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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에 있는줄 처음 알았네. 앞으로 종종 들를께... ^^

다른 횽들 책장사진 구경하는 재미 쏠쏠하다. 난 지금은 너무 정리가 안되서 다음 기회를 노려볼께. 


사진 속 책 두권은 지난 여름 초입에 구입한 녀석들인데 이제 거의 막바지. 여름이라 독서에 가속이 붙질 않아.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는 책세상 번역이 유명한데, 이승종 박사의 아카넷 버젼이 여러모로 더 우수.(그래도 여전히 암호문같은건 함정...) 

한국에서 이 정도의 번역서만 꾸준히 나와줘도 학자라는 일군의 집단이 명맥을 잇고 도서업계가 죽지는 않겠구나, 싶은 책. 

후기 비트겐슈타인을 경유해 20세기의 철학을 들여다보기 위해선 꼭 경유해야하는 책인것 같아. '루비'형님 책은 조금 시간을 들여 리뷰 해볼께.


박찬국 교수가 쓴 니체와 하이데거는 두 사상가에 관심있던 독자라면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야. 

하이데거는 니체를 독일정신의 계승자로 추앙하다가, 나치의 폭정이 점차 드러난 37-38년 이후로 니체를 오히려 서구 형이상학을 무너뜨리려했으나 그 자신이 그 함정에 빠져버리고 만, 넘어서야 할 구시대적 인물로 평가하는데, 코기토 총서로 번역된 니체 1,2가 바로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 이 당시에 하이데거의 위상이 컸으므로 니체에 대한 비판은 엄청난 파급력을 몰고오는데요. 하이데거가 비판하는 것과는 달리 니체가 지향했던 건 근대적인 정신의 철저화가 아니라 오히려 근대인들이 망각하고 있는 그리스,로마의 귀족적인 덕의 창조적 계승이다! 라고 보는 입장이 카를 뢰비트나 질 들뢰즈, 그리고 그 흐름을 계승하는 푸코나 데리다의 입장.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이 워낙 강렬하고 강경했던지라, 20세기의 니체 해석은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플라톤-헤겔-니체로 이어지는 서양 전통 형이상학을 부숴야 한다는 입장, 즉 근대적 사조인 계몽주의나 니체 자신이 극복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 형이상학에 갇히고 오히려 근대의 정점인 현대 기술문명을 정초한다는 비판에 꽤나 영향을 받은듯 보임. 특히 하이데거는 니체의 많은 잠언 중에 '힘에의 의지'에 천착하며 진리 자체가 힘에의 의지이고 자신의 보존과 고양을 위해 모든걸 기투해야 한다, 라는 관점이 20세기적 계몽주의와 결합하여 전체주의의 씨앗이 되었다고 비판하는데, 하이데거는 확실히 실용주의를 비롯, 사회주의나 공리주의, 철학적 인간학, 특히 맑스주의로부터 나오는 세계관 등을 상당히 싫어하고 혐오해. 하이데거의 제자인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가 실리적이고 타협적인 입장인것과는 달리 하이데거는 니체 철학 자체가 존재 이해와 진리 이해의 지배자로 작동하며 저들을 오히려 돕는다고 고수하는데, 하이데거의 위대한 점은 저러한 극단의 니체 해석이 철저하게 문헌과 사상적 고증에 입각하여 아주 세련되게 자각적으로 파괴적인 해체를 해버린다는 것. 방향과는 별개로 가다머는 하이데거의 니체 1,2는 20세기 독일철학의 분기점이라 불러야한다 말한적도 있어.


데리다는 하이데거를 아주 잘근잘근 씹어먹은 인물인데, 하이데거가 니체의 힘에의 의지Der Wille zur Macht만 지나치게 부각시키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의 비유적인 언어를 철저히 무시했다고 비난해. 데리다의 비판은 상당히 통렬한게, 니체는 생 또는 생성의 전체, 모든 존재자의 존재는 계산될 수 없고 평가될 수 없다고 말했고 더불어 모든 가치 정립과 목적 설정으로부터 벗어나 과거를 '망각하고' 현재의 순간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초인에 도달하려 했는데, 하이데거는 니체의 생의 본질적 성격이 불확실성, 창조성에 있음에도 니체를 확실성, 존립의 기반 확보, 데카르트적 진리 개념에 가둔다고 보는거지. 결국,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라는 추상적인 언명이 너무 다양하게 해석되는게 문제인데 뢰비트같은 사람은 하이데거가 기독교적 사유방식에 갇혀있기때문에 영원회귀라는 개념 자체를 고졍불변적인 존립기반의 확보로서만 해석했다고 지적함.


그런데, 박찬국은 저 양극단의 해석을 나름 종합하려고 하고 이게 한나 아렌트나 오이겐 핑크같이 하이데거 강의를 직접 들었던 이들의 입장. 텍스트에서 오는 오해와는 다르게, 하이데거와 니체는 서로 비슷한 지점에서 사유하고 비슷한 타격목표를 가졌던 철학자들이라는 입장이 아닌가?라고 가설을 던져. 내 생각엔 데리다같은 사람은 인간사의 행위, 사건, 존재 모든걸 텍스트로 환원하려고 했기에 차이를 더 보는것이고, 가다머류, 도날슨 등의 입장은 텍스트가 아니라 매 순간의 경험-해석-사건이 있다고 보는거고(즉 텍스트는 달라도 정황상 같은 맥락일 수 있다..)


확실히 초기의 하이데거, 즉 존재와 시간을 쓸 당시만 해도 칸트-니체-라이프니츠등 독일선배들을 따라 선험철학의 사유 도식을 받아들이는 입장이어서 근본적 유사성을 보려 했던거고, 후기 하이데거는 초기의 자신의 사상을 반성적으로 거슬르다보니 부득불 니체를 현대 기술문명을 철학적으로 정초한 사상가로 본건데, 박찬국은 이 지점을 파고드는거지. 이게 정당한 이해인지, 오해인지. 하이데거의 사상, 특히 후기의 숲길이나 언어로의 도상에서, 휠덜린 시의 해명 등은 일관되게 존재자들에게 성스러운 존재를 깃들게 하고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그러한 성스러운 존재를 경험하게 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는데, 니체는 분명 피로하고 병약한 현대인의 고통과 고난에도 현실을 흔쾌하게 긍정하는 그리스-로마의 귀족정신을 말하고 있거든. 니체를 볼셰비즘이나 실용주의, 맑스주의나 나치즘에서 가져다쓴게 문제인거지 니체 역시 하이데거 못지않게 근대 문명을 극복하려고 발버둥쳤던 사상가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하이데거는 분명 니체의 어느 지점에 있어 근대 주체성 철학의 극단한 면모를 본거고 위험성을 발견한거겠지. 이 대립은 하이데거-니체이지만 가다머-데리다이기도 하고 독일-프랑스이기도 하며 거칠게 확장하자면, 계몽주의 이후로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 첨단 기술문명의 진보를 받아들인 상태에서의 사회적 합의, 제도적 보완을 말하려는 하버마스 식의 (보수로 분류되는) 사회학적 입장과 작금의 시대를 계급사회, 인간소외, 인류공멸의 위기, 생태적 문제등 큰 위기로 받아들이며 적극적으로 시스템의 해체 내지는 개혁을 요구하는 신학적/철학적 입장의 대립이기도 한것같아. 물론 이러한 분류는 한국/미국 현실과는 사뭇 다른 유럽의 일군의 학자들간 논쟁이니 유럽의 문화와 상황을 기준으로 해야겠지만, 한국이 겪는 많은 문제들도 결국 유럽식 진보-보수의 틀로 차츰 범주화되는 경향을 보이는것 같다는게 내 생각이야.


니체는 과연 서구 형이상학의 완성자이며 20세기의 스탈린주의, 국가사회주의, 폭력과 야만의 시대를 태동한 씨앗인지 

아니면 그러한 시대적 경향을 반성적 성찰을 통해 경고하고 넘어서려했던 예언자였는지... 여러분은 어느쪽인지?


저자인 박찬국 교수는 이 둘 사이의 긴장을 중간에서 화해시키려고 노력하지만, 하이데거의 니체 1,2 강의록이 버젓이 살아있는 이상 저 둘을 경유하는 오늘의 독자들은 니체에 대한 하이데거의 해석에 대한 입장을 한 쪽으로 정리해야 할 수 밖엔 없는것같아. 그래야 하이데거의 많은 저작에 대한 이해와 하이데거를 비난하며 20세기에 니체를 재수용하는 프랑스 철학의 흐름을 독해하는데 수월하겠지. 박찬국 교수가 쓴 니체 '비극의 탄생과' 하이데거 '니체 1,2'를 같이 독서해도 좋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