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성이라는 ㅈ같은 상황 때문에 우린 항상 선택을 해야 해. 잃는 것 없이 모두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해결책은 보통 존재하지 않으니까. 경제학 배운 독붕이라면 미시경제학의 budget line이 생각날 거야. 두 재화가 모두 무한정 많으면 좋겠지만 재화는 한정되어있고 예산은 항상 모자라니까

여기서 우리는, 어떤 문제에서든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공리주의에 의거해 '계산질'을 하게 돼. 문제상황에 부딪혔을 때, 혹은 정치적 논쟁에 대해 생각해볼 때의 자신을 생각해봐! 무엇이 걸려 있든지 우리는 한번쯤은 가치중립적이고 몰도덕적인 주판알을 굴린다는 거지. 그리고 그것이 정의인 양 얘기하는 거야. 예를 들어 지하철을 민영화한다고 해보자. 찬성하는 측은 오직 비용과 편익, 이익만을 얘기하지만 지하철이라는 도구가 갖는 다른 공적인 효과, 예컨대 경제적 소외계층의 주된 이동수단이라는 점은 간과하지. 멋들어진 그래프와 화려한 도표라는 공리 앞에서 도덕과 인간성은 설 자리를 잃어. 아니, 그 숫자와 그래프의 면적은 도덕을 대체하지.

근대 서양의 정의관, 특히 자유주의적 세계관에 흠뻑 취한 사람이라면(혹은 공학도) 이러한 의문점, 과연 숫자가 도덕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냐는 나의 질문에 역정을 낼 거야. 숫자와 그래프가 증명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분명히 나 같이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옛부터 존재했었지. 맹자 첫 구절이 이렇게 시작잖아. "왕께서는 어찌하여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왕도만이 있을 뿐입니다."

서구 이데올로기 개론서를 보면 공리주의는 반드시 자유주의 파트에서 나와. 왜냐면 "자유를 어느 범위까지 제약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온 것이 공리주의이기 때문이야. 고전적 자유주의를 집대성했다고 일컬어지는 로크는 비자유주의적 세계관에서 자유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적어도' 생명과 재산에 대한 자유'는' 지켜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후 자유주의가 서구 정치질서의 바탕이 된 이후에는 지나친 자유가 문제가 되었으니까. 이에 대한 해답이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 그리고 그 공리주의에 바탕반 밀의 「자유론」에 나오는 위해 원칙(harm principle)과 같은 것들이었어.

정의란 무엇인가 를 흔히 해답없는 책이라고 얘기해. 하지만 자유주의의 지나친 개인주의, 그로 인한 사회의 파편화와 도덕적 타락을 비판하는 공동체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자유주의의 전가의 보도인 공리주의가 어떻게 보일까? 공동체주의 3학자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샌델의 시각에 공리주의는 모든 것에 대한 해답으로 보일까? 숫자 비교놀음, 사적 영역의 계산질을 공적 영역에서 휘둘러대는 자유주의의 주판알이 도덕이자 정의인지 생각해 보자는 게 아마 샌델의 진짜 견해가 아닐까 라고 상상해. 모든 누워있는 사람의 가치가 동일하다는 가정 하에, 1명을 죽이는 게 숫자가 적기 때문에 옳은 일이다 라는 공리주의가 주는 불편함을 샌델은 지적하고 싶은 게 아니였을까?

뇌피셜임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