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제 대망의 러시아 F4의 마지막 일원이자 그나마 '럭키'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1890년 모스크바에서 부유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화가이자 모스크바 대학 예술학부 교수였고, 이러한 예술적인 배경은 파스테르나크가 작가로 성장해나가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물론 혈통적인 의미만이 아니었다.
화가인 만큼 톨스토이의 <부활> 등의 삽화 작업을 하는 아버지 덕분에 문학과도 친숙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파스테르나크의 아버지는 당대 여러 예술가들과 교류를 하였는데, 여기엔 라흐마니노프나 스크리야빈 같은 음악가부터 릴케 같은 독일 모더니즘 시의 최대 스타 등 다양했다.
이러한 어릴 적부터의 접점으로 파스테르나크는 머리가 크고 나서도 릴케와 교류를 하지만, 일단 접어두고,
어렸던 파스테르나크에게 무엇보다도 큰 영향을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이었다.
특히 스크리야빈에게 직접 음악을 배우며 파스테르나크는 한때 음악가의 길을 꿈꾼다.
스크리야빈의 반응이나 주변 반응을 볼 때 음악적 재능도 있었고, 음악가로 나가도 충분히 될 만했지만, 본인이 워낙에 소심했던 까닭에 결국 포기하게 된다.
아무튼 음악의 길을 접었지만, 그는 역시 '음악'과 빼놓을 수 없는 시의 길로 들어가게 된다.
혼란스런 제정 러시아 말기-소비에트 초기엔 이미 이 시리즈에서도 다루었지만, 러시아 f4를 비롯한 다양한 천재 시인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특히, 파스테르나크가 교류하면서 큰 영향을 받은 것은 그의 문학적 선배인 마야코프스키였다.
이러한 파스테르나크가 문학적 선배들에게 느낀 감정은 그의 산문 <안전통행> 등에서도 잘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파스테르나크는 젊지만 혁신적인 러시아의 시인이었다.
오늘날까지도 대표작으로 뽑히는 1922년에 출간한 <삶은 나의 누이>는 복잡한 상징이나 기법 등으로 당시 문단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아흐마토바나 만델스탐, 츠베타예바 등의 시인들에게도 영향을 주기도 한다.
<나는 이 시들을 유리 및 태양과 반씩 나누어
인도에서 잘게 빻으리,
겨울에는 이 시들을 천장에 펼쳐
습기 찬 구석들이 읽을 수 있게 하리.
(중략)
내가 바이런과 담배를 피우고
에드거 앨런 포와 술 마시고 있는 사이
누가 내 집 문간으로, 싸라기눈이 흩어져 있는
매우 외진 곳으로 오솔길을 밟아 다져 만들어 옪았지?>
- 이 시들에 관해 (지만지)
<삶은 나의 누이고 오늘 넘쳐흘러
봄비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부딪치며 산산이 부서졌네.>
- 삶은 나의 누이
산문도 간간히 쓰긴 했지만, 사실 파스테르나크의 본업은 시였고, 러시아를 비롯한 독일 등의 유럽에서도 촉망받는 러시아 시인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제 스탈린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우선, 만델스탐이 <스탈린 에피그램>을 낭독한 후, 숙청되었다.
이는 문단에서 활동하는 다른 시인들에 대한 명단으로 이어졌다.
"파스테르나크 동무, 어서 오시오. 마침 내 노트에 빈 칸이 있는데, 어찌 생각하우?"
파스테르나크의 회고에 따르면, 어느 날 스탈린은 그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슬슬 만델스탐에 대해 운을 띄웠다.
파스테르나크 본인으로선 말 그대로 킬각을 맞이한 상황이었다.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도 결정될 예정이었다.
어쩌면 무슨 대답을 하든 이미 소용없을지도 몰랐다.
"두뇌...풀가동...!"
만델스탐 주제를 피하기 위해 파스테르나크는 되는대로 외쳤다고 한다.
"그런 것보다 스탈린 동무! 나는 동무와 함께 삶과 죽음에 대해 논하고 싶소!"
"....................."
기묘한 침묵이 흘렀다.
그 후의 대화는 사실 무의미하다.
스탈린은 건성으로 파스테르나크와 이야기한 후, 그의 숙청 노트에서 파스테르나크의 이름을 손수 지웠다.
'구름 위에서 뛰노는 자'란 평과 함께.
한 마디로 무해한 또라이란 평가였다.
물론 스탈린이 왜 파스테르나크를 살려주었는지에 대해선 여러 의견들이 있긴 하다.
이와 별개로, 파스테르나크 본인이 조지아 문인들과 친했고, 조지아 시인 선집을 직접 러시아어로 소개 번역한 것에 대한 접점으로 스탈린이 그에게 호감을 가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치 불가코프를 살려주었던 것처럼.
"그런데 왜 우리 조지아 시인들은 죽였어?"
"어찌되었든 너희의 시들은 살아남았지 않느냐. 그냥 자연재해라고 생각해라."
"대관절 뭔 조같은..!"
아무튼 파스테르나크는 러시아 F4 중 비교적 럭키한 삶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러하듯 그도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괴테 등을 번역하며 세월을 보내었지만
굴라그에서 비명횡사한 만델스탐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츠베타예바, 혹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굴라그 면회 등을 하며 강제 침묵당한 아흐마토바에 비하면 평온했다.
이러한 이유 덕분에 사실 훗날 아흐마토바는 파스테르나크가 마치 '고난받은 작가'의 대표자처럼 서구에서 다루어지는 것에 불만을 품기도 하였다.
아무튼 간에, 럭키한 파스테르나크는 2차 대전도 무사히 넘기고, 스탈린의 죽음까지 무사히 넘긴다.
"스탈린이 살려주었다고 그게 계속될 것 같나?"
흐루시쵸프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파스테르나크는 남몰래 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러시아 혁명과 인텔리겐차에 대한, 어느 정도 자전적인 면모가 있는 소설을.
오늘날 <닥터 지바고>로 알려진 이 소설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탈린의 시대를 살아남은 파스테르나크에게 막타를 끼얹는 소설이 되고 만다.
러시아 혁명에서부터 2차대전까지, 유리 지바고의 삶을 다루는 이 러시아 전통 대하소설은, 그러면서도 동시에 '시인으로서 파스테르나크'의 면모까지 함께 갖춘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시인으로서 파스테르나크를 더 높게 취급하는 이들도 만만치 않게 있지만.
소비에트를 다소 냉담하게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원고가 소비에트 출판사에서 거절되는 것은 당연해보였다.
어느 정도 소비에트에 대한 환멸이 담겨져있고, 비판적으로 충분히 보일만한 소설이었으니까.
그런데!
파스테르나크의 원고가 이탈리아로 밀수된다. 이탈리아 출판업자가 원고를 거절당한 파스테르나크에게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이탈리아어로 비밀리에 번역되어, 1957년 이탈리아에서 출간되고 만다. 물론 이 과정 자체에 파스테르나크 본인이 전혀 몰랐거나 개입이 안 된 것은 아니었으나, 더 큰 손이 이 모든 과정의 뒷편에 있었다.
피터 핀 등이 2015년에 출간한 <지바고 사건>에서도 본격적으로 다루지만,
이러한 거대한 일엔 미국이 개입하고 있었다.
우선 파스테르나크 본인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시인이었으므로 45년 이후부터 줄곧 노벨상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 후보가 때마침, 소비에트에게 비판적으로 보이는 잘 쓴 대하 소설까지 출판한다면?
CIA의 작전은 성공했다.
<닥터 지바고>는 서구에서 날개돋힌 듯 팔리기 시작했고, 바로 이듬해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마침내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호명하였다.
파스테르나크 본인도 처음엔 환영했다.
솔직히 노벨상 준다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상황이 그에게 안 좋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에엑따!"
"파.괘.한.다."
스탈린의 애완견이자 소련 정부에서 대놓고 밀어주는 소비에트 프로파간다 특화 작가 숄로호프.
원래 소련 당국은 줄곧 숄로호프를 내심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밀어주고 있었다.
이미 이반 부닌이 1933년 러시아인으론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으나,
부닌은 소비에트를 싫어하여 떠난 망명객이었으니 소련 당국 입장에선 숄로호프의 수상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ㅅㅂ"
결국 울며겨자먹기로, 러시아에서 쫓겨나는 것도 싫고, 러시아에서 죽는 것도 싫은 파스테르나크는 빌 수밖에 없었고
끝내 노벨상 수상 포기를 선언한다.
여담으로
시인으로서 파스테르나크는 모더니스트였고, 나보코프 같은 이도 그의 초기 시들은 높게 평가하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닥터 지바고>를 누구보다도 냉혹하게 깐 것도 나보코프였다.
특히, 그의 <롤리타>가 1958년 미국에 정식으로 출간되었을 때 <닥터 지바고>도 출간되었고, 같은 베스트셀러 라인에 있다는 것 자체를 진저리나게 싫어했다.
사실 <닥터 지바고> 자체가 파스테르나크의 시들과 달리 좀 올드한 스타일에 나보코프가 증오하는 러시아식 낭만적인 이야기에다가 나보코프가 보기엔 오히려 닥터 지바고가 볼셰비키 혁명 등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물론 노벨상 받은 것도 어느 정도 한몫하지...않았을까? 나보코프...혹시 너...질투----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소련 당국에게 밉보인 파스테르나크는 남은 생애 2년 동안 뒤죽은 듯이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희곡 <눈먼 미녀> 같은 미완성품을 남긴 채.
스탈린을 피하여 럭키 F4가 될 것만 같았지만, 결국 소련과 미국의 싸움에서 언럭키 시인이자 작가가 된 파스테르나크였다.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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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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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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