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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두께에 비해 꽤나 어려운 책이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주로 초점을 맞추다보니, 법률 자체보다는 법률이 적용되는 방식, 그리고 그 방식의 절차에 더 주목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책에서 다루는 쟁점들은 크게 묶어보았을 때, 판사가 사회적 규범에 따라 판단을 내린다면 사회적 규범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느냐, 시장에 대한 대법원의 선택, 그리고 사법부와 정치성 사이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느냐, 이 세 가지 정도로 나뉠 수 있다.
앞 1~3장은 사회적 규범과 판사 사이의 관계를 주로 다룬다. 당연한 일이지만, 사회적 규범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고, 다른 사람의 압박이 아니더라도 판사 본인의 판결에 영향을 준다. 종중에서의 성차별적 재산 분배, '성인지 감수성' 문제 (굳이 따옴표를 쓴 이유는, 어쨌든 이 어휘가 내게도 매우 껄끄러운 탓이다.), 그리고 사적 단체에서의 헌법 적용 문제다. 이 세 문제는 모두 사적 영역에 대한 이야기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나눠 법을 차등적용하는 문제에 대해 4장에서 이어서 이야기하지만, 이 부분은 뒤에 언급하도록 하자.
가정, 교우관계, 그리고 사적인 단체들은 원래 사생활의 영역이지,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자식을 어떤 식으로 키우는지는 부모의 마음이고, 누군가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그 사람의 자유고, 사교클럽 같은 곳에서 자기들만의 가입 기준, 혜택 기준을 세우는 것을 법적으로 통제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딱히 그렇지 않다는 걸 다들 잘 알고 있다. 가정 학대, 성희롱, 그리고 (이쪽은 앞 두 개에 비해 비교적 친숙하진 않은 주제지만) 정당 내의 민주적 절차 등. 어떻게 시대가 변화면서 판사들을 포함한 사회의 규범이 변하고, 그 변화가 대법원의 판결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이 세 장에서 주로 이야기한다.
다음 4~5장은 시장에 대한 이야기다. 앞에서 말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 대한 이야기의 연장선상으로 4장을 시작하는데, 이번 타깃이 되는 사적 영역은 시장이다. 거칠게 말하면, 자유방임주의가 기본이 되는 시장의 흐름을 그대로 둬도 되느냐로 바꿔 말할 수도 있겠다. 통상임금 문제를 보자.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보다 신의성실의 원칙(계약상 서로를 배신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우선시하는 예외를 만들었다. 곧 특정 경우에 한해 계약이 법 위에 설 수 있다는 뜻이다. 저자는 알랭 쉬피오를 인용하면서, 시장 안에서 계약이 법을 점차 대체하다보면-그러니까, 법적으론 올바르지 않더라도 계약 당시에 쌍방이 이를 몰랐을 경우에 예외적으로 계약을 인정해주는 식으로-법적 올바름 대신 계약의 효용성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계약을 지키지 않았을 때의 이익이 더 크다면 이를 마음대로 깨고 위약금을 지불하는 식으로 말이다. 서로가 그 계약해지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계약 파기를 당한 측에게 이 계약이 매우 중요한 문제였을 경우 이야기가 다르다.
이 비대칭성으로 인한 문제가 5장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여기에서의 논조는 일종의 국가후견주의를 연상시키는데, 특정 선택이 상대방에게 파멸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계약 상대가 이를 막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제인가, 하는 질문이다. 개인의 도박, 중소 기업의 환헤지 같은 주제에 대해 계약을 하는 두 당사자가 비대칭적일 경우엔 무언가 더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는 식의 주장인데, 이 점에 대해선 나는 솔직히 공감하기도 힘들고 동의하지도 않아서 더 이야기할 것이 없다.
나머지 6~9장은 위에서 말한 정치성에 대한 논쟁이다. 6장은 과거사 청산에 대한 대법원의 소극적 움직임을 비판하는 장으로, 다른 세 장과는 조금 색이 다른 감이 있다. 후의 세 장은 사법부와 정치성의 관계에 대해 보다 더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탓이다. 7장에서는 대법원의 법규주의적 접근의 문제성과 입법부를 일시적으로 대체하게 되는 상황을 비판하고, 8장에서는 첨예한 정치적 갈등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처리하게 되는 아이러니에 대해 이야기하며, 9장에서는 앞 두 장에서 지적한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법부가 정치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에서 사용한 두 표현이 있는데,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다. 정치적인 첨예한 갈등이 정치 공론장에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어 사법적인 절차에게 해결을 맡길 때, 이를 정치의 사법화라고 한다. 이것이 자주 일어날수록, 당연하게도 정치적 힘은 사법부에 최대한 관여해 자신에게 이로운 사법적 결정을 유도하려 한다. 이것이 사법의 정치화다. 7장은 사법의 정치화에 가깝다. (비록, 저자가 미국에서 일어나는 사법의 정치화 과정과는 달리 한국의 사법부는 태생부터 정치에 종속되어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8, 9장은 정치의 사법화에 가깝다. 이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 무언가 민감한 것을 다른 철옹성 같은 곳으로 어떻게 떠넘기더라도 오히려 그 철옹성에서 전보다 더 큰 취약점이 발견되곤 한다는 듯한, 우화스러운 아이러니가 있다. 실제로, 전문법률인이 정치적 갈등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보장은 (전문성의 영역 차이로 인해) 딱히 없으니 말이다.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추가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요즘 흔히들 이야기하곤 하는 인간 법률관에 대한 불신감, AI 법률관의 필요성에 대해 매우 훌륭한 반박을 내세운다는 점이다. 줄곧 책에서 인용되는 두 사람 중 하나인 포스너의 견해를 빌려와, 법률의 삼단논법에 의거하는 법규주의적 관점만으로는 법의 발전을 불러올 판단들을 내릴 수 없다고들 한다. 일례로, 흑인 분리 정책이 헌법 상으로 보았을 때 누군가에게 더 좋은 대우를, 누군가에게 더 나쁜 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므로 위헌이 아니라고 법규주의적으로 결론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비교적 정치적이고 개인 재량에 가까운 판단 덕에 이 역시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아마도 이런 시대적으로 중요한 결정, 그리고 이보단 더 사소하지만 역시 단순히 축적된 법률과 판례만으로부터는 나올 수 없는 결정들을 위해 사람과 주관이 있는 법이리라.
법률추
마지막 단락의 ai판사 관련 반박에서 흑백분리정책 예시는 좀 잘못된 거 같음 정책의 내용만 보면 그저 분리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사회에 적용되는 형태는 엄연히 위헌이니까 단순히 판사의 주관때문에 나온 판결은 아니라 생각함 - dc App
그리고 판사를 대체할 정도로 고도화 된 ai라면 단순히 사건의 내용이 기존의 법과 합치하는지 뿐만아니라 그 내용이 사회에 어떻게 적용되어지고 이 판결로 인해 사회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등을 오히려 인간보다 더 잘 계산하고 판단할거라 생각함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