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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아마 처음 이 책을 잡았던게 작년 여름쯤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일주일전에 다 읽었으니 얼추 1년정도 걸린 것 같다.

물론 순수하게 읽은 시간만 따진다면 5~6개월정도(하루 2~3시간 기준) 걸렸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전에 kocw에서 경북대 김석수 교수의 <독일관념론>이라는 강의를 들었었다. 거기서 김석수 교수가 헤겔의 저서는 끊임없이 운동하고 있음을 염두에 두면서 읽어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이 말의 의미를 250페이지쯤 읽었을 때 깨달았다. 사실 간단한 이야기인데 이걸 이해를 못하니 책을 읽으면서 무척 힘들었다.


끊임없이 운동한다는 이야기는 앞에서 옳다고 했던 이야기가 바로 뒤에서 부정된다는 뜻이다. 문자 좀 써보자면 '변증법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을 사람은 꼭 염두에 두길. "앞의 내용은 바로 뒤에서 부정되고 더 높은 단계로 지양(aufheben)된다."

이 점 때문에 <정신현상학>은 요약이 불가능하다. 나도 200페이지정도까지는 요약을 해봤는데 그 뒤부턴 힘들어서 관뒀다. 그냥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과 전체적인 흐름만 인지해두는게 좋을듯. 


예상컨대 독일인이 이 책의 독일어판을 읽어도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은 그 어려운 걸 번역판으로 봐야 하니...아마도 번역판만으로는 이 책의 정확한 이해는 불가능하지 싶다. 그래서 내가 차선으로 택한 것은 최대한 많은 서브텍스트를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메인 텍스트 : <정신현상학> 한길사

서브 텍스트: 1) <헤겔의 정신현상학> 이뽈리뜨 저  2) 헤겔의 이성 장 연구, 연세대 박사논문(riss.kr 에서 검색하면 나온다)  3) <정신현상학> 해제, 서울대 철학연구소였나 여튼 거기가면 나온다.


이렇게 서브텍스트가 있을 경우 내가 메인 텍스트에서 이해한 것이 제대로 이해된게 맞는지 확인해볼 수가 있다. 문제는 서브텍스트 역시 만만치않게 어렵다는 거. 특히 이뽈리뜨의 책은 처음 읽었을 땐 <정신현상학>만큼 어렵다고 느꼈다. 물론 좀 지나니까 확실히 <정신현상학>보단 낫다고 생각된다.

이뽈리뜨의 책은 반드시 같이 읽도록 해라. '이성' 부분에서 헤겔이 진정으로 말하고자하는 바가 무엇인지 역사적 맥락에 비춰 알려준다. 칸트와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을 극복하고자 하는 헤겔의 의지를 이해할 수 있다.


아참, <정신현상학>은 판본이 옛날 분도출판사에서 나온게 있고 한길사에서 나온게 있는데(역자는 둘 다 임석진씨다) 서브텍스트에서는 전부다 분도출판사 기준으로 인용이되어있다. 나는 이미 한길사 판본을 샀던 나머지 어쩔 수 없이 그냥 읽었는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서브텍스트에서 <정신현상학>을 인용한 부분이 있으면 나는 그게 한길사 버전으로 몇 페이지인지 확인한뒤 서브텍스트 옆에다가 적어두었다. 반대로 <정신현상학>에도 이 부분을 어느 서브텍스트에서 잘 설명하고 있는지 옆에다 적어두었다. 

예를 들면 <정신현상학> 300페이지에 있는 내용이 이뽈리뜨의 <헤겔의 정신현상학> 270페이지에 인용되어 있는 경우, 이뽈리뜨 책 옆에는 <정현 300>(정신현상학의 줄임말)이라 적고 <정신현상학>에다가는 <이뽈 270>이라 적는 식으로. 


혹시라도 정신현상학을 읽을 생각이 있는 분들은 반드시 분도출판사 버전으로 사라. 서브텍스트를 참고하는데에 좋은 건 물론이거니와, 옛날책인데도 최근에 나온 한길사버전보다 번역이 오히려 더 좋다. 분도출판사의 경우 '즉자, 대자'라고 쓰는 걸 한길사버전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독자적인' 이런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자기 딴에는 더 쉽게 번역한답시고 그런건지는 모르겠다만, 서브텍스트에서는 전부 '즉자, 대자'로 사용하고 있고 대부분의 철학 논문에서도 '즉자, 대자'라는 용어를 더 많이쓴다. 



특히 기억이 나는 부분을 대보라면, 정신현상학을 읽진 않았어도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다들 들어봤을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과 이성 장의 '행위하는 이성'에서 인륜성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기억난다. 주인과 노예 모두 사물과 비본질적으로 관계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은 노예에게 있다는 주장이 독특하다. 


주인의 위협을 받으며 '죽음의 공포'를 느낄 때 세계가 흔들림을 경험하게 되고, 이 세계의 흔들림 속에서 세계란 나의 관념에 의해 안전하게 느껴질수도 불안하게 느껴질수도 있는 존재, 즉 나의 '절대적 부정성'을 통해 해체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노예는 본래 '물성을 본질로 여기는 의식'인데, 이제 그 물성을 노예가 노동을 통해 가공함으로써 무너트리는 것이다. 이것은 노예가 느낀 공포를 불식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부정되는 대상이야말로 노예로 하여금 공포에 떨게 했던 그 낯선 외적인 힘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예는 주인에 대한 "복종"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는 노예의 "자연적 현존재성(자연성, 물질적인 것, 본능)"을 뛰어넘어 '비물질적인 것(복종, 정신적인 것)'을 추구함을 의미한다. 이제 노예는 자기가 대자존재(자기 바깥에 있는것을 해체함으로써 나를 정립하고자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되고 노동을 통해 자신의 의식을 사물에 새겨넣는다. 이를 헤겔은 '외화'(인간의 정신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것)라고 부른다. 물론 이 외화의 의미는 매우 넓다. 단순한 사물뿐만이 아니라 내가 말하는 것, 법, 도덕, 제도 등도 인간 정신의 외화이다.





2권을 이렇게 통독할 생각은 없다. 헤겔의 저서에서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은 정신현상학 1권을 통해서 이미 다 얻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헤겔 철학의 세부적인 내용이 궁금하다면 논문으로 접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기도하고...하지만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책인 것은 분명하다.