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논문만 읽다가 간만에 하루 통째로 짬나서 다 읽었다. 오늘만 5시간 독서했고 전에 읽었던 것까지 포함하면 대략 5시간 반~6시간 정도 걸린 듯.
섬사람들은 모두 이상합니다
여긴 모두 연극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왜 가겠단 겁니까?
친구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한줄 요약
모든 것의 개연성, 뒤늦은 추리, 그리고 섬과 섬과 섬.
-
지인의 추천으로 덜컥 산 주제에 1년 만에 읽게 됐어. 우연과 우연이 겹친 공교로운 휴일 가운데 빨리 독파해야겠단 생각에 집어들었고, 결과는 profit! 아주 잘 읽었지.
사실 이거 읽기 전에 읽은 게 문제소설이랑 젊작상이었고, 그 다음으로 읽은 게 논문이라 지쳐있던 내게 아주 활기를 넣어준 소설이었고, 이거 다 읽고 나서 이게 소설이라며 눈물을 흘릴 뻔했다...... 진짜 세이시는 레전드다... 찐따같던 코스케가 맞냐? 김전일 할아버지 명성은 어디 안 간다......
옥문도의 줄거리를 간단히 말하자면 결국 한 문장으로 요약 되겠지. "섬에서 벌어지는 살인극" <- 딱 이거야. 더도 덜도 아닌 이야기. 하지만 이것만 놓고 봤을 땐 시시하기 그지없지만, 옥문도를 그렇게 가볍게 본다면 나로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왜냐면 저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될 만큼 간단하면서도 온갖 개연성이란 개연성은 다 챙기고 분위기와 재미도 알뜰살뜰하게 챙긴 추리소설은 좀처럼 보기 힘들거든! 옥문도는 명작이다 진짜.
주인공 긴다이치 코스케가 '옥문도'라는 섬에 가게 되고, 거기서 섬의 주인으로 호령하는 가문의 본가의 세 딸이 살해돼서 범인을 추리해내는 과정인데, 얼핏 보면 이 모든 게 "너무 작위적인 거 아닌가요?"라고 지적해도 될 만큼 어색하지. 하지만 옥문도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작품이 아냐. 이것들을 기가막히게 상황을 짜맞춰서 개연성을 부여했어.
시대배경은 일본이 리틀보이와 팻맨을 맞고 난 이후로, 긴다이치는 징집돼 뉴기니까지 갔다가 전역했어. 그 사이에 전우였던 가토 치마타라는 친구에게 부탁을 하나 받게 되는데, 이 친구가 열심히 싸우긴 싸우는데 죽는 걸 누구보다도 두려워했던 거지. 그렇게 2차 세계대전에도 멀쩡히 살았던 그가 돌아가는 배 안에서 죽게 되자 긴다이치에게 간곡한 부탁을 하게 되는 거지. 자기가 죽게 되면 자기의 세 여동생이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걸 긴다이치에게 막아달라고 한 거야. 이때 긴다이치는 전쟁 전에 혼징 살인사건으로 명성을 살짜콤 쌓았던 이력이 있다고 나와. 치마타는 이걸 알고 부탁한 거고.
그래서 긴다이치는 친구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치마타의 고향인 옥문도로 가게 되고, 거기에 도착하고 나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게 된 거지. 그리고 그 살인사건들의 범인을 추리해내는 거고.
줄거리를 자세히 얘기하기 싫으니 줄거리 얘기는 이쯤에서 그만두도록 하고, 우선 내가 정말 좋게 봤던 것들부터 얘기해보자. 옥문도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단연코 '분위기'라고 할 수 있어. 섬 특유의 꿉꿉함과 섬사람들이 쌓은 섬문화의 기묘함, 살인극이 일어나는 만큼의 불안함, 동시에 특이한 살인사건인 만큼 발생하는 기묘함...... 프롤로그, 1장~7장, 에필로그로 구성돼 있는 이 책의 처음부터 그 절반(4~5장까지)은 이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어.
특히 주로 서술되는 시간대가 밤이라서 밤에 대한 묘사가 유독 많은데(섬의 지형과 건물에 대한 묘사가 두 번째), 진짜 이걸 대낮에 읽어서 망정이지, 밤에 읽었다면 등줄기가 오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만큼 분위기 묘사 하나는 진짜 극강이야. 섬의 폐쇄적이고 기기괴괴한 느낌을 잘 살려냈어. 특히 주요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진짜 하나도 안 빼먹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느낌이라서 더더욱 그랬던 걸지도.
그 다음은 구성이야. 추리소설이나 스릴러소설이나 구성이 탄탄해야 되는 건 기본이지만, 옥문도는 그 중에서도 진짜 탑을 달린다고 말하고 싶어. 읽으면서 아 이렇게 전개를 빨리 나가면 뒤에 내용은 어떻게 채우지?? 싶었는데 앞에 설명했던 내용이 떡밥처럼 회수되면서 나오니까 작게 감탄했음ㅋㅋ 버리는 문장이 없다고 할 정도로 짜임새 있게 잘 나가더라.
덤으로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인데도 길다고 생각이 안 들어. 빠르게 전개한 뒤에 길게 숨 내쉬면서 푸는 형식이라 그런지, 초반엔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 걸 보여주면서, 그리고 특유의 분위기로 독자들을 휘어잡은 뒤에 4~5장부터 새로운 국면에 진입, 그런 뒤 몰아쳤던 것의 후유증을 5장부터 천천히 풀어내. 정확히는 6장부터이긴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1장부터 4장까지는 와 진짜 뒷내용이 어떻지? 하면서 보다가 5장부터는 거의 대부분이 사실 이랬다~ 이런 사람이었다~ 등등의 썰풀이 내지는 설명인데도 몰입감 조지더라. 에필로그마저 깔끔하게 끝내버려서 뒷맛이 찝찝하다거나 꿉꿉하지도 않았어.
마지막은 인물. 여기 등장인물이 생각보다 많은데, 초반에나 외우기 어렵지 중반 넘어가서는 전부 개성 있고 매력 넘쳐서 다 기억하게 되더라ㅋㅋ 어수룩해보이다가 뒤로 갈수록 탐정의 면모를 보이는 주인공 긴다이치나, 내 최애이자 귀요미인 썰쟁이 이발사 기요오미, 미치광이 요시마츠, 그런 요시마츠를 돌보는 조카 사나에, 요시마츠의 세 딸 츠키요, 유키에, 하나코, 사나에 엄마인 시오와 아빠인 기헤에, 그 외에 다케조, 료타쿠, 료넨 스님, 촌장, 의사 코안, 카츠, 우카이, 시미즈... 거의 대부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하나 같이 특이하고 매력적이야ㅋㅋ 그렇다고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건 거의 없고... 시오씨가 좀 밀프물에 나올 법한 여캐란 것 정도?
난 주인공 긴다이치가 당황하면 말 더듬는 부분이나 시미즈한테 속아서 유치장에 갇혔을 때 "형사님은 바보!"하면서 외친 게 너무 귀여웠음ㅋㅋㅋ 30대 아조씨가 그런다고 생각하니까... 물론 최고 귀요미는 기요오미임. 썰쟁이(설명충)+적당히 사리분별할 줄 앎+주인공한테 나리라고 불러줌=이 아조씨...귀엽다...?
이렇게 장점만 말했으니 슬슬 단점도 말해야겠지. 이 작품의 단점은 다름 아닌 이 작품의 가장 주된 특징이자 배경이라 볼 수 있는 '섬'이야. 섬나라 사람들의, 그 가운데서도 섬이란 고립된 공간과 그 섬사람들의 섬문화는 이해가 안 가는 게 이상할 정도로 잘 묘사해놨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공감하기 힘든 종류의 것이지. 물론 시대가 시대고, 고립된 공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뒤틀려있는지는 다양한 작품이나 들려오는 썰들로 많이 접했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들의 심정이나 생각기제를 따라갈 수 있는 건 아니니 말이지.
쉽게 요약하자면 '불편하다'는 게 요점이야. 그게 분위기 중의 하나이니 나는 크게 상관 않고 읽었지만, 이런 거 못 견디는 독붕이는 조금 유감스럽겠네.
다른 단점으로는 뒤늦은 추리와 미신...인데, 뒤늦은 추리는 이미 이걸로도 충분히 스포일러가 됐지만 난 이게 충분히 자극성 있는 스포일러라 믿고 더 얘기를 얹지 않겠지만...... 미신은 솔직히 지금 21세기 한국 현대지성인이 보기엔 웃음이 나오지ㅋㅋ 그냥 섬나라 문화 가운데서도 고립된 섬 사람들의 문화라는 점을 계속해서 상기시키지 않으면 많이 답답할 수도 있어. 그렇다고 이게 엄청 전개나 사건에 깊게 관여하는 건 아니지만, 좀 허망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 정도?
그것 말고도 그냥 작품 전체가 "아 너무 작위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데, 나는 다 읽고나서 이정도로 충분히 뒤틀려있는 섬이면 이런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야. 주인공이 옥문도 가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고. 다만 진범이 하는 짓이 좀 이게 뭐하자는 건지 싶긴 한데ㅋㅋ 그정도야 옥에 티로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해.
여하튼 결론은 앞선 독서로 인해 상대적으로 선녀처럼 보인 건 부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게 결코 빛이 바래질 정도는 아냐. 충분히 재밌고, 짜임새 있고, 매력적이야. 일본 추리소설을 그렇게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세계대전 이후 출간된 추리소설이 이렇게까지 재밌을 줄이야ㅋㅋㅋ 김전일 할아버지 명성은 짭이 아니었어......
메모해둬야겠군
일본 특유의 꿉꿉함과 찝찝함을 잘 살려냈다고 생각함. 이거 면역 있음 ㄱㄱ
세이시는 6,7권씩 읽으면 뭔가 질림.
세이시 책을 여러권 안 읽었지만 이런 식으로 6 ,7권씩 되면 솔직히 난 3권째부터 질릴 듯
오 뭔가 흥미로운 설정이다. 나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도 되게 재밌게 봤거든. 만회는 피안도? 암튼 나중에 한번 도서관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좋아하면 진짜 재밌게 읽을 수 있을 듯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