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문학(소설) 전문가로 만들어주겠다.>
세계문학전집은 절대 읽을 필요 없습니다. 매뉴얼만 숙지하시면 됩니다.
일단 문학 전문가가 되기 위해 숙지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고대 소설에 대해 함부로 언급하면 다른 문학 스노브들에게 무시당할 수 있습니다. 제일 무난한 매뉴얼은 고대야말로 희극의 시대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고대의 대표적인 극작가에 누가 있는지는 몰라도 됩니다. 그냥 그때는 소설이 문학으로서의 틀로 정립되기 전이라고만 하십시오.
<삼국지>나 <수호전>에 대해서는 절대 언급하지 마십시오. <초한지>와 <금병매>도 위험합니다. 십중팔구 대놓고 무시당할 게 뻔합니다. 중국 고전 소설에 대해서는 <요재지이> 정도가 그냥저냥 읽을 만하다고만 하십시오. <요재지이>의 작가가 포송령이라는 건 몰라도 됩니다. 루쉰이나 <아큐정전>의 레퍼토리는 고루합니다. 옌렌커의 저항정신이 작가들에게 많은 귀감이 된다는 정도만 넌지시 말해주는 게 좋습니다. <색, 계>는 사실 영화보다 원작 소설이 더 훌륭하다며 장아이링을 추앙하는 것도 좋은 옵션입니다.
미국 소설가들 중에서는 윌리엄 포크너나 존 스타인벡보다는 존 더스 패서스와 윌리엄 버로스를 추앙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세대에 대해서는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이름만 살짝 언급하며 그쪽이 취향이라고 말하십시오. 헤밍웨이의 얘기가 나오면 지나치게 교훈적이라고 까십시오. <노인과 바다>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같은 소설은 읽지 않아도 됩니다. 오 헨리는 위대한 작가 축에도 못 낀다며 까고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해서는 지엽적이라고 하십시오. 피츠제럴드는 구시대적이라고 하면 다른 문학 스노브들이 제법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위대한 개츠비> 따위 안 읽어봤어도 상관없습니다. 이도저도 다 싫으면 커트 보네거트 정도 추천드립니다.
노벨문학상 작가들을 함부로 언급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카뮈나 헤르만 헤세, 주제 사라마구 등은 식상합니다. 사무엘 베케트도 식상하지만 이름 정도는 알아둬도 괜찮습니다. 굳이 언급해야 한다면 임레 케르테스나 엘리아스 카네티를 언급하고 직관이 좋은 작가들이라고만 하십시오. 그들의 작품에 어떤 것이 있는지는 몰라도 됩니다. 크누트 함순은 다 좋은데 나치를 지지해서 좀 껄끄럽다고 하십시오. 더불어 수준 떨어지는 북유럽 소설가들이 대거 수상한 것만 보더라도 노벨문학상의 진정성을 믿기 힘들다고 주장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좀 더 강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고 싶다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것도 재밌겠다고 하십시오.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신경숙의 표절 논란에 대해 그 입장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고 해도 좋습니다. 이 경우는 이유를 절대 말하면 안 됩니다. 동독 문학과 알제리 문학이 저평가되었다고 주장하며 안나 제거스와 카텝 야신의 이름을 들먹이면 제법 효과가 좋습니다. 작품을 읽기도 힘들지만 못 봤어도 상관 없습니다. <통과 비자>가 인상적이라고 하십시오. 혹시나 <넷즈마>에 대해 번역본도 안 나온 걸 어떻게 읽었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별 미1친 놈 다 보겠네 생각하고 대화를 피하십시오. 또한 포스트 붐 세대의 작품에서 의의를 찾으려 한다고 하는 것도 괜찮은 시도입니다. 보르헤스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에 대해서는 철저히 기본적인 리스펙트만 보이십시오.
실존주의는 말해봤자 본전도 뽑을 수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카뮈는 언급하지 마십시오. 카프카도 언급하지 말고 사르트르에 대해서는 일관성에 대해서만 마지 못해 인정하는 척하십시오. 비톨트 곰브로비치가 저평가된 게 아쉽다고만 흘리듯이 말하십시오. 참고로 이 경우 브루노 슐츠도 좋다고 반응하는 문학 스노브가 있다면 아까 그 미1친 놈이니 무조건 피하십시오. 시몬 드 보부아르 얘기가 나오면 어딘지 불쾌한 듯한 제스처를 취하십시오. 자연주의가 언급된다면 모파상이나 에밀 졸라에 대해 문장은 잘 쓰지만 취향이 아니라고만 하면 됩니다. 낭만주의는 말할 가치도 없거니와 누보 로망이나 전율주의 소설가들의 작법에 대해서는 시도는 좋았다고만 하십시오.
세르반테스 추천합니다. 오늘날의 문학은 <돈 키호테> 시대의 순수성을 상실했다고 말하십시오. 가끔은 생뚱맞은 스탠스를 취해주는 것이 의외로 주관도 있어 보이고 좋습니다. 파스칼 메르시어 정도는 꽤 괜찮은 것 같다고 추앙하고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도 생각보다 긍정할 만한 면이 엿보였다고 말하십시오.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접근법과 기호학적 지성에 대해서는 무한 리스펙트를 보이는 게 좋습니다.
뜨거운 감자에 대한 대응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롤리타>의 소아성애 논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나보코프가 독자를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다고만 하십시오.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재판에 회부된 사례와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을 동시에 언급하며 에로티카 문학에 대한 시도는 그 나름대로의 의의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십시오. 그럼에도 그것이 자신의 취향은 아니라고 한다면 더 고무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보다 도발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싶다면 미시마 유키오의 삶을 거론하십시오. 작품도 좋지만 그의 삶에도 주목할 점이 있다는 한마디만 하면 됩니다. 그 이상 들어가는 건 위험합니다. 사드에 대해서는 인정할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너무 과하다고만 하십시오.
최근 소설가들 중에서는 스티븐 킹, 알랭 드 보통, 미야베 미유키, 이런 소설가들 꼽지 마십시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큰 그림으로 떡칠하는 작가라고 하고 기욤 뮈소는 문장이 딜레탕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십시오. 파울로 코엘료는 이야기의 힘으로만 버티는 삼류라고 까면 됩니다. 밀란 쿤데라는 썩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농담> 정도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하십시오. 아룬다티 로이나 존 밴빌, 어빈 웰시를 추앙하십시오. 그 중에서 아룬다티 로이가 가장 좋습니다. <작은 것들의 신>은 현대의 고전으로 손색이 없다고 추앙하십시오.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에 대해서는 참 훌륭한데 번역이 아쉽다고 주장하고 <트레인스포팅>은 이야기하는 방식이 흥미롭다고 하십시오. 세 작품 역시 한 줄도 안 읽어도 됩니다. 혹시나 누군가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번역본의 어떤 부분이 아쉽냐고 묻는다면 의역이 지나치다고만 하십시오.
한강의 작품은 이전에 슬쩍 읽어봤다고만 하십시오. 오히려 한강보다는 배수아나 정이현이 더 마음에 든다고 하십시오. 장강명에 대해서는 화제성과 시사성을 빼면 시체라고 하십시오.
대충 이 정도입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톨스토이나 괴테, 도스토예프스키 읽고 소설을 좋아하게 됐다고 고백하지 마십시오. 한국문학의 경우는 이문열이나 황석영, 조정래 읽고 소설에 관심 생겼다고 절대 고백하지 마십시오. 개무시당합니다.
ㅋㅋㅋㅋㅋ
이런거 어디 60년대 다방에서나 통할 감성인데,
애초에 이런 대화가 나올 곳이면 씨알도 안먹히는 래파토리 아니냐ㅋㅋ
이거 머 거의 이문열 단편작에서 나오는 그 머더라 기억이 안나네 암튼 이딴거말하는 인물이 있었음 - dc App
재미있는 글이네요. 엘리아스 카네티는 소설로 노벨상을 받은 게 아니라 정치/철학 넌픽션 군중과 권력으로 받았으니... 좀 앞뒤거 안맞기도 해요
애초에 내 친구들은 카뮈가 누군지도 모르더라ㅜ
이거 좆문가 시리즈라고 2010년 즈음인가, 암튼 꽤 예전에 유행했던 컨셉이예요. "당신을 XXX 전문가로 만들어 주겠다." 라는 도발적인 제목과 함께 이 글 본문의 글구조를 따라 썼죠.. 오랜만에 보는 컨셉이네여.;
좆문가 시리즈에서 보통 이 정도 컨셉과 콘텐츠를 가진 글은 없었는데 통찰력 있게 스노비즘을 깠네여
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오유꺼아니냐
좃문가 시리즈 오랜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