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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5.0 점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
[ 소개 ]
부제로 '60년대 이야기'라는 문장이 붙은 것처럼 이 소설의 배경은 60년대 프랑스입니다. 소설의 내용은 60년대 프랑스에서 살아가던 실비와 제롬이라는 두 인물에 관한 것입니다. 작품은 시대상을 잘 포착해냈으며 해설에 따르자면 사회학적 보고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게 묘사했습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을 단순히 시대상을 잘 그려낸 작품으로 보는 것은 단편적인 감상이라 생각합니다. 필자는 작품에서 보여준 물질의 소유와 노동 그리고 행복에 대한 사유는 오늘날까지 유효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주인공은 제롬과 실비라는 두 사회초년생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나오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갈등과 인물에 대한 묘사도 배제되어 있습니다. 이는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소비한 것들을 열거하는 대목에서 두드러지는데. 독자들로 하여금 어떠한 정념이 피어오를 화려한 수식어나 단어보다는 짦막하고 간결한 설명이 주를 이룹니다. 때문에 필자는 이 소설을 영화와 같이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작품이 아니라 사진관의 액자에 걸린 그림들이라 느꼈습니다.
그리고 짧은 소설이지만, 읽는데 의외로 시간이 걸렸습니다.
[ 노동은 족쇄, 소비는 자유 ]
자본주의 체제에서 소비와 노동은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 중 두 가지입니다. 하지만 이 두 요소는 사람들마다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다각적인 시선으로 받아들여지죠. 노동과 소비가 사회를 움직이는 활력으로 보거나, 혹은 언젠가 탈피해야 하는 천박한 것으로 보기도 하죠. 하지만 필자는 두 단어가 가진 다면적인 의미를 제쳐두고 작품에서 읽을 것을 바탕으로 60년대 프랑스의 노동, 소비를 풀어보려 합니다.
<노동은 족쇄입니다>
작중 주인공인 실비와 제롬은 대학교를 관두고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자신들이 소유하고 싶은 것을 사고, 문화생활을 즐기는데 돈을 씁니다. 이들은 훗날 다른 사람들보다 별로 좋지 않은 직업을 가질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음에도 이러한 선택을 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는 자유시간, 소비생활을 위해서입니다.
일을 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시간을 소비하여 돈을 버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돈을 이용해 원하는 것을 얻는데. 잘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이 그렇게 일을 해서 번 돈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얻는 쪽으로 소비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시간을 써서 돈을 얻었지만 정작 일을 하느라,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생활을 못합니다.
직장인이 되어 돈이 생겨도 취미를 즐기지 못하는 일은 허다합니다. 일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여행을 못 가거나, 사놓은 책을 못 읽는 경우가 아마 이런 경우겠죠. 그리고 작중 실비와 제롬이 싫어하는 상황 또한 이런 부분일테고요. 때문에 노동은 우리를 매어놓은 족쇄입니다.
<소비는 자유입니다>
실비와 제롬은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자신들이 버는 돈과 형편에 따라 소비생활을 이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자유와 욕구의 충족 또한 느끼죠. 한편으론 가지고 싶은 것이 있어도 사회초년생인 그들에겐 그것을 소비할 돈이 없었기에 욕구를 채우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불만족스러워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언가를 소비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자유가 주어졌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돈이란 단순한 화폐가 아닙니다. 그것은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하나의 기회비용입니다. 그리고 그 기회비용의 크기에 따라 사람들은 자유를 얻습니다. 이렇게 볼까요?
당장, 영국으로 여행을 가고 싶지만 집안이 풍족한 집안의 A는 거리낌없이 갈 수 있겠지만 남몰래 그런 여행을 동경하는 B는 대학등록금을 벌기 위해 따로 빠듯하게 일을 해야 합니다. 의식주 가릴 것 없이 개인이 소비할 수 있는 범위(아마도 가지고 있는 자본의 크기) 그 사람의 자유도와 동치될 겁니다.
<족쇄의 해방, 자유의 박탈>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마치 젊은 시절의 치기인양 실비와 제롬은 선택을 번복합니다.
실비와 제롬의 친구들은 점차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하고 사회에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소모당하지 않고 싶어했기에 프랑스의 파리를 떠나, 튀니지의 스팍스라는 마을로 갑니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스팍스를 '우울한 거리', '무의 상태'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화려한 파리에서 소비를 경험했으니, 당연한 감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젊음의 끝에서 다시 파리로 돌아옵니다. 자본주의 위에서 세워진 도시를 한 번 경험한 이들에게 노동의 족쇄로부터 해방된 것보다 소비의 자유를 박탈당한 것이 더 크게 다가왔을 겁니다. 결국 이들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다시 일자리를 소개받습니다.
가끔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혹은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인지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필자는 이 작품이 그런 질문을 두 남녀를 통해서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책은 60년도 프랑스를 그려냈지만, 오늘날의 한국에도 유효한 사유거리를 던져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페렉 작품 중 그나마 정상적인 작품인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