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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은 유대인들에 대한 유럽 기독교 사회의 박해가 심각했던 르네상스 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해당 희극에 등장하는 유대인 거상이자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은 자신의 민족성과 종교적 전통에 대한 자긍심, 그리고 자신이 타국인 베니스에서 고리대금업으로 축적한 재산만이 자신의 전부인듯 행동한다. 그러나 단지 금전적인 이득만을 취하려 하지 않고, 안토니오의 살을 베어가려 할 정도로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어떤 악랄한 복수도 서슴지 않는 냉혈한이다. 베니스의 상인 원전에서는 샤일록의 항변과 비난 속에서도 인간적 면모를 통해 극에 풍성한 현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그 예시 구절을 들어본다면 다음과 같다:

낚싯밥 하지요. 그게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도 내 복수엔 쓸모가 있을 거요. 그는 날 망신시켰고 내가 오십만 정도를 못 벌게 했으며, 내 손실을 비웃고 이득을 조롱했으며, 내 나라를 모욕하고 내 거래에 훼방을 놓았으며, 내 친구들은 냉담하게 적들은 흥분하게 만들었소.

이유가 뭐냐고요? 내가 유대인이란 겁니다. 유대인은 눈 없어요? 유대인은 손도 기관도 신체도 감각도 감정도 정열도 없냐고요? 기독교인과 같은 음식 먹고 같은 무기로 상처를 입으며, 같은 병에 걸리고 같은 방법으로 치유되며, 여름과 겨울에도 같이 덥고 같이 춥지 않느냐고요? 당신들이 우리를 찌르면 피 안 나요? 간지럼을 태우면 안 웃어요? 독약을 먹이면 안 죽어요? 그런데 당신들이 우리에게 잘못하면 우리가 복수를 안 해요? 우리가 나머지 부분에서 당신들과 같다면 그 점도 닮을 거요. 유대인이 기독교인에게 잘못하면 그는 겸손하게 뭘 하지요? 복수하죠. 기독교인이 유대인에게 잘못하면 그는 기독교인을 본받아 인내하며 뭘 해야 하지요? 그야, 복수해야죠. 당신들이 준 비열한 짓을 난 실행할 겁니다. 그리고 어렵긴 하겠지만 교육받은 것보다 더 잘할 겁니다. 최종철 역 <베니스의 상인/ 민음사판>

작가인 셰익스피어의 의도였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기독교 사회의 유대인에 대한 반감과 핍박을 어느정도는 반성하려는 취지도 보인다. 그러나 셰익스피어 역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라는 양대 기독교가 번성하던 유럽 고전시기의 인물이라는 한계를 버릴 수 없는지, 단지 스토리의 틀만 놓고 보면 샤일록은 엄청난 무뢰한이자 악마 같은 인물로 나오며, 안토니오와 바사니오, 포샤 라는 선한 인물들을 괴롭히다가 결국 지혜로운 선에 의해 악으로서 징벌당하는 인물로 나온다. 그러나 나는 책과 영화를 모두 접하면서, 유대인인 샤일록이 민족과 종교의 차이로 인해 재산권의 제한을 당해 어쩔 수 없이 고리대금업을 하고, 타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기성 사회에서 악전고투하는 모습을 보고, 유럽 귀족 계급을 옹호하는 상징적 인물로 등장한 안토니오, 바사니오, 포샤 세 인물 보다는 그들보다 훨씬 입체적인 심리를 가진 샤일록에 더 눈길이 갔다. 왜냐하면 샤일록이 그토록 자신의 재산과 명예에 집착한 이유는, 셈계 혈통과 종교적 선민 사상이라는 특수적 환경 속에서 디아스포라로 수천년간 떠돌이 생활을 한 유대인들의 비애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샤일록이 지닌 본질적인 심리적 결핍과 나라없는 민족이라는 박탈감 때문에, 그가 자신의 명예와 재산, 그리고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려 한 것이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결국, 극에서 악당으로 그려진 샤일록조차도 최소한 안토니오를 죽이기 위해 칼을 든 그 비인도적인 순간을 제외한다면, 시대를 잘못 타고난 희생양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본다면, 이 극은 영국의 중산계급 극작가이자 기독교인인 셰익스피어에 의해 쓰여진 책이다. 게다가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영국은 당시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치세로, 이미 프로테스탄트가 고착화되어 국교회로 자리잡고 있으며, 스페인 등의 기존 가톨릭 세력들을 신대륙과 동방 무역에서 제치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 그의 입장에서 과연 멀리 떨어진 나라인 베니스의, 그것도 마이너리티인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담을 수 있었을까? 내가 판단하기에, 베니스의 상인은 결국 북유럽계인 영국인 셰익스피어가 사분오열된 도시국가로 나뉘어 있던 이탈리아와 남유럽의 정치, 사회, 문화적 현실을 조롱하려는 의도도 그의 심리 저변에 깔려 있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유대인인 샤일록을 악당으로 과장하고, 그의 명예에 대한 집착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은, 오히려 유대인을 박해하는 기성 기독교 사회를 역으로 풍자하고 비판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한계점이라면, 당시 유럽과 동방 무역 등에서 선점을 잡고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었던 유대인들을 단지 불쌍한 악인으로만 치부하여 기독교인의 시점에서 느끼는 우월감을 드러내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심지어, 탈무드의 저자인 마빈 토케이어 랍비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유대인이었다면 결코 자존심 때문에 살 한 점을 떼간다고 하지 않고 이자를 불려 돈을 엄청 뜯어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은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와 그들과 기독교도들의 갈등을 풍자적으로 그린 시대극이자, 한편으로는 기독교도들의 입장에 편승하지만, 결코 그들만을 옹호하지 않고, 시각의 차이에 따라서는 기성 유럽 기독교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도 보일 수 있는, 일종의 희화화된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작가의 유대인에 대한 심리적 우월감 또한 저변에 깔려 있는 작품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