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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겐지, 수필 하나 소설 한 편.
사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 조롱을 높이 매달고. 후기
겐지의 수필에서 문제가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제목이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나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얘기할 책. ‘사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 이런 제목들이 어울리는 장소는 자기 계발서 코너이고 제목에 어울리는 저자의 이름이라면 강신주 따위다. 그러나 제목에 대한 이러한 혐오감을 조금 미루고 저자의 이름을 본다면…
마루야마 겐지. 그렇다. 그는 분명 이러한 제목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다. 저자를 확인하고 나면 하단의 ‘바로 구입’을 누르며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보다 적절한 제목은 없었겠군.
마루야마 겐지는 그의 제목들처럼, 수필처럼, 또 소설처럼 평생을 살아왔다. 겐지를 생각할 때 도를 닦는 선승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것은 비단 책 날개에 있는 민머리의 사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글들은 수필이든 소설이든 하나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그것에 대해 말해보자.
1. 조롱을 높이 매달고.
단테의 신곡. “우리 삶의 노정 중간에서-.” 단테는 이 문장을 35세에 썼다. 인생의 중간에 도달했다고 느낄 때의 감정은 무엇일까. 우선 하나의 분명한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이러한 생각 때문일까? 주인공은 자신의 삶의 후반기는 전혀 다르게 살기로 한다. 전반기의 모든 것을 묻어버리고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작은 고향 마을로 돌아가 살기로 한다. 은둔하며 마치 마루야마 겐지 자신처럼.
그러나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 그곳에는 어떤 노인이 하나 살고 있었고 주인공은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그런 주인공을 마치 없는 존재처럼 무시하던 노인은 온천탕에서 주인공에게 일갈한다. “자넨 마음이 가난하고 비열해.”(물론 이 말을 하기까지 많은 사건들과 설정들이 있었지만 이 글에선 생략했다. 요약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2 사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
주인공은 왜 저러한 일갈을 들어야 하는가. 주인공의 삶은 겐지가 말하는 그런 삶이 아닌가?
“일단 모든 집단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독립체로 돌아가라.”
주인공은 전반기의 자신의 삶을 모두 버리고 은둔과 고독의 즐거움이 있는 후반기의 삶을 선택한다. 그런데 정말 ‘선택’이란 단어를 사용해도 좋은 것인가. 주인공의 행동을 선택이라 부를 정도로 주인공은 자유로운 개인이었는가? 주인공은 도피를 한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그렇기에 주인공은 계속해서 환상에 시달리는 것이리라.(말 했던가? 주인공은 환상을 본다. 주로 자신의 과거에 대한. 그러나 여기에 대한 의문. 무엇이 현실인가?)
겐지가 말하는 집단으로부터 독립된 삶은 그저 유유자적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투쟁에 가까운 것임이 분명하다. 도피 따위로 성취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아니란 말이다. 또 다시 그의 말.
“힐링을 바라지 마라. 살아남는 일은 끝까지 싸우는 일이다.”
3 겐지는 이렇게 말했다.
이정도 쓰고 나니 더욱 모르겠다. 주인공이 싫어하던 노인은 자살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고향 마을을 떠난다. 무엇을 찾아서?
혹은 이렇게 말해볼까. 겐지는 그렇게 살아서 무엇을 얻고자 하였던 것인가. ‘얻는다’란 성취적 표현이 부담스럽다면… 그의 삶이란 무엇인가?
다시 그의 수필, ‘사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에 여러 번 반복되는 주제. “참된 자아를 회복하기 위한…”, “자기 자신과의 유대를…” 그렇다면 결국 구도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어떠한 집단에도 매이지 않는 온전한 개인인가? 혹은 철인?
자기계발서적인 제목에도 불구하고 그가 말하는 내용은 정반대다. 세상의 성공을 말하지 않으며 도피와 동의어일 힐링을 말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을 주문할 뿐이다. 그 과정에 있을 고통의 일부라도 알기에 쉽사리 자기 계발서처럼, 그래 내일부터는 나도…! 따위를 내뱉지는 않게 된다. 그저 한숨을 쉬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런 우리에게 던지는 겐지의 위로. “이룰 수 있는 목표란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겐지의 소설을 읽는다. 일갈이든 위로든 이 꼬장꼬장한 노인의 말을 더 듣고 싶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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