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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상문은 광장을 안 읽었으면 그뭔씹 같은 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 점에 주의하고 읽기 바란다.
최인훈은 현실과 환상을 별개가 아닌 하나의 것으로 봤다.
예스24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은 각각이면서 하나”》
《“각각 나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각각이 없이 똘똘 뭉친 하나도 아닙니다."》
《"모든 것은 나뉘어 있으면서 동시에 합쳐져 있는 셈이지요."》
《"그랬을 때 비로소 구체적인 존재가 됩니다."》
《"마치 나에게 구체적인 삶과 추상적인 생각이 나뉘어 있지 않은 것처럼요."》
잡지 <아메리카>에서는 이러한 말도 했다.
《"현실이여 비켜서라. 환상이 지나간다. 너는 현실에 지나지 않는다."》
즉 추상적인 관념이 그의 소설세계에서는 소설 속 현실로 개입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이 작가가 쓴 환상소설 <서유기>에서는 아예 현실이 관념적 존재로 가득 차 있고, 실제로 현실에서는 나올 수 없는 인물들(이광수,이순신)도 나온다. 보통 최인훈은 자기가 쓴 관념소설(광장,회색인,화두,태풍 등)에서는 관념과 환상을 소설적 현실 속에 개입시키지는 않는다. 보통은 그렇다. 예외는 있다. 회색인의 후반부에서 주인공에게 들리는 이상한 목소리처럼.
그렇다면 광장에도 환상이 등장할까? 그렇다. 환상은 두번 등장한다.
첫 페이지,그리고 명준이 선원 김씨에게 목을 졸릴 때.
실제 묘사는 이렇다.
《그때다 또 그 눈이다. 배가 떠나고서부터 가끔 나타나는 허깨비이다. 누군가 엿보고 있다가는 명준이 휙 돌아보면 쑥 숨어버린다. 헛것인 줄 알게 되고서고 줄곳 멈추지 않는 허깨비이다. 이번에는 그 눈은 뱃간으로 들어가는 문 안쪽에서부터 이쪽을 지켜보다가 명준이 고개를 들자마자 쑥 숨어버린다.》
《눈앞은 점점 흐려온다. 안개 낀 수풀, 그 속에 빛나는 부엉이의 눈알들. 치사한 부엉이들아, 나는 너희들을 경멸한다,경멸한다.》
분명히 광장은 리얼리즘 소설에 가까운 관념소설이다. 그렇다면 왜 환상이 나와야 할까? 답은 소설의 진행과정에 있다.
주인공 명준은 타고르 호에 타 있는 망명자이다. 배 안에서 주인공은 배에 오기 전 과거를 회상한다.
선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갑판에서. (30p)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87p) 선실에서 불타는 듯한 저녁노을을 바라보며.(108p) 계단을 내려오며.(187p) 시간이 흘러갈수록 회상은 길어지며 명준은 과거로 침잠한다. 마치 유진 오닐의 희곡《밤으로의 긴 여로》에 나오는 주인공의 어머니가 기억 속에서 미화된 과거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명준은 중립국을 선택했지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던 과거로 돌아가려고 한다. 회상 장면이 차츰 길어지면서 주인공은 현실과 과거(환상)과의 구분을 힘들어하기 시작한다. 처음에 허깨비같은 눈알은 뭔지 알 수 없는 존재로 묘사되었지만(21p) 선원과 싸우고 나서는 부엉이들의 눈알이라는 구체적인 존재로(100p), (바로 뒤 장면에서는 그 존재가 첫 페이지에 묘사되었던 눈알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심지어 중립국도 주인공의 환상에 포함된다. 명준이 상상한 중립국에서는 사람마다 다르게 마련된 몸의 길,마음의 길,무리의 길이 있고,(174p) "그런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을 쓰는 일이 적고, 그 대신 똑같은 움직임을 하루 종일 되풀이만 하면 되는 일" 이 있다. 이것 역시 주인공은 남한과 북한에서 영유하지 못한 삶이다.
명준이 환상에 빠지게 된 건 "은혜"의 죽음의 영향이 크다. 은혜가 전쟁에서 죽은 이후로 명준은 상실감에 빠져 한과 북한의 삶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165p) 은혜는 급기야 환상의 형태로 명준의 자살에 영향을 끼친다. 은혜는 명준의 환상 속에서 아기 갈매기와 함께 날고 있는 어미 갈매기와 오버랩된다. 마침내 명준은 소설 마지막에서 자기를 뒤쫓아 다니던 환상의 정체가 어미 갈매기, 즉 은혜에 대한 자신의 죄책감이라는 걸 알고 자살한다.
개인적으로 소설 마지막에서 명준이 자신이 타고르 호에 타기 전을 환상으로 보는 부분이 굉장히 좋았다.
겨드랑이에 대학 신문을 끼고 다니면서 책을 모으고, 미라를 구경하고 정치를 경멸하지만 사실 관심은 많았던 명준의 옛날 모습...
마지막으로 광장이 아니라 구운몽에 나오는 거지만 읽으면서 명준이 생각났던 시, <해전>으로 감상문을 마친다.
해전
최인훈
잠수함이 가라앉으면서
붕어들은 태어난 것이다.
바닷풀 사이사이를 지나
그 무쇠배들조차 숨막혀 죽은 수압
해구(海溝)를 헤엄쳐
어항 속으로 찾아온 것이다.
바다는 그리워서 흔들리는 새파란 가슴
너를 용서하지,묶여 있는 너를
한 줄기 소낙비를 기폭처럼 날리며
도시를 폭격하는 너를
달려오렴
달려오렴
그렇지
금붕어는
도시에 보낸 너의 잠수함
그 힘찬 원양 항로
그 장대한 뱃길에서
과연 단 한 번도 사랑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수병들은 그리웠던 것이다
태양도 얼굴을 찌푸렸다
산호가지를 날리고
진주를 바순
폭뢰(爆雷)
금붕어는
오지 않고는 배기지 못했다
원무곡이 파도치는 찻집
어항 속의 금붕어는
눈알까지 발그스레하다
들어라 큰바다의 울부짖음을
보라 거포의 발작을
산기(産氣)를 느낀 암고래들이
크낙한 산실을 찾아 헤맸다
잠수함이 침몰했을 때
이등 수병은
어머니의 사진에 입을 맞췄다
그 입술에는 장수연 냄새가 났다
자식은 열아홉 살이나 먹었는데
애인이 없었다
게다가 담배질도 배우기 전
한때 그 수역(水域)은
물이랑을 파헤치면서 저 숫고래들이
암컷을 따라가던 곳
기관이 부서지고
산소 탱크가 터져
바다 밑에 내려앉은 잠수함은
가재미 늦새끼만도 못한 것
이제
만 톤급 순양함 바다의 이리는
파이프를 닦아넣는
끽연 클럽의 신사처럼
산뜻이 포신을 거두면서
진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머니 사진이 물밑에 깔렸다 해서
바다는 장수연을 피웠다고
할 수 있겠는가
싱그런 미역풀이
함기(艦旗)만 못하다는 건 아니지만
81병의 수병을
그 물 밑에 영주시켰다고 해서
우리는 위대한 이민(移民)국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늘에 치뿜는 물기둥이
쏟아져 밀린 해일
다만 금붕어는 온 것이다
철함을 질식시킨
해구의 수압을 뚫고
그리고 내 사람이여
산호보다 고운 이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그 점에 주의하고 읽기 바란다.
최인훈은 현실과 환상을 별개가 아닌 하나의 것으로 봤다.
예스24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은 각각이면서 하나”》
《“각각 나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각각이 없이 똘똘 뭉친 하나도 아닙니다."》
《"모든 것은 나뉘어 있으면서 동시에 합쳐져 있는 셈이지요."》
《"그랬을 때 비로소 구체적인 존재가 됩니다."》
《"마치 나에게 구체적인 삶과 추상적인 생각이 나뉘어 있지 않은 것처럼요."》
잡지 <아메리카>에서는 이러한 말도 했다.
《"현실이여 비켜서라. 환상이 지나간다. 너는 현실에 지나지 않는다."》
즉 추상적인 관념이 그의 소설세계에서는 소설 속 현실로 개입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이 작가가 쓴 환상소설 <서유기>에서는 아예 현실이 관념적 존재로 가득 차 있고, 실제로 현실에서는 나올 수 없는 인물들(이광수,이순신)도 나온다. 보통 최인훈은 자기가 쓴 관념소설(광장,회색인,화두,태풍 등)에서는 관념과 환상을 소설적 현실 속에 개입시키지는 않는다. 보통은 그렇다. 예외는 있다. 회색인의 후반부에서 주인공에게 들리는 이상한 목소리처럼.
그렇다면 광장에도 환상이 등장할까? 그렇다. 환상은 두번 등장한다.
첫 페이지,그리고 명준이 선원 김씨에게 목을 졸릴 때.
실제 묘사는 이렇다.
《그때다 또 그 눈이다. 배가 떠나고서부터 가끔 나타나는 허깨비이다. 누군가 엿보고 있다가는 명준이 휙 돌아보면 쑥 숨어버린다. 헛것인 줄 알게 되고서고 줄곳 멈추지 않는 허깨비이다. 이번에는 그 눈은 뱃간으로 들어가는 문 안쪽에서부터 이쪽을 지켜보다가 명준이 고개를 들자마자 쑥 숨어버린다.》
《눈앞은 점점 흐려온다. 안개 낀 수풀, 그 속에 빛나는 부엉이의 눈알들. 치사한 부엉이들아, 나는 너희들을 경멸한다,경멸한다.》
분명히 광장은 리얼리즘 소설에 가까운 관념소설이다. 그렇다면 왜 환상이 나와야 할까? 답은 소설의 진행과정에 있다.
주인공 명준은 타고르 호에 타 있는 망명자이다. 배 안에서 주인공은 배에 오기 전 과거를 회상한다.
선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갑판에서. (30p)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87p) 선실에서 불타는 듯한 저녁노을을 바라보며.(108p) 계단을 내려오며.(187p) 시간이 흘러갈수록 회상은 길어지며 명준은 과거로 침잠한다. 마치 유진 오닐의 희곡《밤으로의 긴 여로》에 나오는 주인공의 어머니가 기억 속에서 미화된 과거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명준은 중립국을 선택했지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던 과거로 돌아가려고 한다. 회상 장면이 차츰 길어지면서 주인공은 현실과 과거(환상)과의 구분을 힘들어하기 시작한다. 처음에 허깨비같은 눈알은 뭔지 알 수 없는 존재로 묘사되었지만(21p) 선원과 싸우고 나서는 부엉이들의 눈알이라는 구체적인 존재로(100p), (바로 뒤 장면에서는 그 존재가 첫 페이지에 묘사되었던 눈알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심지어 중립국도 주인공의 환상에 포함된다. 명준이 상상한 중립국에서는 사람마다 다르게 마련된 몸의 길,마음의 길,무리의 길이 있고,(174p) "그런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을 쓰는 일이 적고, 그 대신 똑같은 움직임을 하루 종일 되풀이만 하면 되는 일" 이 있다. 이것 역시 주인공은 남한과 북한에서 영유하지 못한 삶이다.
명준이 환상에 빠지게 된 건 "은혜"의 죽음의 영향이 크다. 은혜가 전쟁에서 죽은 이후로 명준은 상실감에 빠져 한과 북한의 삶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165p) 은혜는 급기야 환상의 형태로 명준의 자살에 영향을 끼친다. 은혜는 명준의 환상 속에서 아기 갈매기와 함께 날고 있는 어미 갈매기와 오버랩된다. 마침내 명준은 소설 마지막에서 자기를 뒤쫓아 다니던 환상의 정체가 어미 갈매기, 즉 은혜에 대한 자신의 죄책감이라는 걸 알고 자살한다.
개인적으로 소설 마지막에서 명준이 자신이 타고르 호에 타기 전을 환상으로 보는 부분이 굉장히 좋았다.
겨드랑이에 대학 신문을 끼고 다니면서 책을 모으고, 미라를 구경하고 정치를 경멸하지만 사실 관심은 많았던 명준의 옛날 모습...
마지막으로 광장이 아니라 구운몽에 나오는 거지만 읽으면서 명준이 생각났던 시, <해전>으로 감상문을 마친다.
해전
최인훈
잠수함이 가라앉으면서
붕어들은 태어난 것이다.
바닷풀 사이사이를 지나
그 무쇠배들조차 숨막혀 죽은 수압
해구(海溝)를 헤엄쳐
어항 속으로 찾아온 것이다.
바다는 그리워서 흔들리는 새파란 가슴
너를 용서하지,묶여 있는 너를
한 줄기 소낙비를 기폭처럼 날리며
도시를 폭격하는 너를
달려오렴
달려오렴
그렇지
금붕어는
도시에 보낸 너의 잠수함
그 힘찬 원양 항로
그 장대한 뱃길에서
과연 단 한 번도 사랑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수병들은 그리웠던 것이다
태양도 얼굴을 찌푸렸다
산호가지를 날리고
진주를 바순
폭뢰(爆雷)
금붕어는
오지 않고는 배기지 못했다
원무곡이 파도치는 찻집
어항 속의 금붕어는
눈알까지 발그스레하다
들어라 큰바다의 울부짖음을
보라 거포의 발작을
산기(産氣)를 느낀 암고래들이
크낙한 산실을 찾아 헤맸다
잠수함이 침몰했을 때
이등 수병은
어머니의 사진에 입을 맞췄다
그 입술에는 장수연 냄새가 났다
자식은 열아홉 살이나 먹었는데
애인이 없었다
게다가 담배질도 배우기 전
한때 그 수역(水域)은
물이랑을 파헤치면서 저 숫고래들이
암컷을 따라가던 곳
기관이 부서지고
산소 탱크가 터져
바다 밑에 내려앉은 잠수함은
가재미 늦새끼만도 못한 것
이제
만 톤급 순양함 바다의 이리는
파이프를 닦아넣는
끽연 클럽의 신사처럼
산뜻이 포신을 거두면서
진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머니 사진이 물밑에 깔렸다 해서
바다는 장수연을 피웠다고
할 수 있겠는가
싱그런 미역풀이
함기(艦旗)만 못하다는 건 아니지만
81병의 수병을
그 물 밑에 영주시켰다고 해서
우리는 위대한 이민(移民)국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늘에 치뿜는 물기둥이
쏟아져 밀린 해일
다만 금붕어는 온 것이다
철함을 질식시킨
해구의 수압을 뚫고
그리고 내 사람이여
산호보다 고운 이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시 좋네요. 최인훈 선생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 독자의 감상이라 더 즐겁게 읽었습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