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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작은 왕국'은 1918년 발표된 작품으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 중에서는 탐미주의, 에로티시즘이 없는 특이한 성격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가이지마는 한때 학문적 출세를 꿈꾸었으나 세상의 풍파 속에 출세욕도 잃고 무기력하게 소학교 선생을 하고 있는 교사다. 그는 도쿄에서의 생활고에 견디지 못하여 G현 M시(: 군마현 마에바시 시)로 이주하게 된다. 그는 그곳의 D소학교에 부임하여 교사 생활을 하게 되는데, 어느날 누마쿠라라는 학생이 전학을 오게 되면서 일이 벌어진다.
누마쿠라는 힘이 세기는 하지만 전 학급에서 가장 센 것도 아니었고, 공부는 곧잘 하지만 역시 가장 잘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전학온지 열흘 사이에 학급 전체를 휘어잡는다. 전쟁놀이를 하면 그가 속한 열 명의 집단이 나머지 마흔 명이 속한 집단을 격파해버릴 정도였고, 아이들의 생활 속에서도 골목대장이 되어 갔다. 가이지마는 그런 그를 그저 카리스마가 강한 아이 정도로 치부했지만, 사건은 도덕시간에 터진다. 원래 수업시간에는 조용했던 누마쿠라가 수업 도중에 주위 학생과 큰 소리로 잡담을 한 것이다. 가이지마는 그런 그를 추궁했지만, 놀랍게도 노다라는 아이가 누마쿠라의 무언의 압력을 받고는 자기가 잡담을 한 것이라고 누마쿠라의 죄를 떠맡은 것이다. 가이지마는 더욱 화가 나서 누마쿠라를 추궁했지만, 이번에는 니시무라, 나카무라라는 아이들을 필두로 여러 명의 아이들이 '누마쿠라에게 벌을 주시려면 저희에게도 같이 벌을 달라' 면서 나서게 되어 결국 누마쿠라를 처벌하지 못하고 주의만 주고 만다.
가이지마는 나중에 누마쿠라의 동급생인 자신의 아들 케이타로에게 놀라운 사실을 전해 듣는다. 그것은 그날 도덕시간의 일이 누마쿠라의 '충성심 테스트' 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꺼이 그의 죄를 떠맡은 노다와, 가장 먼저 같이 벌을 받겠다고 나선 니시무라, 나카무라는 누마쿠라에게 높은 평가를 얻고 포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케이타로는 누마쿠라의 체제를 그리 나쁘게 보지 않고 누마쿠라도 나쁜 아이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누마쿠라가 매우 공평한 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에 강한 아이가 힘만 믿고 함부로 약한 아이를 때릴 수도 없게 되었고, 심지어 누마쿠라가 정한 룰을 누마쿠라 자신이 어겼을 경우에는 자기 스스로 처벌을 받기도 하는 등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공평한 체제를 구축했기에 힘이 약한 아이들은 오히려 누마쿠라 체제를 적극 지지하고 나선다는 것이다.
가이지마는 이런 누마쿠라에게 편승하여 아이들을 쉽게 통제할 생각을 하게 되고, 누마쿠라를 따로 불러 아이들의 비행을 적발하고, 아이들이 잘 한 일에는 적극 지원을 해 달라는 식으로 말한다. 가이지마는 스스로 아동심리를 잘 응용했다며 만족스러워하지만, 결국 그는 교사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교권을 누마쿠라에게 완전 위임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얼마 뒤 가이지마는 형편이 좋지 않은 자신의 집안 사정에도 불구하고 좋은 물건들을 계속해서 가져오는 아들 케이타로가 도둑질을 의심받아 조모에게 크게 혼이 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가이지마는 케이타로를 추궁하여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은 누마쿠라가 가이지마의 '위임'을 받은 뒤로 정교한 감시 체제와 통치 체제를 구축하여 사실상 '누마쿠라 공화국' 을 만들었고, 거기에 자체적인 감독관, 감시역, 재판관, 부통령 등의 체계를 두고 '훈장' 까지 만들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마침내는 누마쿠라 공화국에서만 통용되는 화폐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이 받은 용돈을 모두 물건으로 바꾸어 '공화국 시장' 으로 가지고 오면, 누마쿠라가 자체적으로 발행한 화폐를 가지고 그 물건들을 사고 판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유한 집 아이들은 자신이 받은 많은 용돈을 모두 공화국 시장의 물건에 빼앗기게 되므로 크게 손해를 보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 입장에서는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물건을 살 수 있게 되니 훨씬 이득이다. 이렇게 누마쿠라는 자신의 화폐까지도 만들어내면서 교실 내부에서 완전한 자신의 '작은 왕국' 을 구축한 것이다.
이 체제에 마침내 가이지마조차도 끌려들어가게 된다. 가이지마는 늙은 어머니와 아내의 병으로 인한 생활고로 마침내 막내아이의 우유조차도 살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되는데, 우유를 외상으로 사려고 갔다가 용기가 없어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누마쿠라의 '공화국 시장'을 지나치게 된다. 가이지마는 누마쿠라에게 다가가 '놀이에 끼워 달라. 나도 오늘부터 누마쿠라의 가신이 되겠다.'는 말을 하고, 마침내 누마쿠라 공화국의 화폐를 받게 된다. 가이지마는 돌아오는 길에 우유 가게에 들러서 우유를 사고 자신도 모르게 누마쿠라 공화국의 화폐를 지불하고는 당황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 무언가 비슷한 소설이 하나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다. 누마쿠라의 '작은 왕국' 은 엄석대의 왕국과 놀랄 만큼 닮아 있다. 그러나 엄석대의 왕국이 더 강력한 독재자인 6학년 담임 선생님 앞에 맥없이 허물어진 것과 달리 누마쿠라의 작은 왕국은 마침내는 교사인 가이지마조차도 굴복시키고 만다. 이 장면이 나에게는 상당한 전율이었다. 짧은 내용 속에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고,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이런 소설도 썼구나' 하는 생각에 그의 문학의 다양성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 단편이었다.
진짜 준이치로는 거장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