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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는 추리소설이 아니다. 이 작가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이에 실망하고 책을 덮으려 했으나(전자책이니 프로그램을 끈다고 하는게 맞겠지만), 추리소설 갤러리에서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하는 글을 읽고 끝까지 읽기로 결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수작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책인 <악의>, <용의자 X의 헌신>등을 읽으며 느낀것은, 이 작가는 사람의 감정에 대해 주의깊은 고찰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책의 주인공인 나오키의 심경 변화를 보며 나는 이를 다시 절감했다. 나오키의 형에 대한 깊은 애정이 애증으로 변하고, 결국 이를 증오로까지 바꾸려는 나오키의 시도는 몇 번이나 반복되지만, 결국 애증과 증오 사이의 선을 그는 넘지 못한다.


뜬금없는 말을 꺼내자면, 나는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는 10살까지의 경험으로 형성된다고도 생각한다. 사회의 인간 쓰레기, 악 중의 악은 그 10년이 황량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으며, 선하거나 평범한 사람은 그 10년이 풍족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황량함과 풍족함은 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인 면에서 빈부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시 책의 얘기로 돌아가서, 결국 나오키가 증오로의 선을 넘지 못한 이유는 가족과 행복하게 지낸, 보석같은 경험의 그의 마음속에 박혀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날아오는 형의 편지에서 나는 그들이 가난할지언정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어릴 적의, 어머니와 형에게 품은 깊은 사랑이 나오키를 붙들었다.


사람이 항상 극단적일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악한 사람은 죄책감이 결여되있고, 선한 사람은 미움이 결여되있어 다른 악한 자들이 그를 해친다고 해도 웃으며 받아들일수 있다면 사회에 갈등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양면성을 품은 종족이기에,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절망과 두려움, 죄책감의 소용돌이에 삼켜지며, 행복한 삶을 보내는 자들도 이 행복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지에 대한 불안감을 가슴에 품고 산다. 행복과 슬픔은 우리의 인생에 신호등처럼 번갈아 나타날 것을, 그리고 우리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그것 때문에 괴로워할것을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