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는 근대 일본의 지식인으로서 서양의 여러 말들을 일본말로 어떻게 옮길지 고민하고 실제로 서양을 직접 일본말로 옮기는 일종의 언어 창조자 역할을 수행했다면

이광수는 그 만들어진 언어를 답습하기만 할 뿐인 지식인이였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는거 같다.

사실 이 문제는 이광수 개인만의 문제 뿐만이 아니라 한국 근대 지식인들의 전반적인 한계이기도 한데, 일본의 후타바테이 시메이가 일본의 첫 언문일치 소설인 뜬 구름을 써낼 때 러시아어로 쓴 뒤 그것을 일본어로 옮겼다는 이야기와, 김동인이 처음 작품 활동을 시작할 때 일본어로 생각하고 한국어로 번역했다는 이야기는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결국 1920-40년대 조선이 받아들인 서양은 서양을 직접 통한것이 아닌 일본이라는 매개체를 거쳐서 받아들인 중역의 근대가 아니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