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테바이의 오이디푸스 왕이 일생 동안 겪은 비극이 그의 타고난 운명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 혹은 그의 자유의지로 인해 촉발된 일인지, 그리고 그의 하마르티아(hamartia)에 대한 논쟁은 지금까지도 상당한 사상적 의의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 논쟁은 현대 철학의 결정론 논쟁과, 신학의 고질적인 논의인 운명론/예정론과 자유의지 논쟁의 시초가 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이디푸스 왕가의 이야기를 비극으로 꾸민 소포클레스라는 인물의 비범함을 여기서 알 수 있다. 대사상가이자 성인인 소크라테스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고대 그리스의 가장 위대한 극작가이자 문호로 꼽히는 그는 비극 오이디푸스 속 인물들의 목소리를 통해 인물의 인생에 대한 수많은 논의 주제와 교훈을, 당시 사회의 분위기에서봐도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단지 이 비극을 인생론의 관점에서, 특히 고대 왕실의 가정사를 다루는 미시사적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이는 오이디푸스를 한낱 치정극이나 드라마 한 편으로 바라보는 편파성을 가지게 된다. 서양 사상의 큰 줄기를 잇는 위대한 지식인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 조차도 오이디푸스를 극찬하며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의 세기에까지 오이디푸스와 비극의 귀감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오이디푸스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상당히 컸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 입장에서도, 비극 오이디푸스와 인물 오이디푸스 왕을 좀 더 비극 오이디푸스가 쓰여진 시대적 배경에 맞게 해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리포트 주제로 제시된 자유의지와 운명에 대한 논의와 오이디푸스 왕의 하마르티아에 대한 논의 역시 이러한 시각에서 맞춰 본다면 좋을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쓰여졌던 당대 그리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그리고 테바이를 중심으로,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 등 내외의 큰 전쟁이 벌어졌던 시기이다. 동시에, 아낙사고라스, 소크라테스, 프로타고라스 등의 소피스트와 사상가, 철학자들이 많은 활동을 벌였던 시기이다. 당시 오이디푸스를 썼던 소포클레스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귀한 대접을 받고 자랐던 고대 그리스의 시민이었다. 그는 프로페셔널한 문학인으로 인정받았고, 전 그리스 비극 경연대회에서 2등을 할 정도로 뛰어난 작품들을 130편이나 썼다. 심지어 그는 장수하기까지 했고 시기질투보다도 선망과 존경을 더 많이 받은, 지금으로 치면 요샛말로 넘을 수 없는 벽같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오이디푸스 왕을 비극의 주제로 삼은 것은,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고, 신화 속 주제를 고르다보니 어쩔 수 없이 택한 것도 있었겠지만, 엄밀히 말해 당대 그리스 상류 시민사회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던 개인주의적, 상대주의적, 과학주의적인 사상의 조류을 풍자하고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아직 젊었던 소크라테스가 군 복무 중이어서 실질적으로 활동하기 이전이었던 당시에 수많은 소피스트들, 특히 프로타고라스 학파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부르며 모든 판단과 선택은 인간 개인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는 논리를 폈다. 그런 상황에서 소포클레스는 아무리 귀한 집안의 자손 자제들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그들이 한 나라의 왕가나 공가라고 할 지라도, 그들이 스핑크스와 같은 괴물을 무찌르는 영웅이라 할지라도, 실질적으로는 운명에 의해 휘둘리는 연약한 개인이라는 것을 모순적인 비극을 통해 알리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는 오이디푸스가 비극 초반에서 라이오스 왕을 죽이고, 스핑크스를 쫓아내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까지 해 큰 도시국가의 군주가 되는 영웅적 이야기는 일종의 주제에 반대되는 맥거핀이자 트릭에 불과하다는 뜻이며, 이후 사제가 전해준 모든 진실 앞에 절망하며 어머니이자 아내가 자살하고 자신은 눈을 뽑은 채 큰딸과 함께 그리스 곳곳에서 걸식하게 되는 이야기가 이야기의 핵심인 것이다. 결국 오이디푸스가 한 나라의 왕을 죽이고, 괴물들을 쳐부수고, 인간과 신적 존재들을 속이며 왕비의 마음을 훔쳤던 것은 일종의 교만 그리고 무지였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무력함과 그의 자유의지 너머에 이어져 있는 운명의 실줄들은 이미 극 초반부터 곳곳에 신탁과 인간의 무능한 선택들로 밝혀져 있었음을, 독자인 우리는 알 수 있다. 따라서 내 생각으로는 오이디푸스 왕의 모든 행동과 과오는 결국 운명의 장난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오는 오이디푸스 왕과 그 왕가 일원들에게는 비극이겠지만, 극 밖에서 이를 살펴보는 우리에게는 과오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단지 운명이 그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다 죽임을 맞이한 부족한 인간으로 보일 뿐이다. 결국 작가는 인간만능주의, 자유의지에 대한 맹목적 믿음의 심벌이었던 그리스의 영웅조차도 운명과 신의 뜻 앞에는 무력하다는 것을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이라 믿고 자신에 가득찬 그리스 시민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하마르티아, 즉 과녁에서 벗어난 행위인 오이디푸스의 행동들이 과연 단순한 실수/과오인지, 혹은 죄인지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나는 오이디푸스의 하마르티아에 대한 조금 독특한 결론을 내리겠다. 오이디푸스의 하마르티아는 실수이자 과오인 동시에, 그가 범한 죄악이 분명하다. 이는 이 모든게 그의 환경 탓만이 아니라, 오이디푸스의 입체적 성격과 캐릭터성에도 기인하기 때문이다. 극 중 크레온은 오이디푸스에게 예언을 전해주면서 그대가 마음대로 할 수 있었을때 ,그대는 스스로 파멸하였다라고 말하였다. 나중에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가 누구도 탓 할 수 없다라고 하였지만 이는 그 말의 무게에 비해 단지 사실상 망자나 다름없는 불우한 인간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느껴진다. 앞에서 나는 작가 소포클레스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고대 그리스 시민들의 과오를 꾸짖기 위해 비극을 지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이디푸스의 모든 행동들은 슬프게도 운명의 장난이었지만, 그런 운명의 장난으로 스스로를 이끈 것은 결국 인간적인 무지와 야망, 교만으로 가득찬 오이디푸스의 타고난 성격 탓이 컸다. 만일 오이디푸스가 신탁을 듣고 좀더 겸손한 마음과 영혼을 가지고 삶을 참회했다거나, 근신하며 신에게 오랫동안 기도를 드리는 조용한 삶을 영위했더라면, 신이 뜻을 돌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심지어 운명에 맞서는 일일지라도, 그리스 신화에서 주신 제우스의 변덕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심지어 헤브라이 신보다 훨씬 인격적이고 친근한 헬라스의 신들이라면, 충분히 그랬을 수도 있었을텐데, 오이디푸스는 그의 태생부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무도하고 교만한 성격 탓 때문에 이를 이루지 못하였다. 이는 고대 그리스 시민들과 정치가, 사상가들에게도 적용되는 비판점이라고 볼 수 있다. ,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라는 한 개인을 통해, 그리스에 퍼져 있는 개인주의, 상대주의, 영웅주의의 발현보다 운명론적 인생관과 신적 존재들에 대한 겸허함을 강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헬리니즘과 헤브라이즘 중에 소포클레스는 헤브라이적 사상에 더 가까웠다고도 볼 수 있다. 그는 공동체와 가정의 연대를 안티고네와 오이디푸스를 통해서 말하고 있고, 신적 존재에 대한 믿음과 의지, 겸허함을 코러스와 오이디푸스의 토로를 통해 자주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신의 뜻이 항상 나와 같이 있게 하여 주소서

신의 율법은 하늘 저 높은 곳에서 태어나서

언젠가는 죽어갈 우리 인간의 손에는 닿지 않는다.

그 법은 결코 망각하지 않으며 결코 잠들지 않는다.

오만은 폭군을 낳고

오만은 인간을 꼭대기로 올렸다가

가파른 파멸 속으로 추락케 하리라

정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신의 성전에서 경배하지 않으며

말이나 행동에서 오만한 자는

신이 쏘는 저주의 화살을 피하지 못하리라

라이오스에게 내려진 옛 신탁은/ 이제 희미해져 가고

인간들이 벌써 그것을 업신여기니

어느 곳에도 아폴론은/ 영광 속에서 나타나지 못하고

신에 대한 공경도 사라져가고 있으니

오 만물을 다스리시는 제우스 신이여 

그대 영원 불멸하는 권세로 옛 신탁을 밝히시옵소서

한국 가톨릭의 차동엽 신부는 비극 오이디푸스에서 자주 회자되는 하마르티아를 신약시대 헬라스의 용어로서, ‘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미학자 진중권 교수는 하마르티아를 단순한 죄로만 보지 않고, 과오가 있는 죄와 과오가 없는 죄 모두를 포괄하는 고대 용어로 이해한다. 기독교-헤브라이적 입장을 대변한다기 보단, 고대인들이 하마르티아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오이디푸스의 하마르티아는 결국 운명의 장난 탓도 있기에 실수/과오라고 볼 수도 있지만, 라이오스 왕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등의 가시적인 죄악도 분명 있기에 복합적인 하마르티아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