치밀함이 전부가 아니다. 이 330여 페이지의 정말로 주제, 메세지라 할 내용은 마지막 20페이지에서 갑작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전개된다. '영원의 끝'은 마지막의 마지막에서야 그 할 말을 쉴새없이 쏟아내고 최고의 반전들을 드러낸다(솔직히 첫번째 반전은 별로 어럽지 않다). 그리고 그때에 이르면 앞에서 있었던 모든 내용들이 무엇을 위해서 있었는지 명백해진다. 지나쳐가는 수다와 인물, 감정 묘사 등이 마지막에서야 나오는 피상적이고 거대했을 주제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만들어버린다.
안타깝게도 절판이 되었고 중고는 4만원에 e북은 나올 기미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을 기회가 있다면 읽어보길 권한다. 그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빼앗지 않기 위해서 실질적인 내용은 하나도 쓰질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한 마디는 해야겠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영원'과 '무한'이라는 단어는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일거라고.
절판크리라니 아쉽네
오 재밌겠다
근처 도서관이 없고 학교도서관에 있네 학교 가면 대출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