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형 하루키와 그 밑의 보급형 하루키로 둘러싸인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서점에는 하루키가 아니지만 하루키인 수많은 소설들이 우리를 응시하며 비웃고 있지 않을까? 독자들은 "아, 라노벨 살 바에 럭키 라노벨 하루키나 사봐야지."하며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대형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그들 간의 모종의 관계에 우리는 둘러싸인 것이 아닐까? 마침내 집에 도착한 대형의 책은 하나의 텔레스크린이 되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책을 건드릴 때 미세한 전류를 가해 라노벨을 구매하도록 자극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된다면 보급형 하루키의 판매량은 일정량 유지될 것이고 그네들은 이를 대형의 은덕으로 돌릴 것이다. 결국 이러한 윈-윈 관계는 우리를 하루키 월드에 휩싸이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는 것이 아닐까? 즉, 하루키 월드는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 1984의 결합이 아닐까? 생각해보자, 하루키의 작품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여기서 전자는 멋진 신세계,  후자는 1984의 상징일 것이라는 섬뜩한 사고가 뇌리를 스쳐간다. 어떤 초고도의 심층적 전략이 그들의 손 안에 있을지 모르지만, 이는 지금 글을 쓰는 나 자신이 하루키 월드에서 해낼 수 있는 최대한의 분석이자 예언이다. 나는 언제 잡혀가 세뇌당할지도 모르는 불안을 안고 방 안에 칩거하고자 한다. 문은 단단히 잠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