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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이 쓴 서문에서 언급하듯, 이 책은 J.M.쿳시의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와 함께 언급될 수밖에 없는 책이다. 두 책이 다 도스토옙스키의 삶을 소재로 쓴 글인데, 쓰여진 방식은 상이한 탓이다. <바덴바덴>은 작가가 작중에서 화자이자 등장인물로서 확실하게 등장하는데, 도스토옙스키가 거닐던 장소들을 여행하며 그의 아내 안나가 쓴 회고록을 읽으며 기억들을 떠올리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그, 도스토옙스키는 늘 생생하지만 어디까지나 기억에 불과한 인물로 나온다. 반면 <페테르부르크>는 작가가 작중에 등장하지 않고, 도스토옙스키를 실제 등장인물이자 주인공으로서 이야기를 써나간다.



이러한 형식의 차이가 내용의 차이까지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 같다. <바덴바덴>은 일종의 기행문과 다큐멘터리를 섞어놓은 듯한 글에 가깝다. 치프킨이라는 작가가 있고, 이 작가가 여행을 하면서 도스토옙스키의 일화 등을 떠올리며, 이따금 거기에 자신의 생각 같은 것을 덧붙인다. 작가와 화자 사이엔 (실제로 작가가 이 화자와 같은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녔던 것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차이가 없어 보인다. 실제 세계에선 작가가, 작중에선 화자가 실존인물인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역사를 탐구하는 식이다.



허나 <페테르부르크>는 정반대다. 작가가 작중에서 숨은 대신, 그는 작중 주인공인 도스토옙스키 속에 숨어 들어가 있다. <바덴바덴>에서의 도스토옙스키와는 달리 그가 사는 세상은 실제 도스토옙스키가 사는 세상과는 여러 점에서 다르고, 그의 생각 역시도 도스토옙스키스러운 생각과 쿳시스러운 생각이 미묘하게 섞인 재창작된 도스토옙스키에 가깝다. 물론, <바덴바덴>의 도스토옙스키 역시 실제와 완전히 같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쪽은 딱히 사실을 왜곡할 생각은 없다고 말하듯 그대로 전달하는 어조인데 비해 <페테르부르크>에선 처음부터 재창작이란 걸 밝히듯 글을 쓴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가 특정 글을 쓰게 되는 모티브에 대해서도 그렇다. <페테르부르크>에서 도스토옙스키가 <악령>을 쓰게 된 모티브인 네차예프 사건을 재창작하는 것과는 달리, <바덴바덴>에서 도스토옙스키가 <그리스도의 시신> 그림을 보고 <백치>를 쓰기로 결심하는 것은 정사이다.



이런 점에서 작가와 도스토옙스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점이 많다. 쿳시는 도스토옙스키를 마치 또 다른 자신인 것처럼 여기고 글을 쓴다. 보다 더 정확하게는, 도스토옙스키가 현실을 글로서 어떻게 옮기느냐,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떤 진실성을 갖추느냐, 라는 속성에 한해서 스스로를 도스토옙스키와 동일시해 글을 쓴다. 이와 정반대로, 치프킨은 도스토옙스키를 끌리지만 먼 인물로, 치프킨 자신을 포함한 모든 유대인들을 혐오한 인물로 바라본다. 글의 초반부에서부터 '혐오스러운 유대인'이라는 문구에 따옴표를 넣는 식으로, 그 불쾌한 점들을 만날 때마다 차마 그냥 넘기지 못한다.



인터넷에는 소위 '반일씹덕'이라는 표현이 있다. 루리웹 사이트 유저들이 일본 매체를 즐기면서 정치적으론 반일 성향에 가까운 것을 두고 비꼬듯 쓰는 멸칭이다. 치프킨 역시 이런 시각으로 봤을 땐 우습게 보일지도 모른다. 도스토옙스키의 글을 보며 유대인들이 어찌나 차별적이게 묘사되는지에서 차마 눈을 떼지 못하고, 어째서 그런 "학대 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열정적으로 옹호하던 사람"이 "증오에 눈멀었던"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식으로 말이다. 안타까우면서도 약간은 실소를 머금게 되는 게, 치프킨은 이미 앞에서 도스토옙스키가 푸슈킨을 숭배한 방식이 상당히 눈먼 방식이었다는 걸 이야기했다. ("그를 정신적 조화의 화신이라고 생각했으며, (아마도 실제의 푸슈킨은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고귀한 명예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도스토옙스키는, 푸슈킨이 마린스키 극장에서 오를로프 백작 같은 자에게 충성을 바치며 경의를 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또 그는 푸슈킨이 개성과 신의의 하신이며, (데카브리스트들이 푸슈킨을 그리 믿지 않았으며 신뢰하지 못할 수다꾼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도스토옙스키는 알고 있었을까?)" (p.180) ) 그가 그런 종류의 사람이란 걸 이렇게 알고 있으면서도, 마찬가지 몰이해가 다른 방식으로도 작용한다는 걸 이해할 순 없었던 걸까?



다만 나도 이것이 이성적으론 좀 우습더라도, 감정적으론 안타깝다는 걸 부정하진 않는다. 일종의 짝사랑과도 같아, 괴팍한 것을 사랑하지만 그 괴팍한 성정이 마찬가지로 자신을 밀어내는 걸 느끼는 식이다. 한국에서 러브크래프트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아마 비슷한 감정을 받을 것이다. (어쩌면 톨킨의 오크를 보면서도?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나는 이런 주제에 대해선 전혀 신경 쓰지 않기로 이미 다짐한 적이 있다. 유미주의니 정치성을 배제한 예술이니 하는 말들에 얽히고 싶진 않지만,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너무 피곤한 주제인 탓이다. 치프킨 역시 그럴 수 있었다면 좋았을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