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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읽는 데에 장장 한 달 하고도 반이 걸린 듯한 두터운 책 '코스모스'. 우주에 관한 책의 대명사 격이 되지 않았나 싶다. '코스모스'가 집필된 지 4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꾸준히 읽히고 있는 이유는 아마 이 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1980년대에서부터 2020년에 이르기까지 퇴색되지 않고 그대로 유효하기 때문이 아닐까.
7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바는 단 하나, 우주와 인간은 합일된 존재라는 것이다. 뜬금없이 무슨 말인가 싶지만 정말 이것이다. 13장으로 구성되어 다채롭고 감명 깊으며 흥미로운 주제들을 전개해 나가지만, 중심 내용은 결국 단 한 문장이다.
""우주와 인간은 하나이다."
위 문장만 읽고 '뭐야, 저런 건 나도 주장할 수
있겠다. 코스모스 다 읽었네'라고 생각하지는 말길 바란다. 전반적 내용을 구구절절 글로 풀어나가고자 방금 잠시 시도해보았으나, 칼
세이건이 온갖 천문학적 지식과 미려한 필체를 사용해 700쪽으로 설득하고자 한 바를 블로그 상으로 충분히
전달하기엔 내 능력으로는 역부족임을 깨달았다. 대신 책을 읽으며 중간중간 정리해 둔 메모만 남기고자
한다.
코스모스는 우주라는 개념에 질서라는 의미를 더한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믿을 수 없을 만치 정교한 생명의 악보도 우주의 질서 중 하나이다. 저 머나먼 외계에는 지구와는 다른 성부가 적용될지도 모르지만, 그 또한 우주의 푸가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40억년 동안 계속돼 온 지구의 생명과 그 진화. 분자 단위, 세포 단위, 개체 단위가 서로 삶을 유지하고 또 진화하는 데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심지어 아주 먼 거리로부터 오는 햇빛마저도 돌연변이의 요인이 된다. 이 모든 공생과 묘책의 치밀함에, 나는 2막을 읽으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인류는 40억 년 전의 분자로부터 시작해 끊임없이 진화를 계속해 온 결과 이제 지구 생명의
기원과 외계 생명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지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인류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유전형질의
복제를 수행해온 DNA 속 뉴클레오티드 조합을 스스로 조작하는 단계까지 손을 뻗고 있다.
인간을 포함해 지구의 모든 생명은 각각의 설계도에 의해 딱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진화와 퇴화, 멸종을 계속해왔다. '무엇'이어야 한다는 건 없다.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류는 자기 자신마저 인위적으로 '진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바람직한 특성을 인간에게 부여하기 위해서
뉴클레오티드를 우리 마음대로 조합할 수도 있을 것이다(p. 91)." 이 문장을 읽고 나는 '머지않은 미래가 아니라 먼 미래 같은데'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밑의 옮긴이 주석을 보고 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것은 이제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니다. 이미 하나의 현실로서 우리에게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DNA 지문
검사가 1980년대 중반부터 과학 수사에 정례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했고,
1997년에는 복제양이 태어났으며, 2000년에는 인간 유전자 지도의 초안이 완성됐다. - 옮긴이"
처음에는 이 책이 단지 천문학 관련 내용만 기술하고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이건 단순한
우주에 관한 책이 아니었다. 바로 제목에서부터 나와있듯이, 이건 '코스모스' 즉 우주의 '원리'에 관한 책이다. 별뿐만 아니라 생명 또한 우주의 일부인 것이다.
이 원리를 독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인류, 우주, 문화, 과학, 역사, 사상, 이 모든 주제들을 전혀 어색하지 않게 한데 아우른 책 '코스모스'는 분명 칼 세이건이 짜낸 아름다운 융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류가 이용해온 도구 중 가장 유용한 것은 다름아닌 '과학하기'이다. 과학이 아니라 과학하기라고 구태여 쓴 이유는, 과학하기는 '과학적' 사고로서 비단 과학만이 아닌 전 분야에서 두루두루 쓰일 수 있기 때문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과학하기의 필수 규칙인 동시에 최대 장점은 무엇일까?
1. 신성불가침의 절대 진리는 없다. 가정이란 가정은 모조리 철저하게 검증되어야 한다. 과학하기에서 권위에 근거한 주장은 설 자리가 없다.
2. 1을 기반으로 하여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주장은 무조건 버리거나 일치하도록 수정되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코스모스를 우리가 원하는 코스모스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점은, 과학하기의 방식은 오직 '과학'에만 머무르지 말고 정치, 경제, 종교에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오니아에서 출발해 톨레미 왕국의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으로 이어진 과학이
왜 중세 즉 '암흑시대'의 도래를 막지 못한 것일까?
과학하기가 과학에만 적용되었음을 칼 세이건은 이유로 든다. 예를 들어, 그 당시 과학자들은 별의 영구불변성은 의심했지만 노예 제도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p.665) 이는 현대에도 해당된다. 역대 가장 문명과 지성을 꽃피우고
있는 시대라고 스스로 도취되어 현재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의 측면에서 더 개선할 점, 고쳐야할 점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중세의 봉건제도 및 수구적 교회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당시 과학이 일반 대중에게 전혀 미치지 못했음을 다른 이유로 들 수 있겠다. 새로운 발견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고, 거의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았으며, 기득권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급급할 뿐 대중의 복지에는 무관심했다. 결국 지적 발전의 정체, 비관주의의 확산, 신비주의에의 비참한 굴복 등에 대항할 수 있었던
그 어떠한 기제도 존재하지 않았다.
히파티아(360-415).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의 마지막 관장. 그녀가 폭도들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당함과 동시에 암흑시대의 문이 열렸다.
그런 연유로 하여, 가장 좋아하는 과학자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이젠 '요하네스 케플러'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고등학교 과학 시간에 배운 케플러 법칙이 유명하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다.
우선 신념에 대한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케플러는 자기 자신을
기만하지 않았다. 가톨릭을 받아들이기보다 차라리 추방을 택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위선을 행하라고 배운 적이 없다. 나의 신앙은 진지한
것이다. 나의 신앙이 농락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그러는 한편 과학자로서는 신의 법칙-이라고 당시에 여겨진 것-과
객관적 관측 결과를 철저히 구분할 줄 알았다. 코페르니쿠스 이후로 교회로부터 터부시 된 지동설을 주장했고, 행성의 궤도는 신적이며 완벽한 '원'이 아닌 찌그러진 타원이라는 전제로 케플러 법칙을 도출해냈다. 플라톤의
정다면체로부터 '코스모스의 신비'를 찾아냈다고 뛸듯이 기뻐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자 주저하지 않고 그 가설을 폐기할 줄 알았다.
과학을 대중화하고자 한 그의 노력도 인상 깊었다. 그의 바로 전 세대 과학자인 튀코 브라헤는
현세의 권력자와 교회의 권위자들만이 지식을 향유할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케플러는 학교에서 천문학을
강의했고, 자신의 돈을 들여가며 책을 출판해 과학을 대중에게 널리 전파하고자 했으며, 최초의 공상과학소설 '솜니움(꿈)'을 저술했다. 그 소설을 통해 케플러는 지구의 자전이 가능한 일이고
멋있으며 이해할 수 있는 현상임을 알리려고 애썼다. (p.148) "다수가 그른 길을 걷지
않는 한, 나 역시 다수의 편에 서고 싶다. 그 까닭에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이들에게 과학을 설명해주려고 무진 애를 쓰는 바이다."
이런 케플러지만, 정작 주변 사람들은 그를 힘들게 했다. 튀코
브라헤 곁에 있던 아첨꾼들과 식객들의 괴롭힘, 돈을 많이 못 버는 남편을 향한 아내의 경멸, 나라가 행한 추방과 전쟁 등으로 케플러는 우울해했다. 상처를 가진
반항적 성격의 위대한 천재라니 무슨 만화 속 주인공 같다. (실제로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연구에 몰두해 깜빡하고 아내를 꾸짖으면 아내가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며, 차라리 그의 손가락을 깨물며 참는 게 낫다고 여기는 스윗한 성격을 겸비하기까지 했다.
케플러의 소개가 끝난 뒤 뉴턴 역시 나온다. 그렇지만 무시무시한 천재이지만 괴팍한 뉴턴보다는, 인간적 면모가 있는 케플러가 좀 더 끌린다. 케플러를 언급하며 할애한
지면이 훨씬 많은 것으로 보아, 내 생각에 칼 세이건 또한 케플러를 더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다. 뜻하지 않게 모범으로 삼을 만한 위인을 알게 되어 기쁘다.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
우주의 광대함 그리고 그에 비한 인류, 지구, 태양, 심지어 은하의 보잘 것 없음. 그러나 동시에 그 티끌 같은 인류의
위대한 지적 호기심. 인간 역사는 코스모스에서 태어나 코스모스를 거슬러 추적하고 또 해석하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이다.
몇 년 전 이 책을 보고는 두께에 질겁하며 다시 내려놓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코로나
사태 동안 나와 함께 해준 책으로 기억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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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카스는 또 뭐야?
아 검색해보니까 알겠네 너는 무슨 그런 말을 써?
ㅅㅂ ㅋㅋㅋㅋㅋㅋ 게이야
ㅋㅋㅋㅋㅋ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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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러요... 정의란 무엇인가 읽을 거애오
코스모스 2편은 어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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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확대된다는 걸 쪼끔이나마 체험할 수 있어용
코스모스는 닐 아재의 다큐로 보자
사람들도 전부 다큐 추천하더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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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듯따리
굿굿
질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