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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8년 전에 썼던 글을 일부 첨삭한 것임을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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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 하면 독갤러들은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1970년대의 장발 단속과 미니스커트 길이 단속으로 대변되던 그 시절의 폭압적인 미디어, 출판물 검열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 시절엔 반정부 운동의 사상적 온상이 될 수 있다고 간주된 사회학 도서들은 모두 정부의 검열 대상이었고, 이런 책들은 대개 금서로 지정된 뒤 신출귀몰한 루트를 통해 몰래 빼돌려져 읽혀지곤 했다. 사실 그뿐만이 아니라 이 시절의 문화 컨텐츠에 대한 단속은 그야말로 지금 사람들이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만화책 자체가 유해매체 취급을 받기도 했고, 조금이라도 '왜색'이 들어있다고 간주되면 가차없는 단속의 대상이 되었고, 노래 가사에 조금이라도 사회 비판적이거나 염세적인 메시지가 들어 있으면 즉시 금지곡이 되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적어도 1970~80년대의 억압적인 문화 탄압, 검열에서는 벗어난 듯 보인다. 음반마다 '건전가요' 한 트랙씩을 넣어야 하는 시절은 지났고, 마르크스의 책이나 '체 게바라 평전'도 군대와 같은 특수한 마지노선을 제외하고는 이미 금기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다. 그러나 검열은 여전히 사회 깊숙한 곳에 파고들어 있으며, 그 중에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검열, 자기도 모르는 새 검열과 감시의 손아귀에 들어 있는 경우조차 존재한다. 가령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포르노가 금지의 대상이며, 관능소설 즉 이른바 '야설'은 그 자체가 출판 금지의 대상이다. 이게 왜 문제인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설령 이에 대해 지적하려 해도 이른바 '이단아'로 찍힐 위험과 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감수하고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실상 장정일 필화사건만 해도 불과 1997년의 일이었고, 80년대~90년대생들이 어릴 적 보던 애니메이션에서 조금이라도 일본적인 색채가 나오면 어김없이 덧칠 또는 해당 화가 통째로 방영이 금지되던 것도 일상적이었으니, 아직까지 검열은 우리 사회에서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일이라 하겠다. 게다가 최근 여성가족부의 이른바 '아동,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이라는 규정에 의한 아동 포르노에 대한 과도한 확대 해석, 그리고 게임 산업을 통째로 질식시키려 하는 규제 또한 여기에 해당된다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새로운 문화 검열 주체가 되어버린 여성 단체들 또한 그러하다.


책에 상관없는 서론이 지나치게 길었는데, 이는 바로 이러한 우리의 상황을 염두에 놓고 이 책을 읽을 때 더욱 효과적인 책읽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프랑스어권의 여러 법관, 변호사, 법학자, 기자, 교수 등에 의해 프랑스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검열의 형태에 대해 각 저자별로 견해를 제시하고, 그 불합리성과 실태를 지적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제시되는 검열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고, 그 역사는 매우 뿌리깊다.

현대 사회에서는 국가기관에 의한 직접적인 검열은 줄어들었으나, 이른바 협회 형식의 윤리, 종교단체들이 등장하면서 민사 소송의 영역에서 검열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는 보다 은근하면서도 더욱 효율적인 검열을 개인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 와중에서 만연하기 쉬운 것이 자기검열이다. 자기검열은 저자나 기자의 생각을 뿌리째 뽑아버린다는 점에서 폭력적인 검열보다 더 나쁘다고 할 수 있다. 검열은 판결이든 법이든 유혈이든 흔적을 남기지만, 자기검열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처음부터 이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실상 국가기관이나 종교단체, 윤리단체에서 노리는 가장 이상적인 것이 바로 자기검열이라 하겠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압력을 받은 개개인이나 해당 문화계는 자체적인 검열을 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 영화계에 1930년부터 1966년까지 존속했던 '헤이스 규정'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게임물의 경우 보다 낮은 등급을 받아야만 더욱 많은 판매량을 기대할 수 있기에 등급이 상향 조정될 만한 폭력적, 선정적이라 생각되는 장면을 자체적으로 검열하여 삭제, 수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것들이 바로 자기검열의 가장 쉬운 예이다.


인터넷에서의 검열의 경우 지금은 검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것으로 보이나, 장기적으로는 독재 국가들의 필터링,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기업들의 로비 등으로 인해 미래는 매우 어두운 상황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인터넷 검열국으로 당당히 등록된 상태인데, KCSC의 시퍼런 화면은 해외 사이트를 돌다 보면 한번씩 꼭 보게 되는 유명한 차단 화면일 것이다. https 차단의 경우도 그렇다.


'미풍양속에 관한 검열'을 보자. 이 부분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공감이 갈 만한 부분이 많다. 우선 미풍양속이라는 개념은 정의를 할 수 없다. 이것은 한 사회가 겪는 변화하는 의식의 어느 순간을 찰칵 찍어놓은 사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미풍양속에 관한 법은 1819년부터 시행되었고, 이 법에 의해 검사 에르네스트 피나르는 '마담 보바리''악의 꽃'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전자는 곧 불기소 처분이 되었으나,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대한 유죄 판결은 사건이 발생한 지 약 100년 가까이 지난 1946925일에야 재심에 의해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사드 전집에 관한 유죄 판결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판매금지 처분을 받은 '소돔의 120' 사건과 연관하여 더욱 관련성이 큰 대목이다. 사드 전집을 출간한 장 자크 포베르는 19571심에서 20만 프랑의 벌금, 항소심에서 집유 및 12만 프랑의 벌금을 선고받고, 이후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20여개의 소송을 겪는 등 고초를 겪는다. 포르노 영화의 경우 이 자체를 금지하기보다는 이를 상영하는 영화관에 대한 국가, 지방단체의 재정 지원을 끊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탄압하였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1975년까지 3000여개에 이르던 포르노 영화 상영관은 1976111개로 대폭 축소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검열의 민영화는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윤리단체들의 경우 이미 해당 매체에 대한 처벌을 전제로 깔고 그들의 논거를 거기에 끼워 맞추며, 이 단체들이 요구하는 내용에는 종교적 색채가 깔리게 되어 사법적 논의 외의 가치관들이 섞여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논리가 없는 집단이 윤리관, 종교관에 의한 신념을 가지고 몰아붙이는 데에 저항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청소년 보호의 경우 우리 나라에서 최근 논쟁이 되고 있는 아동, 청소년 포르노의 정의에 관한 문제와도 상당히 맞물려 있다. 국가와 윤리, 종교단체들은 검열을 정당화하는 가치로 청소년 보호를 내세운 뒤, 중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이를 비판하는데, 가령 역사학자 로베르 네츠는 저서 '검열의 역사' 에서 이렇게 말한다. "출판에 대한 억압적 검열은 아무 관계도 없는 청소년 보호를 내세워 가해질 때 더욱 눈에 잘 보인다."

특정 문화 컨텐츠가 범죄, 비행에 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 또한 포르노물과 폭력에 반대하는 것이 범죄와 강간 퇴치에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탈'에 대한 매우 특별한 인식에 근거를 둔다. 이들은 이런 비행을 일탈자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그 원인으로 매체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행태가 좋은 예이다. 살인자가 평소 게임을 즐겼다면 게임의 문제로 몰아가고, 성폭행범의 책임은 야동에 돌리는 식이다.


그러나 이는 낡고 진부한 담론이라고 본다. 1897년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저서 <자살론>에서 일탈 현상을 심리적, 정신적인 것으로 환원시키려는 학자들을 공격했다. 이런 학자들은 '실제로 가지고 있지 않은 힘을 모방에 부여하면서 범죄나 자살 관련 기사가 신문에 게재되는 것을 금하려고 요구했다" , 이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해서 범죄율, 자살율에 하등의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열 옹호자들의 논리는 부수적 현상을 주요 현상으로 잘못 간주하는 발상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그들의 논리는 사회적 현상의 진정한 객관적 원인들을 가려버린다. TV, 영화, 비디오게임의 음란성과 폭력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부수적인 현상으로 돌리는 행위이며,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진정한 사회적 변수들(실업, 가난, 계급의 폭력성, 퇴학, 차별, 복지국가의 위기)의 역할을 가려버리는 것이다.


이래저래 이 책에서 논하고 있는 다양한 '검열'에 대한 담론은 오늘날의 사회가 결코 자유롭지 않은 사회이며, 평상시에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매체와 발언권에 대한 제한과 금기에 대해서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또 여성가족부, 여성단체, 특정 종교 세력에 의해 문화 컨텐츠가 검열, 탄압받으면서 다시 80년대로 회귀하려는 책동이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와중에, 이들에 대해 저항하는 자유주의자들에게 좋은 논거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문화 컨텐츠에 대한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