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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벌


라스꼴리니코프라는 흙수저 대학생이 지 뇌피셜 검증한답시고 전당포 노파랑 라지베따를 죽인 다음


자기 생각이란게 자위하다 나온 정액이었음을 어떻게든 부정하려다 참교육 당하는 내용이다.


이 참교육 당하는 과정에 주정뱅이 노숙자랑 그의 딸 소냐, 자기 어머니, 동생, 라주미힌 등등 여러 인물이 나오는데


요 인간군상들에 대한 편집증적일정도로 세밀한 묘사가 료쟈에 대한 참교육을 정신나간 멍청이를 단죄하는 사이다패스가 아닌


극도의 가난, 자기멸시, 자존심, 결벽주의에 찌든 인간이 처절하게 몰락을 피해 몸부림치는 과정으로 만들어준다.


그러니까 필력이 쩐다는 거다.



난 군머에서 죄와 벌을 읽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난 재수해서 대학을 갔다. 나름 좋은 대학에 갔다. 재수생까지의 나는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다. 


5개의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골라내는 일을 나름 잘 해냈던 나는, 이것만이 전부이며 나머지는 모두 쓰잘데기 없는 헛짓거리라 생각했었다


물론 대학에서 선택지 고르는 능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고


나는 지금까지 내가 경시해왔던 모든 능력들을 요구받는 모든 순간이 고통과 당혹의 순간이었다


거기에 다른 사람들의 성과를 보며, 내가 어줍잖은 능력으로 쥐어짜낸 결과물이 매우 하찮고 수준낮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채로 혼자서 끙끙대다 군대로 도망쳤다


아주 우연히도 나는 헌병이 되었다, 내 근무는 영창 근무였다


당신은 영창에 들어와 본 적 있는가? 칠이 벗겨져 군데군데 회색 콘크리트가 드러나는, 그래서 어둑어둑한 색조의 백색으로 가득찬


햇빛이라곤 하나도 들어오지 않고 어디를 보아도 철창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공간


시간이 멈춰버린 수용자들의 한숨, 경계근무자의 권태, 재판을 앞둔 자의 불안함이 섞인 공간을 본 적 있는가?


나는 나에 대한 지독한 멸시와 혐오를 가득 담은 채로, 영창근무를 서며 죄와 벌을 읽었다.



나는 그 순간 나이면서 라스꼴리니코프였다. 그가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느낀 자기모멸감은


내가 내 능력에 비해 과분한 기대를 받으며 내 부모를 깎아먹는다는 생각과 같았다. 최소한 죄와 벌을 읽는 그 순간만큼은 그랬다.


로쟈가 돈을 위해서도 무엇을 위해서도 아닌, 자신이 나폴레옹인지를 증명키 위해 노파를 죽였다고 고백할 때


그 생각이 얼마나 멍청하면서도 처절했을지를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의 시간이 죽어버린 공간에서, 나로부터 도망친 나는 죄와 벌을 읽었다


죄와 벌은 책보다는 변기에 가까웠다. 나는 나를 로쟈에 쏟아부으면서 읽었다. 그 순간만큼은 로쟈는 나 그 자체였다.



난 살면서 '살면서 가장 감명깊에 읽은 책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그딴거 없어 병신아' 이상의 답변이 있을 수 있음을


그러한 답변을 가능케 하는 경험이 존재함을 죄와 벌을 통해 알게 되었다.


책이라는게 시발 읽어서 어따 써먹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사실 죄와 벌이 뭘 말하고자 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은 배웠다.



혹시 죄와 벌 읽어보셨습니까? 정말 띵작입니다.


도끼, 그는 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