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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영화는 이야기 진행이나 사건 등에서 여러 차이가 있다. 각색과정에서 일어난 꽤 많은 변화 중 유의미한 지점은 다음과 같다. 1) 화자의 유무, 2) 맥머피의 위치, 3) 수간호사의 위치

1) 화자의 유무영화가 특별히 누군가의 시점에서 바라보지 않는 것과 달리, 소설은 브롬든(일명 추장)의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덕분에 맥머피로 인해 브롬든의 내면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가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브롬든은 사실상 정신병동 환자들의 내면을 대표(예컨대 맥머피가 수간호사의 허락 없이는 퇴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듣고 수간호사에게 반항하는 것을 포기했을 때, 환자들 ‘모두’가 그를 탓하지 않는다고 브롬든이 말하는 부분)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소설이 ‘수간호사-맥머피-나머지 환자들(브롬든)’이라는 세 가지 인물상이 대립하고 있음을 영화보다 더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물론 맥머피와 환자들의 관계는 단순한 대립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우나, 맥머피와 하딩이 서로 말싸움하는 장면, 환자들이 맥머피를 돈이나 밝히는 인물로 오해하는 장면 등을 통해 소설에선 맥머피와 환자들간의 관계 변화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긴 이야기를 줄인 탓도 있겠으나, 이처럼 환자들의 내면을 보여줄 화자가 사라졌기 때문에 영화 속의 환자들은 캐릭터성이 상당히 희박해졌고, 사건 몇 개를 통해 무조건적으로 맥머피에게 동화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화자의 유무는 작품의 주제의식과도 연결된 중요한 부분이다. 귀머거리, 벙어리인 척 하는 하프 인디언이라는 화자의 속성은, 소설의 칼끝이 어디에 겨누어져 있는지를 정확히 가리켜준다. 그것은 결국 듣고 말하기를 거부하는 비겁한 소시민의 시선이자, 서구적(미국적)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려나간 주변인(非백인)의 시선이다. 소설은 그의 독백이 말해주듯, 안개 속에서 헤맬 바에야 가만히 있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하는 나약한 개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무조건적으로 개인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콤바인, 수간호사로 대표되는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인 사회 시스템이 어떻게 그런 개인들을 만들어내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대의 미국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수간호사와 콤바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기계부품이니, 군대니, 제어반이니, 태엽이니 하는 브롬든의 독백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처럼 서구적 합리성, 정상성 개념을 비판하는 소설의 주제의식은 영화에서 다소 약화되고, 보다 보편적인 구조(억압하는자와 억압되는자의 대립)로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로 각색 되었다. 다만 이것이 비판받을 부분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소설에 짙게 배어 있는 관념성과 브롬든의 독백(콤바인, 기계, 태엽 등)을 통해 가치판단에 대한 독자의 개입을 전연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혐의, 그리고 이를 통해 곧바로 미국의 역사를 비판하고자 하는 작가의 조급함을 영화는 알레고리적인 형식을 통해 극복한다고 바라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 시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영화는 보편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