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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시오랑은 독설의 팡세의 한 페이지에 이런 글귀를 썼습니다.

< 맥베스는 범죄의 금욕주의자, 단도를 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이다. >

맥베스를 읽기 전에는 무슨 뜻인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았으나, 읽어보고나니 대강 이해가 됐습니다.

맥베스를 금욕주의자라고 했는데 실제로 금욕적인 사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쉼표 뒤에 따라오는 문장의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의 정수라 불리는 명상록을 쓴 오현제 중 한 명입니다. 때문에 앞에서 쓴 금욕주의 = 스토아주의를 뜻하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왜 맥베스를 스토아주의를 써서 빗댄 것일까?

이에 대한 풀이는 맥베스의 행적과 스토아에서 바라본 자연, 우주, 질서에 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맥베스는 마녀들의 예언을 듣고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녀들의 예언이 현실에서도 일어나자, 그는 점차 확신을 가지고 왕위를 뺏게 되죠.

하지만 그는 마지막에 가서 왕위를 다시 빼앗기고, 목숨을 잃고 비극적으로 죽게 됩니다. 
이러한 맥베스의 행적을 스토아주의로 엮으면 썩 흥미로워집니다. 스토아 철학에선 어떠한 문제 혹은 현상에 대해서 인간이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여기서 '바꿀 수 있는 것'에는 선택의 자유를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자연에 따라 받아들일 것을 설파합니다.

맥베스는 예언을 듣고 왕이란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바뀐 왕이 자신이고요. 극이 진행되며 예언과 운명에 대한 확신을 얻은 그는 행동으로 옮기죠.

결과적으로 맥베스는 왕위 찬탈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배신과 살인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망가져갔고, 후에는 살해당하여 왕위를 빼앗기게 됩니다.

맥베스는 운명에 대한 확신이 파멸로 이어진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했다는 것에서 나온 것이죠. 하지만 앞서 쓴 그러한 판단이 곧 주인공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단도를 든 아우렐리우스, 라는 말의 뜻은 판단을 통해 확신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위험해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뜻하는 것이고 맥베스는 이러한 부분을 조명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