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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 5.0 점



0.0 - 소개
이탈로 칼비노의 <우리들의 선조> 3부작 중 가장 판타지스럽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글입니다. 또한 3부작 중에서 제일 재밌게 읽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작품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존재하지 않지만 의지만으로 백색 갑옷에 머무는 아질울포라는 기사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이야기의 비중은 아질울포에게 맞춰져있지만 구르둘루, 브라다만테, 토리스먼드, 랭보와 같은 인물상을 통해 인간의 존재, 실존, 의식 등을 대비시켜놓았습니다.

또한 그는 다른 작품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비현실적인 요소들을 삽입하여, 인간의 불완전한 존재의식에 대한 고민을 포착하였습니다. 

구성적인 측면으로는 '테오도라'라는 수녀의 글쓰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작가가 작중 참여했으며, 반쪼가리 자작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오가는 것 또한 작품의 흐름에서 벗어나 독자로 하여금 좀 더 객관적인 감상을 권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1.0 - 존재하지 않는 것
아질울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는 백색 갑옷에 머무는 기사이지만, 그는 엄밀히 말하자면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아질울포에 관해서 유능한 기사라고 평하지만 그와 별개로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또한 아질울포 본인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을 뿐,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비존재성의 가장 큰 특징은 '육체의 부재'일 겁니다. 아질울포의 갑옷 안은 텅 비어있고, 의지만으로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반면에, 육체는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하는 구르둘루는 '존재한다'라고 생각하니 썩 아이러니컬합니다.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고, 존재한다는 것을 당연시여깁니다. 우린 백색 갑옷에 머무는 아질울포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이 부분을 잘 생각해보면 의문이 떠오릅니다. 우리의 존재는 육체를 제외하고 어떻게 정의되는가?   



1.1 - 아질울포의 존재방법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아질울포는 이 역설적인 문제에서 자신의 존재를 세워줄 기둥을 박아놨습니다.



첫번째는 주체입니다. 작중 아질울포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규율이나 정리, 규칙을 신경쓰는 깐깐한 성격입니다. 그리고 그는 잠을 경계합니다. 혹시나 자다가 자신의 의식이 사라질까 걱정할 정도로요.

이는 구르둘루와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구르둘루는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주체의식, 자신을 자각하는 의식이 없습니다.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아질울포보다 존재하는 구르둘루가 더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 그에겐 의식이 있으나 이는 하얀 백지이며 이곳을 채워넣는 것은 자신이 아닌 다른 것들이니까요. 지극히 수동적이며, 주체적인 의식이 두드러지는 아질포울에 비해 객체성이 짙은 캐릭터입니다.



둘째는 이름, 공훈, 업적, 과거입니다.

연회에서 다른 기사, 용장들은 과거의 업적이나 모험에 대해 부풀리거나 주관적으로 왜곡된 기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아질울포는 그들의 무용담을 정정하며 사실 그대로 왜곡되지 않는 과거를 말하죠. 또한 그는 하루에 벌어진 일을 꾸준히 기록하고 자신의 공훈을 자랑스럽게 여기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름과 기사 작위. 아질울포가 과거 겁탈당할 뻔한 소프로니아를 구해줘 그녀의 처녀성을 지켜준 공로로 그의 존재를 세워주는 중요한 기둥입니다.

오늘날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를 정의할 때,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것은 '이름'일 겁니다. 혹은 어떠한 상패를 통해 옛날에 이룬 성과를 증명할 수 있겠죠. 아니면 특정 단체에 포함되어있을 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생, 직장인, 가족처럼 말이죠.



1.2 - 수동적이며 의존적인 존재 방식
하지만 이런 것들은 전부 남에게서 받은 것 혹은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러한 요소로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규정하기에는 부족하죠. 

이름은 재밌게도 '나의 것'이지만 만들어준 것도, 그리고 자주 사용하는 것도 타인입니다. 상패와 공적은 스스로에게 수여할 수 없는 것이며, 다수로부터 인정받았을 때 비로서 '얻었다'라고 할 수 있죠. 단체의 경우에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지 온전히 '나'의 존재를 증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아질울포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여 사라졌습니다.

아질울포는 소프로니아의 처녀성을 증명하면 되는데. 토리스먼드가 소프로니아의 아들이라서 (설명이 꼬였지만 아무튼 아질울포는 자신의 공훈을 증명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이름과 기사작위를 내려놓고 사라지게 되죠.

아질울포의 존재방식은 수동적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선술한 것처럼 그의 이름과 기사 작위는 전적으로 소프로니아에게 달려있었기 때문이죠. 또한 소설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작중 정작 '존재하는 자'들은 과거의 기억이 애매하거나 왜곡된 모습을 보입니다. 게다가 소프로니아와 토리스먼드의 관계 또한 오해에서 생긴 것으로 결과적으로 본다면 아질울포의 공훈은 인정받아야 마땅합니다.

이렇듯 아질울포는 자신을 지탱하던 과거의 공훈이 거짓이라고 판가름나자마자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아질울포'라는 '주체'는 그와 더불어 증발됩니다.





2.0 - 마무리
타인에게서 얻은 존재의 정체성에 기대는 것은 너무나 위태로우며 언제 부숴질지 모르는 모래성의 모양새와 같습니다.

주체적 의식이 없는 자의식은 '존재'에게 있어서 있으나마나 한 허울일지도 모르고요.

작가는 아질포울과 구르둘루이라는 두 인물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통해 오늘날 인간에게 주체와 객체, 육체와 의식으로 이루어진 존재의 방식을 선명하게 대비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