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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최인훈의 대표작 「광장」은 석방 포로 이명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명준은 석방 후 남과 북 어디로 갈 것이냐 강요받지만, “남북 어느 편에 호의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고 중립국으로 가게 된다. 최인훈의 다른 작품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를 살펴보자.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움직임의 길이 막혔을 때, 움직이지 않음이 나옵니다. 예스라고 하기 싫을 때 노라 하지 않고 그저 입을 다무는 것도 또한 훌륭한 움직임입니다...”
이처럼 최인훈의 작품에선 양자택일의 기로에 섰을 때,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는다. 본고는 이러한 특성을 변증법에서 말하는 ‘정립-반정립-종합’의 운동으로 보고, 최인훈의 초기 작품 「라울전」을 헤겔 철학을 이용해 해석해보고자 한다.
헤겔 철학에 대한 간단한 설명
헤겔 철학은 윤리학에서 정치 철학, 역사 철학까지 방대한 분야를 망라한다. 그렇기에 헤겔 철학을 이 글에서 모두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신 본고에서는 헤겔 철학 중 절대지를 향한 변증적 운동과 인간 정신의 자유 개념, 그리고 그리스 시대와 로마 시대에 대한 역사적 인식만을 다룰 예정이다.
헤겔 철학의 요체는 ‘절대 정신’에 있다. 그는 칸트의 ‘물자체’ 개념을 부인하고, “우주 전체가 하나의 절대적 주체인 절대정신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현상과 사물은 절대 정신의 산물일 뿐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정신은 이 절대 정신의 한 측면이다. 고로 실재는 인간의 “정신에 의해 구성된다.” 처음에 정신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정신은 실재에 대한 앎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운동한다. 그리고, 결국 “실재가 자신의 창조물임”을 깨닫는 절대지를 성취하면서 이러한 운동은 끝난다. 절대지를 향한 일련의 운동은 오로지 변증법을 통해 진행된다.
한편, 헤겔은 인간이 “다른 사람이나 자신의 타고난 욕망이나 사회적 조건에 의해 강요받지 않”아야지만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일찍이 칸트가 말한 바와 같이 보편적인 의무에 의거해 행동할 때 비로소 인간은 자유롭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단, 이 때 보편적인 의무는 ‘절대 정신’이 추구하는 원칙이라는 점에서 칸트의 의견과는 다르다. 이하 글에서 따로 언급하지 않는 이상, ‘자유’를 헤겔이 표현한 자유로 사용하고자 한다.
절대지를 성취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개인만이 아니다. 헤겔은 역사도 절대지에 도달하기 위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운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아테네인들은 무엇이 좋거나 정의로운지를” “관습적 도덕관”으로 판단한 반면, 로마는 기독교를 통해 “관습적 도덕을 사랑이라는 영적 개념에 바탕을 둔 도덕으로” 대체한다는 점에서 한층 자유롭게 변화했다고 설명한다.
지금까지 헤겔의 철학에 대해 간략히 살펴봤다. 설명한 헤겔의 철학을 기반으로 본 글에서는 크게 세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소설이 진행되는 시간적 배경에 관해서, 다음으로 소설 속 등장인물에 관해서, 마지막으로 이를 종합한 소설의 결말부에 관해서 논의할 예정이다.
소크라테스와 예수 사이
작품은 예수가 죽기 직전(기원후 30년 추정)을 배경으로 서사를 전개한다. 이 시기는 종교로써의 기독교가 확립되기 이전의 시기이면서, 동시에 사도 바울이 회심하게 되는 기독교 초창기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자면, 고대 그리스적 사고관에서 로마의 기독교적 사고관으로 바뀌는 과도기라는 말이다.
이러한 과도기적 성격은 소설 속에 은밀하게 반영된다. 먼저, 시바와 나단이라는 노예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기독교 이전 시대의 특징이 보인다. “기독교는 노예제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후에 시바가 바울과 함께 탈출하는 장면에서는 반대로 기독교적 박애주의가 엿보인다. 이는 바울의 편지에 쓰인 구절, “주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이치를 타일러 내어보냈소”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78쪽)
이집트의 점쟁이가 스승을 찾아온 장면에서도 예의 과도기적 성격을 유추할 수 있다. 기독교적 세계관 아래에선 누구도 “신탁에 의지하지 않는다”. 신탁은 “우연한 사건을” “자유로운 선택 보다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울은 신탁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지워지지 않는 어두운 떠올림으로” 자신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그의 고백에서 이를 추측할 수 있다.(55쪽) 하지만, 이러한 그리스적 사고 역시 결말부에 가서는 뒤집힌다. 바울이 “내가 본 바를 증거할 의무를 느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자연의 우연한 사건보다 자유로운 선택을 중시하는 기독교적 사고관을 엿볼 수 있다.(76쪽)
이처럼 소설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가치관이 대립하는 시간적 배경 위에서 그려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과도기적 배경은 무엇을 시사할까? 두 가지 가치관이 부딪히는 시간적 배경은 바울과 라울의, 나아가 자유와 속박의 대립 관계를 보다 분명하게 만든다. 다음 키워드에서 작중 인물들을 분석하며 더 살펴보도록 하자.
정립과 반정립
라울과 바울은 그 자체로 서로의 정립과 반정립으로 기능한다. 라울이 “솔로몬 왕”이면 바울은 “다윗 왕”이고, 라울이 “속임수에 빠지지 않는” 힘을 가졌다면 바울은 “내기꾼으로서의 힘”을 지녔다.(55-56쪽) 잠깐 라울의 자기 인식을 살펴보자.
“...누가 더 신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자인가 하는 일에 있어서 라울 자기가 못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바로 그 점이었다. 숨기 내기를 하거나 고누를 둘 때 앞뒤를 가리기 위하여 가위바위보를 하면, 가위에 잘리는 ‘보자기’, 보자기에 싸이는 ‘바위’, 바위에 날이 부서지는 ‘가위’는 늘 라울이었다...”(53쪽)
이처럼 라울은 스스로를 바울의 정반대로 인식한다. 이만하면 라울과 바울이 서로 반대라는 사실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다만, 바울과 라울이 상징하는 바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다. 필자는 라울이 속박을, 바울이 자유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라울은 속박을 상징한다. 그가 처음 나사렛 사람의 풍문을 듣자 마자 한 일은 “꼼꼼한 계보학적인 검토”였다.(56쪽) “책에서 낸 연대 셈과 돌림자 따지기”에 집착하는 그의 모습에선 그리스 사람들의 관습에 매인 삶이 엿보인다.(57쪽) 기존의 관습에 자신의 판단을 강요받는다는 의미에서, 그는 자유롭지 않다. 또, 그는 끝까지 예수를 직접 확인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다. “그는 몇 번이나 예루살렘으로 내려갈 마련을 세웠으나” “총독이 부르는 잔치니 교구장 회의니 하는 상식을 깨뜨리지 못”하고 만다.(56-57쪽)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지가 관습에 의해 좌절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바울은 자유를 상징한다. 그는 “얼마나 배웠는가 알아보”는 스승의 시험을 “죽자고 외는 대신, 넘겨짚기로” 통과하려 든다.(54쪽) 기존 관습에 반하는, 그러나 자신의 판단에 부합하는 행위를 실천한다는 점에서 그는 자유롭다. 시바를 데리고 탈출하는 장면에서도 역시 바울은 자유를 상징한다. 라울에게 매어있는 시바를 자유롭게 풀어준다는 점에서 그는 라울과 대립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기존의 상식을 버리고 회심한다는 점에서 자유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바울은 라울과 다르게 완전히 긍정적인 존재일까? 헤겔 철학에 비춰보면 바울이 라울에 비해 진일보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라울에 비해 자유롭다는 점에서 절대 정신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시 완벽한 존재는 아니다. 라울과 바울은 절대 정신과 자신의 정신을 구분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라울은 신의 영적인 속성과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따로 구분해 바라본다. “온몸을 당신의 힘의 떨림으로 가득히 채워주십소서.”라고 기도하면서도, 시바의 “왼쪽 가슴이 드러”나자 짜증을 느끼는 그의 모습에서 이를 유추할 수 있다.(59쪽) 그러는 한편, 바울은 신을 주인으로, 자신을 종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주께서는 하고많은 무리 가운데 하필 죄많은 자를 골라 그의 가장 귀한 종으로 삼으시었소.”라는 그의 설명에서 주와 자신의 구분을 볼 수 있다.(76쪽) 결국, 라울과 바울 모두 절대지의 경지에는 다다르지 못한 셈이다.
정리하자면, 바울과 라울은 자유와 속박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정립과 반정립으로써 작용한다. 하지만, 라울(정립)과 바울(반정립)은 모두 절대지에는 미치지 못한다. 새로운 가치(종합)이 필요한 순간이다. 다음 파트에서는 「라울전」이 제시하는 종합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너무 길어서 뒷부분이랑 각주는 자름. 급하게 써서 보여주기 좀 쪽팔리네. 비판 환영이유.
와씨 개오지네. 광장에서도 헤겔 철학이 언급되서 헤겔철학을 바탕으로 최인훈 소설을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진짜로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네.
ㄱㅅㄱㅅ 다음번엔 최인훈 작가론을 헤겔 철학으로 해보고 싶긴 한데, 헤겔 너무 어려운듯. 독갤 추천 도서들 참고하면서 썼다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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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량 따라 다른듯. 이 교수님은 유독 소제목을 좋아하셔서 쓰긴 썼는데 3페이지 안쪽 글은 소제목 안쓰는게 낫더라 ㅇㅇ - dc App
내용이 난잡하면 소제목 넣어서 구분해주는게 좋고 아님 걍 줄글로 쓰는게 좋을 것 같으. 난 저번에 소제목 썼다가 3페이지짜리에 무슨 소제목이냐고 대차게 까임.
헐..헤겔을 인용하다니...훌륭한 감상입니다콘
대단하네 ㄷㄷ - dc App
헤겔 변증법에서 정립과 반정립은 밖에서 서로 대립하는 다른 개념들이 아니라 자기 안의 것들임 그니까 내 안의 모순들의 싸움인거지. 헤겔 변증법은 대립을 전제하지 않음. 이원론적으로 떨어져있는 단계가 아님
그리고 즉자대자에서 자기 밖의 새로운 가치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지양을 거쳐서 모호한 추상성에서 탈피해서 구체성을 획득하는 거임. 바울과 라울이라는 개개인을 각각 정립과 반정립으로 보는건 모순이 있지 않은가 함
정확한 평임. 근데, 바울과 라울이 외적으로 대립한다고 보기보단 서로가 서로를 암시하는 동일한 정신체로 보는게 맞다고 나는 해석했었음. 마지막 대목에서 특히 그런 생각이 심화됐고. 그리고 이 뒤에 잘린 대목에서 최인훈과 헤겔의 다른 점을 서술하는데, 그 파트가 님이 말한 종합 파트임. 최인훈은 광장, 그레이 그락부에서도 모두 선택을 하지 - dc App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헤겔은 종합으로의 발전이 있지만 최인훈은 선택의 포기라는 일종의 퇴보를 보여준다는 차이를 찾았음. 님 말마따나 헤겔에 정확히 들어맞는 텍스트는 아닌듯 - dc App
뒷부분에 그런거 언급할거였으면 말 해주지 ㅋㅋ 비판 환영이라길래 여기서 다룬 내용만 가지고 말한거였당
ㄴㄴ 날카로운 비판인듯. 특히 헤겔의 종합이 구체성을 획득함을 의미한다는 걸 몰랐음. 수정하도록 할게 ㄱㅅㄱㅅ - dc App
내가 라울전을 안 읽어서 일단은 패스... 추천 눌렀음
나는 문돌인데도 죽기전에 헤겔공부해야지하는데 공머생이라니 열등감 폭팔한다ㅅㅂ 지금 책읽으러감ㅅㅂ
헤겔 머읽음?
ㄴㄴ 난 ㄹㅇ 공돌이라 ㅈㅂ임. 헤겔 원문은 법철학 읽다 도저히 못읽겠어서 때려쳤고, 해설서만 읽음. 백종현 칸트와 헤겔의 철학이랑 피터 싱어의 헤겔 정도밖에 안 읽은듯 - dc App
피터싱어 헤겔은 어때? 외낙 철학자들이 헤겔설명하겠다고 내놓은 책이 많아서. 왜 피터싱어읽음?
다른게 아니라 ebook으로 있길래 주체못하고 바로 사버림. 입문서라 기대하는 수준의 깊이는 못 찾을 수 있지만, 공머생 기준으론 충분했음. 깊이는 백종현이 좀 더 있었던 것 같앙 - dc App
ㄱㅅ칸트는 공부함??
칸트는 진짜 주워읽은게 다임. 서양 철학사 책이나, 정의란 무엇인가, 칸트와 헤겔의 철학에서도 잠깐 훑어보기만 함 - dc App
ㄷㄷㄷㄷㄷㄷ 헤겔 - dc App
오진다 완전 융합형인재네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